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의 도발은 韓 아닌 美에 대한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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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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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서 바라보는 한반도 정세 분석
美 직접적 도발 부담스러 한국 겨냥
“北의 폭파 원인 '대북 전단' 아냐”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우회적인 불만 표출이라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빈 손 복귀'에 대한 누적된 분노 표출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 도발은 미국을 직접 자극하는 대신, 한국을 겨냥해 수위 조절을 했다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16일(현지시간) '연락사무소 폭파는 한국과의 관계 종말의 신호(death knell)'라는 기사를 통해 "지난 2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2차 정상회담에서 빈 손으로 곤혹스럽게 돌아왔던 북한 지도자 김정은의 누적된 분노가 폭발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이번 폭발은 사실상 지난 2년 동안 유지됐던 한반도에서의 데탕트(긴장 완화)를 부쉈다"라며 "이번 폭발로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우호적 관계 실체적 유산 중 하나를 파괴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법에 대한 자신의 분노 또한 표시했다"고 했다.

지난 2년간 화해 무드를 조성하긴 했지만, 실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 관계는 틀어져 왔다는 게 NYT의 시각이다. 특히 지난해 2월 하노이 회담에서 경제 재건을 위한 제재 완화가 이뤄지지 않은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NYT는 "김정은에게 이는 보기 드문 곤란한 상황이었다"라며 "(북한의) 선전 담당자들은 그가 기념비적인 무언가를 달성하리라는 내부 기대를 구축했었다. 대신 그는 빈손으로 귀국함으로써 나약해 보이는 위험을 감수했다"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한국을 비난한 배경에는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김정은 정권이 미국을 직접 자극하는 대신 보다 안전한 도발 상대로 한국을 택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NYT는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분석을 인용, "북한은 내부 불만과 분노를 표출해야 했지만, 직접적으로 미국을 도발할 경우 보복을 두려워했다"라고 전했다. 한국을 겨냥해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우회적으로 미국에도 불만의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미 국방부 출신 반 잭슨 웰링턴 빅토리아대 교수는 같은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TF)에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배신당했다고 느끼며, (미국이 자신들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하는 제재 완화를 여전히 필요로 한다"라고 지적했다.

잭슨 교수는 다만 "미국을 직접적으로 공격할 경우 피할 수 있었던(불필요한) 긴장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라며 "한국을 겨냥하는 행위는 조율된 공격"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위험 부담을 고려해 수위를 조절한 도발을 행했다는 의미다.

북한이 이번 연락사무소 폭파를 기점으로 국제사회의 양보를 바라고 위기를 조성하는 일종의 '사이클'로 접어들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레이프 에릭 이즐리 이화여대 교수는 FT에 "북한은 단계적 긴장 고조를 통해 도발 사이클을 시작했다"라고 했다. 다만 그는 "미국으로부터 추가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즉각 넘어갈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수미 테리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김정은 일가는 통상 협상 테이블을 다시 꾸리기 위해 압박 수위를 높인다"라며 "트럼프 대통령 두 번째 임기나 조 바이든 행정부 첫 임기에 대화가 재개되면 레버리지를 확대하려는 목표"라고 평했다.

또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원인을 대북 전단(삐라) 살포에서 찾아선 안 된다는 전문가 분석도 나왔다.

미 국방부 출신 반 잭슨 웰링턴 빅토리아대 교수는 트위터를 통해 "전단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건 나무를 보느라 숲을 놓치는 일"이라며 "전단은 과거에 공허한 위협 외엔 어떤 문제도 발생시키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다른 트윗에선 "제재 완화의 필요성이 이번 공격의 명확하고 강력한 동기"라고 했다. 또 "북한은 트럼프에게 배신당했다고 느끼고 있으며, 북한이 제재 완화를 여전히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일이 벌어졌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아울러 북한의 도발적 패턴을 바꾸려면 실질적인 대북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내놨다. 그는 "우리가 북핵을 현실성 있게 다루는 데 진지한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이런 종류의 '전쟁 일보 직전(brink-of-war)' 행태는 영구적 조건"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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