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에 대한 워필드의 ‘기독교 초자연주의’ 변증(8)

오피니언·칼럼
기고
1896년 프린스턴 개강설교를 중심으로

5. 현대 개혁신학적 입장 및 과제

최더함 박사

워필드의 초자연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주권을 주창하는 개혁주의 신학의 숨통을 끊으려는 자연주의자들의 자기모순과 불완전성을 간파하고 그들의 약점을 공격하는 한편, 초자연적인 기독교를 변증함으로서 북미를 비롯한 전 세계적으로 개혁주의 신학을 정립하고 발흥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워필드의 영감(Inspiration)의 교리는 기독교에 대한 불신앙 즉, 자연주의적인 신앙관을 혁파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솔직히 후대의 우리는 많은 점에서 워필드의 신세를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워필드는 자연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해 그들과 일전을 벌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용기 있고 탁월한 신학자였다. 그래서 워필드를 일러 ‘논쟁신학자’(Polemic Theologian)로 부르기도 한다.

한편으로 워필드는 기독교에서 교리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한 신학자이다. 그는 기독교 교리들은 인간 사고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하여 주신 것으로 하나님이 특별하게 알려주신 이 교리의 메시지가 기독교를 특징 짓고 기독교의 진리성을 담보(擔保)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기독교의 교리를 세우고 이 메시지의 참됨을 증언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책임이라고 역설했다.

그럼에도 오늘날 워필드의 목소리는 우리 가운데서 잘 들리지 않고 있다. 지금 현대의 개혁주의 신학자들마저 워필드가 이룩한 변증적 학문의 성과와 조직신학적 차원에서의 영감 등의 교리를 통한 자연주의자들과의 투쟁과,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그의 충실한 사랑과 헌신을 우리는 잊어버리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어느 시대보다도 더 노골적이고 더 과격하며, 더 많은 수의 자연주의자들에 의해 포위당하고 있다. 오늘날의 자연주의자들은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고 이들은 일반 자연과학뿐 아니라 생명과학과 우주과학에까지 손을 뻗어 이제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흔적을 지우려고 시도하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위험한 자연주의 세력은 기독교 안에 포진하고 있다. 자칭 기독교인이라 하면서 기독교는 “바울에 의해 창작된 것으로 이를 바로잡을 때 바른 기독교를 세울 수 있다”고 공공연하게 떠드는 도올 같은 사람과 그의 정교한듯한 논리에 매료된 추종자들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워필드가 일생을 걸고,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와 함께, 성령님의 강력한 임재(臨齋)와 인도하심에 따라 그들과 맞서 싸우고 그들의 존재를 기독교회 밖으로 몰아내기 위해 그렇게 헌신하고 투쟁했건만, 후대의 무기력한 우리에 의해 자연주의 세력들은 기독교라는 이름을 달고 교회 안에서 여전히 활보하고 있는 실정이다. 워필드의 땀과 눈물과 피 흘림의 가치는 소멸되고 말았다. 우리는 워필드의 헌신과 충성에 답하지 못했다.

특히 한국교회는 자연주의자들에 의해 대세를 장악당한 상태이다. 모든 주요한 일들은 저들의 손에서 시작되고 진행되고 마무리된다. 한국의 정부도 기독교와 관련된 대부분 주요한 일들을 저들과 손을 잡고 추진하고 실행한다. 소위 개혁주의 교단이라고 하는 몇몇이 소리를 내 보지만 변죽만 울리는 실정이다.

한국교회의 자연주의자들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가 있다. 2013년 1월에 한기총 대표회장인 홍재철은 WCC(세계교회협의회) 부산총회준비위원회 상임대표를 맡고 있던 김삼환과 만나 4개 항에 이르는 합의문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우리는 종교 다원(多元)주의를 배격한다.
2. 우리는 공산주의, 인본주의, 동성애 운동과 복음에 반하는 사상을 반대한다.
3. 우리는 개종(改宗) 전도 금지주의에 반대하고 복음 증거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한다.
4. 우리는 성경이 신앙 행위의 절대적 표준임을 믿는다.

