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저항하지 못하는 교회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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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에 따라 강화되었던 사회적 거리두기가 12일부터 2단계에서 1단계로 완화되었다. 지난 2주간 추석 특별방역 기간으로 정해 철저한 방역 조치를 시행한 덕에 확진자 수가 두 자리 수 이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로써 헬스클럽 등 실내 체육시설을 비롯해 고위험 시설로 분류된 유흥주점, 클럽 등까지  다시 문을 열었다. 교회도 대면예배가 가능하게 되었으나 예배당 좌석 수의 30%로 제한되고 소모임과 식사는 여전히 금지됐다. 방역 당국의 시각에서 교회는 유흥주점 등과 같은 고위험시설이거나 그보다 못하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 이번 조치로 증명된 셈이다. 

정세균 총리는 "2주간 국내 발생 확진자 수는 하루 평균 60명 미만으로 줄었고 감염 재생산 지수도 1 이하로 떨어져 확산세가 억제되고 있다"며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 완화조치의 이유를 설명했다. 또 "장기간 계속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수 없이 많은 국민이 피로감을 느끼고 민생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적극 생각했다"는 것이 이유다.

교회 예배 인원을 좌석수의 30%로 정한 것은 야외에서 경기장에서 열리는 프로축구, 프로야구 등의 입장객과 동일한 기준이다. 그런데 수용 규모에 상관없이 무조건 30%라는 것이 어떤 근거에 의함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감염병 예방을 위한 의학적 기준이라기보다는 일단 이 정도 선에서 시작해 보자는 의미가 아니겠나 싶다.

정부도 왜 교회의 예배를 여전히 통제 아래 두려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조차 없다. 전에는 일부 교회에서 확진자가 나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지만 지금은 왜 그런 제약을 하는지 뚜렷한 설명조차 없다. 후에 정부와 교계 간의 협의체에서 조정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지만 그 협의체라는 것이 한국교회 전체를 의미하거나, 적어도 그 결정이 모든 교회에 유효한 것은 아니다.

한교연은 지난 7일 발표한 성명에서 18일 주일부터 교회들이 스스로 예배를 회복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더 이상 교회가 존폐의 기로에 서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절박한 심경을 성명서에 담았다. 그러면서 마스크 쓰기와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 수칙을 교회들이 철저히 지키는 선에서 모든 예배를 교회의 자율에 맡겨 줄 것을 당국에 요청했다. 한교연의 성명은 상당수의 교회들이 처한 현실적이고 절박한 여건과 환경을 대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당국은 여전히 한교연을 협의 채널에 넣지 않고 있다.

정부가 교회의 예배를 과도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곳은 한교연 뿐이 아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서울연회 원성웅 감독은 지난 9월 11일, 9월 20일 주일부터 주일예배를 대면예배로 드릴 것을 선언했다. 교단 산하 교회들에 요청하는 형식이었지만 교회발 확진자 수가 증가하던 시기에 방역 당국의 지침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동을 주문하는 내용이었기에 당시에는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원 감독은 "만약 행정당국이 벌금이나 구상권 청구를 할 시에는 감리교단이 법적으로 공동 대처하겠다"고도 했다.

최근에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 부흥지방회 지방회장 이종우 목사가 교단 기관지에 '총회장에게 호소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성명서' 형식으로 게재하고 정부의 대면예배 금지 조치를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이 목사는 이 성명에서 "교회는 다른 것은 양보해도 예배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본다. 우리는 목숨 걸고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이라며 "예배를 금지하는 정부의 명령에 불복하고 교회의 본질인 예배를 강행하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일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일 것"이라며 교단 총회장 명의의 목회서신과 완전히 다른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현장예배가 오랫동안 중단되면서 일선 교회들이 느끼는 압박감과 자괴감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것을 정부와 방역당국이 교회를 유흥주점과 같거나 그보다 못하게 취급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일시적인 불만 표출 정도로 가볍게 넘길 수 있겠는가. 어느 때부턴가 교회들 스스로가 당국, 또는 사회로부터 이런 불공정한 취급을 받더라도 속으로 감내하고 드러내지 않는 것이 마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교회의 자세이고 미덕인양 흘러가는 분위기는 일선 교회에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당국이 30% 만이라도 대면 예배를 허용해 준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교회들도 분명 있다. 현장예배를 드린다는 이유만으로 공무원과 경찰들이 예배당 안에 들어가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던 것과 비교한다면 이것도 큰 진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어느새 복음과 신앙의 본질보다 우선시되고 여론과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린 교회들이 압도당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누군들 전도의 문이 막히고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게 되는 상황이 두렵고 떨리지 않겠는가. 그럴수록 교회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세상을 향해 바로 서있는가 하는 물음을 수없이 던져야 한다.

정부를 향해 왜 처음부터 강한 목소리로 투쟁하지 않고 협상했는가를 탓하는 게 아니다. 권력에 순치돼 예배를 '관혼상제'의 하나쯤으로 만들어도 저항하지 못하는 교회는 이미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아니다. 코로나 이후에 또 어떤 상황논리에 의해 교회 문을 닫아야 할 날이 오면 그때는 분명 다를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