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테스탄트 성윤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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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이 보는 성혁명사(8)
민성길 명예교수

중세 카톨릭교회는 금욕을 보다 이상시하였다. 그러나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결혼을 우선시 하였다. 루터에 의하면, 결혼을 통해 비로소 섹스는 도덕적 선이 되고 하나님의 의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섹스는 하나님의 창조의 선함과 죄의 문제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성욕은 만족의 근원이면서 부도덕으로 이끌 수 있는 욕망이다. 루터는 이 모순(파라독스)를 해결하기 위해 긍정적으로 접근하였는데, 즉 결혼으로 그 모순은 극복된다고 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은총의 표시로 섹스와 결혼을 보호하신다고 보았다. 루터는. 어거스틴이나 아퀴나스처럼, 성을 죄스런 인간본성의 악한 욕망으로 보았지만, 그 죄스런 섹스는 결혼 내에서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용서된다고 보았다. 루터에게는 결혼은 인간의 죄스런 욕망에 대한 방어이고, 탐욕스럽고 사악한 성적 죄에 대한 구원(치료약)이 되는 것이다.

종교개혁에 의해 비로소 결혼이란 후손을 낳고 가문의 이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나타났다. 이제 평등주의적(egalitarian) 결혼을 통해 성을 매개로 하여 결혼에서의 “상호성“이 성취된다는 것과 그에 따라 섹스는 낭만적 사랑의 한 부분이라는 개념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결혼하면서 남편과 아내는 상호성에 기초한 “사랑”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일반적으로 사랑이 배우자 선택에 중요 요소가 되었다. 이런 변화는 혼외정사 그리고 일방적인 궁중식 사랑이라는 구식 이상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상류층에서의 결혼은 여전히 가문과 재산에 관련된 비지니스로 남아 있었다. 대신 그 중상류층의 남자들은 에로틱한 경험을 위해서는 고급 창녀(courtesan)를 정부로 두었다.

루터는 “결혼에서의 섹스는 그 자체 긍정적 선함인데, 그 이유는 생식 때문만이 아니라, 섹스가 배우자간에 사랑(affection)을 증가시키고 가정생활에 조화를 증진시키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루터는 부부간의 ”사랑“을 말함으로 하나의 성혁명을 이루었다. 하나님께서는 결혼을 통해 생육과 번성의 축복을 회복시켜 주시었다. 이런 결혼에서는 사랑, 같이 있어 줌, 그리고 자식에 대한 자연적인 바램을 충만하게 이룰 수 있다. 이러한 축복받은 부부사랑은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해 죽음으로 그 사랑을 표시하신 그리스도와 구원받은 교회와의 관계와 같다. 그것은 가장 고상하고 가장 가치 있고 가장 종교적인 일이다.

이전까지의 부부관계는 기계적 사회적 생산 단위였다. 결혼은 부부가 묵묵히 같이 일하고 자식 낳아 기르는데 협력하는 멍에였을 뿐 ”부부애“라는 개념은 희박하였다. 그런데 루터는, 결혼을 생육과 번성 뿐 아니라, 성욕 해결을 위한 하나님이 주신 자산으로 간주하였다. 즉 섹스 자체의 기쁨(쾌락)도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라는 것이다. 이는 당시로서는 하나의 성혁명적 생각이었다.

루터에게 결혼은 인간 섹슈얼리티의 표현에 대해 하나님이 만드신 제도이기 때문에 일부일처제의 결혼 이외의 성적 표현은 당연히 죄가 되었다, 즉 간음은 원죄적 타락으로 간주되었다. 동정은 결혼 전까지 보존할 가치가 있는 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찍 결혼하라고 권고하였다.(남자는 20세 이전에 여자는 15-18세 사이에) 그리고 결혼 내에서 배우자의 성욕을 만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하였다.

루터의 기본태도는 수도원적 성의 통제에서 벗어나 이제 육체와 섹슈얼리티는 이웃(배우자)을 사랑하고 자타(부부)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기독교 윤리가 체화되게 하는 것이었다. 이제 비로소 육체는 명예롭고 위엄이 있게 되었으며, 멸망의 가능성에 놓여있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종교개혁은 성직자의 결혼을 허용하였다. 종교개혁은 결혼의 지위를 높였고, 결혼과 가정에서의 “올바른 질서”를 회복시켰다. 나아가 프로테스탄트는 개인이 중요한 만큼, 가족, 특히 핵가족이 한 단위로서 중요시 하였다. 가족은 자체의 가부장제를 가진 “작은 연방”(little commonwealth)으로 국가의 한 정치적 단위를 반영하는 것이 되었다.

민성길(연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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