그런데 성경적으로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이 합의문이 발표되자 소위 진보 자유주의 기독교인들의 단체로 알려진 NCCK 소속의 사람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한신대 신학 교수들과 에큐메니칼 학자들은 각각 성명서를 내고 이 합의문을 폐기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이 합의문 중 동성애와 개종 전도금지와 종교 다원주의를 반대하는 것과 성경 무오를 주장하는 것이 쓰레기라고 조롱했다. 그러자 삽시간에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당시 합의문 작성에 참여했던 NCCK 총무인 김영주는 곧바로 철회를 발표했으며, 합의문 자체를 없었던 일로 치부했다. 교묘한 말로 합의문의 내용을 무산시킨 것이다. 이후로 저들의 행동은 그야말로 일치단결한 모습이었다. 마치 하나의 지령(指令)이 떨어지자 모든 행동 대원들이 지령에 따라 움직이고 말하는 것처럼 저들의 행동은 통일되었고, 이후로 WCC 부산총회는 저들만의 잔치로 축소되고 폐쇄된 행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중요한 사실은 바로 이 사건을 통해 비로소 자유주의자들의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들은 이 합의문을 공식적으로 반대하기 전까지 동성애를 지지한다고 결코 공개적으로 말한 바가 없었고 기독교인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에 제한을 두어야 한다고 성명을 발표한 적이 없었으며, 한 번도 자신들이 지지하는 WCC가 종교 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를 지향한다고 인정한 바가 없었던 자들인데 합의문 사건으로 인해 저들의 속내가 들켜 버린 셈이 된 것이다. 당시 최덕성 박사(고신대학원)는 “저들이 자충수를 두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저들의 성경 무오성에 대한 반감은 극에 달하는 것이었다. 저들이 합의문을 쓰레기라고 표현한 동기가 바로 합의문 제4항이 성경 무오성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저들의 정체가 자연주의자들임이 밝혀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역사적 기독교의 계보를 이어받아 초자연주의를 고수(固守)하고 있는 개혁주의자들에게 많은 과제를 던져준 사건이 되었다. 개혁주의자들은 지나치게 한국교회 안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자연주의자들의 존재에 대해 무지했으며, 저들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했다. 한국교회 안에서 저들의 존재가 어떤 위치와 어떤 규모와 어떤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는지에 대해 워필드처럼 철저한 연구와 논쟁과 투쟁이 부족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연주의자들은 기독교회를 장악하고 무너뜨리기 위해 사탄의 주구 노릇을 자처하고 있다. 교리 없는 기독교를 주창하며 인간 중심의 기독교를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그럼에도 개혁주의 진영은 너무 무기력하다. 먼저 이에 대한 통절한 자기반성과 자연주의자들에 대한 변증적 노력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본다.

이 점에서 우리는 워필드의 변증법을 다시 꺼내 들 필요가 있다. 워필드에게 있어서 변증은 하나의 학문으로서 기독교의 근본을 지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단지 기독교를 변호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거나 기독교를 반대한 여러 사상에 맞서 기독교를 정당화하는 그런 차원의 학문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기독교의 토대를 확립하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하나의 사실로 확립하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확고한 교리의 체계를 갖추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므로 워필드의 변증학은 기독교에 대한 반대가 있고 없고 하여 행사하는 방어 목적의 무기가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반드시 필요한 영양소 같은 것이며, 나아가 몸 안으로 침투한 병균을 잡아먹는 백혈구 같은 존재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과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둘러싼 반(反)성경적이며 반기독교적이며 반 초자연주의적인 현상이나 경향들, 나아가 행동들을 간파(看破)하고 적극적으로 기독교의 진리를 충실히 변증하는 한편 우리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시대를 분별하고 시류를 파악(把握)하고 시세(時勢)를 조율하여 모든 일을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안에서 행하고 정통 역사적 기독교의 진리와 함께 동거하고 살아가는 가장 소중하고 빛나는 삶의 표현이 될 것이다. 아멘. (끝)

최더함(Th. D, 역사신학, 바로선개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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