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의 재회에도 아픔 있는데 70년의 분단은…”

교단/단체
선교
황지현 기자
jhhwang@cdaily.co.kr
탈북민 주찬미 전도사, 북한구원 화요모임서 간증
주찬미 전도사(탈북민, 하나목양교회) ©에스더기도운동 유튜브캡처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 10분에 진행되는 ‘탈북민센터 북한구원 화요모임’ 23일 모임에선 주찬미 전도사(탈북민, 하나목양교회)가 북한에서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을 만났지만 방황하며 살다가 하나님 앞에 부름 받기까지의 간증을 전했다.

주 전도사는 “함경북도 길주에서 태어났다. 언니들이 테니스 선수, 탁구 선수에 공부를 잘했는데 대학을 못 갔다. 북한은 집안의 성분이 나쁘면 대학을 갈 수 없는데, 아버지가 기사장으로 있던 공장에 불이 나서 책임지고 감옥을 갔다 온 경력이 있어서 막힌 것이었다. 간부 자녀들은 공부를 못 해도 좋은 대학을 가고, 나는 배구선수로 경연대회를 싹쓸이하고 공부를 잘해도 좋지 않은 대학밖에 갈 수 없어서 가지 않으려고 했다. 형부가 언니들은 공부를 잘해도 대학에 못 갔는데 너는 대학 추천받은 게 어디냐고 장군님이 고맙지 않느냐고, 네가 대학을 가면 집안이 바뀐다며 설득했지만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 같은 사람은 잘해도 대학의 명예, 회사의 명예로 다 써먹고 마지막 결론은 간부 자녀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대학을 졸업하고 집으로 와서 고난의 행군을 맞기 전 결혼을 했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자마자 시아버지는 굶어 죽었다. 나라에서 하라는 대로 하면 무조건 굶어 죽는 것이다. 점점 힘들게 되니 도둑질, 강도질, 사기는 기본이었다. 제철공장 근처에서 철판을 뜯어서 만들어진 물건을 팔아 모은 돈으로 근처 바닷가에서 오징어를 잡아다가 돈을 벌어 저축했다. 그 돈을 옆집에서 빌려서 달아나는 바람에 그 사람을 잡는다고 하다가 중국까지 오게 되었다. 그때까진 중국이 잘 살고, 한국이 더 잘 사는 것을 몰랐다. 사기꾼을 잡을 길은 없고, 중국에 가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9살, 11살 아이들을 두고 중국에 넘어왔는데 가족과 생이별이 되었다. 그때 당시 중국으로 넘어오는 사람들을 잡아서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걸 모르고 넘어왔는데 팔려갔다”고 했다.

이어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저에게 일하셨다. 팔려 가는 도중에 어느 할머니 집에 맡겨졌는데, 이 분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었다. 십자가가 있는 처소교회처럼 보였는데, 북한 사람에겐 십자가가 나쁘고 무서운 것으로 인식되어서 나를 팔려고 온 사람보다 이 할머니가 더 나쁜 사람으로 여겨졌다. 일주일 이후 어떤 아주머니가 와서 팔려온 나의 상황을 이야기해주었다. 이 상황도 충격적이었는데 예수님 이야기까지 하니 거짓말 같고 누가 나쁜 사람이고 좋은 사람인지 모를 정도로 혼란스러웠다”고 했다.

이어 “나를 데리고 잠시 교회로 데려가 피할 곳을 마련해 주면서 하나님이 이렇게 숨을 길을 주셨으니 기다려 보자고 했다. 며칠 후 한국인 선교사님이 오셔서 돈 300원을 주면서 탈출해서 도망치라고 하셨다. 도망치는 길도 하나님이 다 인도해주셨다. 그곳에서 일주일 머무는 동안 ‘나의 등 뒤에서’라는 찬양과 주기도문을 계속 읽게 했었다. 주기도문은 모르고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그 주님만을 자꾸 찾았는데, 하나님께서 가는 걸음 하나하나를 지켜주시고 피하게 해 주셨다. 농촌의 길은 다 보여지는 곳인데, 하나님께서 한 사람도 내가 도망치는 것을 보지 않게 하셨다”고 했다.

이어 “어느 집사님 집에서 석 달을 숨어 있었는데, 성경공부 하는 곳에 가겠느냐고 전화가 와서 혼자 있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서 가게 된 곳이 한국 선교사님이 운영하는 성경통독반이었다. 처음엔 성경을 읽으면서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의심스러웠고, 언제 집에 갈 수 있을까만 생각했다.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이 제 안에 들어오셔서 내 자식만 불쌍한 게 아니라 온 북한이 너무 불쌍하다는 마음을 주셨다. 모세, 요셉에 대해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나도 이렇게 해서 여기 보내주셨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1년이 지나 모세처럼 40일 금식하고 북한에 가고 싶다고 했다. 선교사님이 안된다 하니 오기가 나서 금식을 시작했다. 북한을 품고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셔서 금식을 시작했는데, 일주일이 지나 배로 변이 나오는 19살짜리 아이를 만나게 하셨다. 조선족 선생님을 시켜서 병원에 데려갔는데, 아이에 대한 인적사항을 모르니까 욕만 먹고 돌아왔다. 배에서 변이 나오는 애가 살아서 하나님 앞에 온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가 생각하면서 북한 땅을 위해서 기도하게 하셨다. 북한 위해서 기도하는데 그 애를 보니 우리 애들 생각이 더 나서 빨리 40일이 지나서 북한을 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고 했다.

