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용조 목사 소천] 故 하용조 목사가 '걸어온 길'

크리스천 연예인 사역 관심 커…온누리교회 세계적 규모로 키워

온누리교회 하용조(사진) 목사가 2일 오전 8시40분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투석 등 장기간 투병생활을 해왔던 하 목사는 1일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갑작스런 뇌출혈로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며 하나님 품으로 돌아갔다.

고인은 1946년 평남 진남포에서 태어나 건국대와 장로회신학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1985년 온누리교회를 세워 신자 7만 5,000여명이 등록한 국내 대표적인 대형교회로 키웠다. 서울 한남동 한국기독교선교원에서 12가정이 모여 기도한 것으로 시작된 온누리교회는 현재 서울 서빙고동 교회를 비롯해 양재 부천 수원 대전 등 전국에 9개 교회와 4개 기도처, 25개 비전교회를 두고 있다.
 

하용조 목사는 1965년 한국대학생선교회(CCC)에 입문, 이듬해 8월 4일 열린 여름수련회에서 주님을 영접하고, 그곳에서 7년간 사역했다.

이후 1972년 장신대에 입학, 재학 중 마포교회 교육전도사로 사역했고, 1976년 5월 예장통합 목포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목사 안수 2년 전부터 연예인들과 성경공부를 시작했는데, 목사 안수와 동시에 이들과 함께 연예인교회를 개척했다. 당시 그는 하루 4시간씩 자고 7번 설교하고 철야·금식기도를 계속했다고 한다.

연예인교회 성전이 완공될 무렵인 1980년, 하 목사는 평소에 나빴던 간이 악화되면서 간경화로 판명, 사임 후 영국으로 떠났다. 영국에서 그는 여러 선교단체와 교회, 학교들을 접하고, 여기서 얻은 경험으로 1985년 한국으로 돌아와 그해 10월 6일 온누리교회를 창립한다.

이후 20여년 간 온누리교회는 전국과 전세계에 지교회를 세우며 많은 성장을 이뤘다. 여기에 두란노서원을 세워 문화사역에 힘썼으며, CGN TV를 설립했다. 초창기 동생인 하스데반 선교사가 이끄는 ‘경배와찬양’을 통해 당시 예배음악의 혁신을 이뤄냈고 최근에는 일본·대만 등 아시아권을 공략하는 전도집회 ‘러브 소나타’와 ‘ACTS29’ 비전에 매진했다.

그는 Biola University에서 명예 문학박사, 트리니티신학교에서 명예 신학박사, 장신대에서 명예 신학박사, 명지대에서 명예 철학박사 등의 학위를 받았다.

저서에는 <사도행전적 교회를 꿈꾼다>, <나는 선교에 목숨을 걸었다>, <설교 사전>, <비전성경사전>, <기도하면 행복해집니다> 등과 각종 강해설교 시리즈 등이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형기 씨와 1남 1녀가 있으면 고인의 빈소는 온누리교회 서빙고 본당 두란노홀에 마련됐다. 발인 예배는 4일 오전 9시 서빙고 본당에서 거행될 예정이며, 장지는 강원 원주시 문막읍 궁촌리 산152 온누리동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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