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교만과 태만에서 벗어나라

오피니언·칼럼
설교
홍석균 목사

본문 : 아모스 6장 1-14절

세계역사는 지도자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말은 지도자 우월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중심에는 항상 지도자가 있었다는 말이다. 어느 민족, 어느 시대이든 어떤 지도자가 세워졌느냐에 따라서 흥망성쇠가 결정되었다. 이데올로기 시대에 히틀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학살됐지만, 페니실린을 발견한 플레밍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살아났다. 미국 남북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아브라함 링컨을 통해 수많은 노예가 해방되었다. 조선 구한말에는 이완용은 매국노였지만, 안중근은 민족을 살리는 애국자가 된 것은 모든 역사의 중심에는 지도자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하나님은 역사의 중심에 지도자를 세우셔서 일하신다. 천사를 통해서 하시면 더 철저하고, 직접 하시면 더 완벽하심에도 불구하고 굳이 지도자를 세우셔서 이끌어 가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지도자에게 권한을 주신다. 그 권한으로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신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지도자는 권한도 있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도 선생이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 되기를 조심하라고 했다.(약 3장 1절)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에게 화를 선포하시는 내용이다. 하나님은 왜 재앙을 선고하셨나?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교만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백성들의 머리인 지도자들이여”(1절) 재앙의 이유는 지도자에게 있었다. 백성을 섬기고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는 지도자가 오히려 백성들을 수탈하고 향락과 사치를 즐겼던 것이다.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포악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3절), 백성들의 피땀 흘린 노동의 대가를 착취했다. “상아 상에 누워 침상에서 기지개를 켜며”(4절) 착취한 그 돈으로 비싼 상아 침대를 만들어 사치를 즐겼다. “비파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5절)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며”(6절) 지도자의 집에는 매일같이 음주가무가 벌어졌다. 결국 그 향락소리에 취해 지도자들은 백성의 절규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지도자들이 이러한 향락과 사치를 일삼았던 원인이 무엇인가?

첫째는 ‘교만’(arrogance) 때문이었다. 6절 하반절은 지도자의 타락의 이유를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요셉의 환난에 대해서 근심하지 않는다는 말은 관심이 없었다는 뜻이다. 요셉은 이스라엘의 조상이다. 요셉을 기억할 때 우리는 총리 자리에 오른 요셉만 기억하면 안 된다. 요셉의 환난을 먼저 기억해야 한다. 요셉도 형에게 팔려가고, 감옥에도 갇히고, 배신도 당했던 환난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때 교만할 수 없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배부르고 안락한 총리 요셉만 기억했던 것이다. 한 자매 청년에게 이상형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환난 당하고 있는 요셉이 아니라 환난을 다 마친 요셉이라고 한 말이 기억난다. 요즘 젊은이들은 고생하기 싫고 영광만 누리겠다는 심보다. 인간이 얼마나 간사하냐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학대당할 때는 살려 달라고 매달렸는데, 조금 여유가 생기고 소유가 늘어나니까 하나님은 안중에 없었던 성경의 역사를 기억할 것이다. 아모스가 활동하던 시대는 북이스라엘은 경제적으로 호황기, 종교적으로 번영기를 누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화를 선포하셨다. 지도자들에게 있는 교만을 보신 것이다. 교만은 변질을 뜻한다. 처음에는 마음이 가난했는데, 어느덧 마음이 간사해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순수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 타산적으로 변한다. 그 모습은 나도 모르게 교만해 지고 있는 증거이다.

둘째는 ‘태만’(negligence) 때문이었다. 태만은 모든 것이 괜찮다는 식이다. 구약의 거짓 선지자들이 줄곧 외친 것이 ‘평안하다. 평안하다’였다. 아모스 시대의 지도자들도 종교를 돈에 결탁해서 평안의 상태가 계속되기를 바랐다. 믿음의 진위여부는 평상시는 모르지만 고난이 찾아올 때 증명된다. 평상시는 모르지만 고난이 오면 다 신앙을 버린다. 그러나 믿음의 진위여부는 고난이 올 때도 증명이 되지만 평안이 찾아올 때도 증명된다. 왜냐하면 평안해도 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고난 가운데 있는가? 더 하나님을 붙들길 바란다. 평안 가운데 있는가? 더욱더 하나님 편에 서길 바란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교만과 태만을 선택했다. 그러니 백성들도 지도자의 전철을 밟게 되었다. 그 결과 성읍과 거기에 가득한 것은 원수에게 넘겨지고, 한 집에 열 사람이 남는다 하여도 다 죽을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또 시체를 태우고, 집은 갈라지고 터지는 상황으로 치닫는다고 하셨다.(8-11절) 마치 창세기의 홍수심판처럼, 계시록에 불심판처럼 휘몰아치는 하나님의 진노로 총체적인 멸망을 선고받았다. 그 이유를 아모스 선지자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정의를 쓸개로 바꾸고, 공의의 열매를 쓴 쑥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12절) 오늘 이 시간부터 다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로 돌아가길 바란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교만과 태만을 꺾어 버리시길 바란다. 변질되지 않고 순수한 신앙을 지키시길 바란다. 건물을 짓는 것은 힘들고 어렵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쌓아 올리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무너진 곳을 하나님의 정의로 세우고, 어긋난 부분을 다시 하나님의 공의로 교정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홍석균 목사(한성교회 청년부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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