이어 “금식하며 기도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꿈속에서도 계속 먹여주시고, 계속 구름 속에서 나를 태워주시고 힘들지 않게 해 주셨다. 보식을 할 때도 주변의 자매들을 통해서 철저히 관리하게 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저를 말씀으로 세워 주시고 극적으로 하나님의 보호 속에서 십 년을 그 안에서 살다가 선생님과 오해로 인해 다투고 그곳에서 나오게 되었다. 9년 6개월 되었을 때인데 하나님께서 나를 여기서 떠나게 하시는구나 생각이 들어 나를 전도했던 집사님에게 전화했다. 9년 6개월 만에 전화했는데 번호가 안 바뀌었다. 그곳을 통해서 북한을 가고 싶다고 했더니 교회에서 같이하자고 빨리 오라고 부르셨다. 선생님에게 이야기하고 그날 밤 서로 울고불고 예배를 드리고 헤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집사님에게 갔는데 너무 변해 있었다. 빨리 나가라는 하나님의 음성 같은 것이 머리에 딱 들어와서 한밤중에 달려 나와 회개했다. ‘하나님 저 통독학교에서 안전하게 말씀 보며 준비해서 북한 들어간다고 기도해 놓고 밖에서 뭐하는 겁니까?’ 돌아가게 해 달라고 울면서 기도했다. 캄캄한 밤에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데 멀리서 빨간 불이 보여서 다가가 보니 십자가였다. 십자가만 바라보며 교회에 가서 문을 여니 어떤 남자분이 기도하다가 내 몰골을 보고 놀랐다. 사모님을 불러서 옷도 주고 밥도 주셨다. 감사기도와 내가 선생님에게 잘못했다고 하고 옆에 있었으면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마음에 회개 기도가 되었다”고 했다.

이어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축복을 허락하셨다. 9년 6개월 중국에 있으면서 북한하고 연결되고 전화할 수 있다는 걸 몰랐는데, 전도사님을 통해서 북한하고 연락할 수 있는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다. 북한 무산에 있는 사람과 연결되어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선 처음엔 6,000원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12,000원을 불렀다. 그동안 돈을 안 벌고 하나님께 매달려서 북한 가겠다고 기도만 했는데, 애들을 데려오겠다 생각하니 그동안 하나님 앞에 기도한 건 없고 아이들 데려오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삼일 금식을 연이어 하면서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기도했다. 한국에서 들어오는 선교사님들 통해서 12,000원을 만들어서 아이들을 다 데려올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데려오는 동안도 하나님께서 걸음걸음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배치해 주셨다. 심양은행에서 돈을 입금하고 연길에서 찾으려고 하는데, 입금한 곳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심양에서 연길까지가 2박 3일인데 내일 아이들을 만나야 하니까 기도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같이 간 전도사님을 통해서 연길에 있는 목사님에게 돈을 빌릴 수 있게 해 주셨다. 애들을 데리고 온 다음에도 가는 걸음걸음을 인도해 주셨다. 목사님이 연길에서 오래 사시고 큰 사업을 하는 분이어서 가는 길을 다 가르쳐 주셔서 전도사님 있는 교회까지 다시 올 수 있었다. 애들을 10년 만에 만났는데 10살, 11살 때 키에서 한 뼘 정도만 자랐다. 이제부터 하나님이 키워달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안 키워주신 이유가 있었다. 19살, 21살인데 어려 보이니까 단속도 안 하고, 움직일 때 안전하게 해 주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렇게 지내는 동안 한국에 가서 더 공부하고 북한을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께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저 애들을 온전히 키워야 한다고, 한국 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북한 땅을 바라보고 내 부모 내 형제 위해서 기도하면서 사십일 금식을 한 건데, 아이들을 데리고 오니 인간적인 생각이 더 많이 들어왔다.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구하기보다 이 애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사람들만 보게 되었다. 한국에 있는 목사님의 도움으로 캄보디아를 거쳐서 아이들과 무사히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지금과 다르게 그때는 도우미도 없고, 교회를 직접 찾아다녀야 했었다. 애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너희를 살려주시고 데리고 왔으니까 교회 가자고 해서 이리저리 데리고 다녔는데, 교회 가면 말씀이 이상하고 세상 말만 하고 끝나니 언젠가부터 교회를 안 가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저를 사랑해주시고 공부시켜 주시고 먹여주시고 지옥에서 살려주셨다는 죄책감은 있으면서도 교회에 가기 싫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과 만남의 기쁨과 행복과 감사는 잠깐이고, 왜 나를 한국에 데려왔느냐고 막 돌아다니면서 살게 놔두지 그랬냐고 원망하고 불평했다. 나도 그렇게 사랑하면서 기도했는데 왜 데려왔는지 후회하면서 지냈다. 아들이 계속 사고를 치고 다니고 경찰서에서 연락이 오니 어느 날 어디에서 전화가 올까봐 겁이 났다.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돈 벌며 열심히 살려고 했다. 애들은 계속 사고치고 돈을 버는 대로 사고 수습하는데 돈이 들어갔다. 계속 돈을 벌어도 아이가 사고를 친 것을 갚다 보니까 끝이 없었다. 사람을 보고 교회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바로 서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교회를 안 가고 기도만 했다”고 했다.

