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수도권 ‘우선 멈춤’보다 시급한 정권의 오만·독선 ‘멈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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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와 인천광역시, 경기도 등 수도권 3개 자치단체가 23일 0시부터 내년 1월 3일까지 ‘5인 이상 집합금지’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이에 따라 수도권에서 성탄절과 연말연시에 이르는 12일간 사실상 ‘올스톱’ 상황을 맞게 됐다.

정부는 코로나 확진자 수가 3단계 기준을 일찌감치 충족했는데도 머뭇거리며 단계 격상을 미뤄왔다. 3단계가 될 경우 엄청난 경제적 피해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정부로서도 마지막 카드를 던지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인적 물적 피해 못지않게 정치적인 데미지를 더 신경 쓰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잇따르자 결국 3개 자치단체가 자구책 마련에 나서게 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으로서는 국민이 나서 잠시 멈춤으로 집단 확산의 연결고리를 끊어놓는 것이 3차 대유행의 고통을 짧게 끝내는 길”이라며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수도권을 누르면 여타지역으로 풍선효과가 나타나게 되어 있다”며 “강제적으로 수도권을 멈추게 한다고 해도 국민 개개인이 감수해야 할 고통에 비해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회의적인 반응도 적지 않다.

지금 단계가 수도권만의 ‘일시 멈춤’으로 해결될 수 있는 단계인가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이번 제한 조치가 국민의 무한 고통만 가중시키고, 엉뚱한 데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감염이 퍼져 확산세가 들불처럼 번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도 21일 중앙방역대책본부 브리핑에서 “통계적인 수치로 확진자 수를 예측하면 다음 주에는 1,000~1,200명 사이가 될 것”이라며 불안한 속내를 드러냈다. 성탄절과 연말연휴에 왜 멈춤이 필요한지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지만 방역 최고책임자의 입에서 비관적인 전망이 나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를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크게 두 가지로 본다. 하나는 마스크쓰기,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국민 개개인의 방역수칙 준수로 코로나 감염을 차단하는 것과,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위중증 환자들을 효율적으로 치료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확실한 단 한 가지 방법은 전 국민 백신접종으로 코로나를 되도록 빨리 종식하는 길이다.

그런데도 전 국민 백신 접종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책임 의식 결여라는 말로 밖에는 달리 설명이 안 된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여당 대표, 심지어 여당 원내대표까지 모두 제각각 다른 말로 국민들의 혼란만 가중시키는 형국이다. 문 대통령이 그동안 침이 마르게 자랑해 온 K-방역은 순전히 국민의 희생과 헌신적인 의료진의 덕이다. 여기에 정부의 백신 확보 승전보가 더해져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 K-방역의 실체다.

수도권의 2,500만 명의 ‘셧 다운’ 효과에 대한 의문부호가 따라다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정부가 제 할 일은 안 하면서 오로지 국민의 희생만을 강요해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 영세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보호 차원에서 3단계까지는 안가고 대신 국민 금족령을 택한 것이 자칫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는 결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곧 백신”이라고 했다. 듣는 국민을 울화통이 터지게 하는 화법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은 22일 5부 요인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여전히 현실과 한참 동 떨어진 얘기를 사실처럼 했다. 백신 접종이 먼저 시작된 국가를 ‘백신 생산국’으로 특정한 것인데, 올해 안에 백신을 접종하게 된 나라 중 백신 생산국은 미국뿐이다. 그 외에 캐나다,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싱가포르 등은 모두 백신 구매 전쟁에서 승리한 ‘백신 승전국’이라는 사실이다.

이종구 전 질병관리본부장이 “지난 2월, 6월 두 차례에 걸쳐 문 대통령이 참석한 회의에서 백신과 치료제 확보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는데 모두가 듣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모 언론이 21일 보도했다. 이는 문 대통령이 같은 날 각료와 청와대 참모진에게 “그간 백신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지시를 몇 번이나 했는데, 여태 진척이 없다가 이런 상황까지 만들었느냐”는 취지로 질책했다는 보도와 상충된다.

여당 원내대표는 백신을 확보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안정성 부작용 때문”이라 하고, 총리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해서 “미 FDA 승인과 관계없이 식약처 허가로 접종이 가능하다”고 발표하는 등 요즘 청와대와 정부, 여당에서 쏟아내는 말들은 도무지 알아듣기 힘든 외계어 수준이다.

오늘의 3차 대유행 사태에 대해 이제 언론과 국민들도 일부 교회, 콜센터, 방문 판매, 사우나, 요양원 등등의 탓을 하지 않는다. 그만큼 전방위적인 확산세라는 말이 되겠지만 국민들이 방역 초기부터 정부와 여당이 다 써버린 네 탓, 편가르기에 식상한 탓도 없지 않다.

3개 자치단체의 초강수가 코로나 대응책이 지금의 확산세를 꺾을 수만 있다면 국민들은 조금 더 참고 견딜 각오가 되어 있다. 그러나 옛말에 “백약이 무효”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약발이 듣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없다. 지지자가 아닌 국민 탓, 일부 교회 탓 타령으로는 코로나를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실패를 인정하고 재정비하지 않으면 연전연패밖에 다른 길이 없다. 지금이야말로 국민들의 ‘우선 멈춤’보다 권력을 가진 이들의 오만과 독선이 먼저 멈추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