세계관-경제학2. 성경적 경제정의

오피니언·칼럼
기고
  •   
류현모 교수

사유재산과 소유의 불균형: 하나님은 개인의 소유를 인정하셨다. 십계명 중 “도둑질하지 말라”라는 명령이 그것을 명확하게 한다. 창세기 1장의 생육/문화명령을 통해 인류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주권을 개인에게 나누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재물뿐만 아니라 나면서 거저 가지게 된 모든 것, 즉 개인의 지적, 영적, 육체적 능력뿐만 아니라 국적, 가문 등 그 모든 것은 우리의 사적인 소유 아래 있다. 하나님은 타고난 소유의 불균등을 그대로 인정하신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지파 별로 기업을 나눌 때도 균등 분배에 대한 어떤 노력도 없으며 주어진 그대로 인정하신다. 단, 성경은 그것의 원 주인이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그것의 관리를 맡은 청지기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사유재산의 관리로 증식한 재산과 그것을 소비한 방식에 대해서는 주인께 반드시 결산해야 한다. 이점에서 성경은 재산의 소유권과 사용권에 대해서는 자본주의 방식을 지지하며 투명한 회계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로버트 카텔의 ‘CEO와 성직자’에서는 이윤의 창출에 참여한 모든 근로자, 임직원, 자본가에게 열매가 후히 나눠지고, 그들을 통해서 사회 속으로 풍성하게 흘러가게 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경쟁, 생산성과 이윤: 누가복음 19장에는 주인이 종들에게 한 므나 씩을 맡기고 오랫동안 다녀온 후 결산하는 비유가 있다. 많이 남긴 종에게는 많은 고을을, 적게 남긴 종에게는 적은 고을을 다스릴 권세를 주고, 일하지 않은 종에게는 그것마저 빼앗아 가장 많이 남긴 종에게 맡긴다. 성경은 경쟁을 통해 생산성이 높은 곳에 투자할 것을 권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집사의 직분을 맡기기 전에 먼저 테스트해서 통과하는 사람을 임명하라고 권한다. 경쟁을 통해 합당한 사람에게 합당한 직분을 맡기는 것이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라 본 것이다. 창세기의 땅을 정복하여 다스리라는 것도 한정된 자원을 잘 사용하여 생산성을 높이라는 명령이다. 이윤은 경쟁적인 상거래에서는 생산성이 높을 때 차지할 수 있는 것으로 자본주의에서는 이를 위해 모든 노력과 창의력을 동원한다.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거래를 통해 부당한 이윤을 취득하려는 경우도 있지만 정상적이고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시장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물론 자본주의에서 비정상적이고 불공정한 경쟁 때문에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 초기에 마스크 파동 같은 상황, 기업 간 담합이나 부당 내부거래 같이 불공정한 거래가 가격 결정이나 이윤 분배를 불공정하게 만든다. 반면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서는 경쟁과 이윤을 죄악시하기 때문에 생산성의 악화가 불가피하고, 결국 경제 활력을 상실하게 된다.

대출과 이자: 성경에는 무언가를 빌리고 빌려주는 행위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빌려주는 것은 소유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용권을 일시적으로 넘기는 것이다. 성경은 빌려줄 때 이자를 받지 말라는 구절이 많은데, 이 경우는 대부분 가난한 자의 생계를 위해 빌려주는 경우이다. 달란트의 비유에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었던 종에게 왜 돈을 은행에 맡겨서 이자라도 받지 않았느냐고 꾸짖는다. 성경은 여유 자본을 은행을 통해 더 생산성 높은 사업에 투자하여 그 이자를 받는 것을 불의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다만 급한 사람에게 너무 높은 이자를 요구하는 것을 금할 따름이다. 이슬람의 법에는 이자를 받는 것을 불로소득으로 생각하고 죄로 여긴다. 이슬람에도 은행이 있고 돈을 대출해 주기도 하지만 은행이 정상적으로 이자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뒷거래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위선적 환경 하에서 부정이 꽃피기 쉽다. 성경적 정의는 채무자에게 빌린 것과 이자를 약속한 기간 내에 갚을 것을 요구하며, 갚지 못할 경우 빌려준 사람의 종이 되는 것까지 허용한다. 그러나 성경은 채권자에게 은혜 가득한 공의를 실행할 것을 요구한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에서처럼 주인의 재산으로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부채를 탕감해 주는 것까지 기특하게 여긴다.

공정한 상거래: 성경에서는 상거래를 공정하게 하는 것이 정의라고 말한다. 거래하는 사람은 주머니에 두 개의 저울추, 두 개의 되, 두 개의 자를 두지 말라고, 즉 도량형을 속이지 말라고 명령한다. 이것은 정직한 상거래를 명하는 성경말씀이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을 같은 잣대, 즉 같은 법 앞에 공평하게 대하는 정의실현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선악의 절대적 기준이나 절대 진리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이다. 절대적인 기준을 부정하면 모든 사람은 자기에게 더 유리하게 기준을 만들려고 하며, 심지어 같은 행위에 대해서도 어제와 오늘, 우리 편과 남의 편에 대하여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자기모순을 범하게 된다. 오늘 같은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라는 격려를 받으며 상대주의적 교육을 받아, <지킬과 하이드>처럼 다중인격화 한 현대인에게서 이러한 경향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빈곤과 구제: 성경은 거듭난 기독교인에게 이웃과의 나눔을 강조한다(딤 6:18). 또한 고아, 과부, 나그네, 그리고 가난한 사람 등 4대 빈곤계층을 돕는 것은 의무로 규정한다. 하나님으로부터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은 이스라엘은, 특별한 예외를 제외하고 아들을 통해 가족 안에서 상속되어 모든 가정의 생계수단이 되었다. 이들 4대 빈곤계층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기업을 받을 방법이 없는 사람들이다. 즉, 구조적 빈곤에 해당하며, 그들을 구제하는 것은 자선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의무인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제할 때에도 밭모퉁이를 추수하지 않는다든가, 떨어진 이삭을 남겨두는 등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라고 하신다. 구제받는 그들의 인격을 존중하며, 노동의 가치를 잊지 않게 하는 것이다. 제도적인 구제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북유럽 국가들에서처럼 부자들이 더 많은 세금 부담을 기꺼이 합의할 때 가능한 것이다. 다수의 힘으로 부자의 수입을 빼앗아 나누는 제도는 정의롭지 않기 때문에 지속될 수 없다. 성경의 경제정의는 수입, 능력, 분배의 평등이 아닌 법 앞에서의 평등이며 기회의 균등이다.

묵상: 내 주변에서 경험하는 가장 흔한 경제적인 불의는 무엇이며 나는 그것에 어떻게 대응하나?

류현모(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약리학교실 교수)

#류현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