이어 “12월의 어느 날 성탄을 준비하느라 반짝반짝하는 것을 보면서 중국에서 10년 동안 신학 공부하고 말씀 읽던 것, 한국대학생들 단기선교팀과 같이 성탄 준비하며 찬양하고 율동 배우던 생각이 났다. 하나님께 아무 교회나 가고 싶다고, 가서 하나님 마음껏 찬양하고 성탄 준비하고 싶다고 기도했다. 아파트 옆에 교회가 있어서 새벽기도를 가기 시작했다. 아까 읽었던 이사야서 말씀을 읽어 주셨다. 하나님께서 ‘찬미야 너를 땅끝에서부터 붙잡고 있다. 땅 모퉁이에서 너를 불렀다. 네가 지금 뭐 하느냐’고 말씀하셨다. 그 다음부터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겠다면서 새벽기도를 일 년 동안 매일 갔다. 돈만 벌고 빚은 늘어가는데 그때부터는 슬프지도 않고, 하나님께서 저를 만져주기 시작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 신분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하나님이 자꾸 깨닫게 하셨다. ‘너는 저 땅 가야 해. 너 저 땅에서 하나님이 불러주셨잖아. 너 같은 사람이 저 안에서 굶어 죽고 우상이 뭔지도 모르고 있어.’ 새벽기도 나가서 회복되니까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셨다. 만나는 사람마다 믿는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시고, 탈북민들도 만나게 해 주셨다. 신대원 가기 전에 북기총(북한기독교총연합회)에 갔는데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하나님의 종으로 준비시키고 훈련하고 목사님들로 키워주셨는가를 보며 감사했다. 수원의 어느 교회는 얼마나 북한을 위해서 기도하는지 각 구역 이름이 다 북한 지명으로 되어 있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온다 하고 방황하고 있을 때도 하나님께선 이렇게 많은 사람을 준비시키고 기도하게 하셔서 나를 돌이키게 하셨다고 생각하니 감사했다”고 했다.

주 전도사는 “한국은 북한의 실상을 이야기해주는 탈북민도 있고, 각 채널과 다양한 뉴스가 있지만 북한은 오직 김일성 뉴스만 있고, 한 채널만 있으니까 북한엔 실상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북한 땅은 한민족, 한나라지만 70년 동안 김부자의 우상을 섬기면서 살아가는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하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원하시는 때에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사람들을 통해 세워주신 종들을 통해 이 일을 하신다는 것을 날마다 기도하며 깨닫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애들을 위해 계속 기도하지만 변화되는 것이 안 보인다. 이따금 엄마가 기도해서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할 때는 가슴에 엉켰던 모든 것이 다 내려가는 것 같다가도 그 순간이 지나면 엄마 때문에 거기서 고생했다고 한다. 내 자식이지만 대화가 안 되고 잔소리하면 그대로 가시와 독이 되어서 나에게 돌아온다. 옛날에는 많이 울었지만 지금은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 ‘북한이 저렇게 강퍅합니다.’ 기도하면서 애들을 통해 북한의 강퍅한 모습을 보게 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신 그 사랑이 없다면 내 자식도 거느릴 수 없다는 걸 날마다 깨닫게 해주신다. 십년 만에 만나는 것도 이렇게 아픔이 큰데 70년의 분단, 70년 만에 만나는 만남과 앞으로 하나 됨은 어떻게 할까 기도하게 된다”고 했다.

이어 “그동안 하나님 앞에 방황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만들어 가셨다고 생각한다. 겉은 멀쩡한데 속은 병자들인 탈북민들 보면 가슴이 아프다. 자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왜 보내주셨는지를 가슴 뼈저리게 생각하고 기도하면서 아침마다 묵상한다. 구원받아서 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지만 나와서는 다 방황하고 있다. 북한에서 바로 오는 사람들, 중국에서 20~30년 있다가 오는 사람들,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그 사람들이 나를 찌를 때는 내 모습을 보게 하신다. 지금 있는 모든 상황과 조건들이 하나님께서 나를 준비하시는 귀한 시간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열심히 배우고, 북한 위해서 온전히 주님께서 ‘네가 거기 가라’ 할 때 갈 수 있는 자로 세워지길 기도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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