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우한 기독교인의 ‘도시봉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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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우려가 중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하는 가운데, 현재 중국 SNS에서는 자신을 '90년대생'이라고 밝힌 우한시 한 기독교 여성의 글 <도시봉쇄 일기>가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본지는 이 글의 주요 내용을 번역해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이 사진은 글의 내용과 관계가 없습니다.) ©pixabay.com

예전에 나는 외출을 할 때마다 우한이 너무 복잡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도 차도 너무 많았고 또 도시계획으로 인한 도로공사도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이 도시는 조용해졌다. 이 도시는 병들었다.

내가 일하는 곳은 한커우에 있는데, 화난해산물시장에서 4km가 못되는 거리에 있다. 나는 매일 우한 기차역에서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웨쟈주이에서 8호선으로 갈아타곤 했다. 올해 나는 특히 추위를 많이 타서 날씨가 추워지자마자 면으로 된 마스크를 끼고 다녔다. 신정이 지난 후에도 지하철에는 마스크를 낀 사람들이 얼마 없었다. 1월 19일 우한정부에서는 하룻밤 사이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신규 확진자가 136명 늘었다고 통보했다. 1월 20일, 즉 음력 12월 26일 되는 날은 내가 음력설 전에 마지막으로 출근하는 날이었다. 지하철에는 마스크를 낀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지만 주로 젊은 사람들이었다.

지난 12월 말 우한정부는 27건의 바이러스성 폐렴이 발생했다고 공표했지만 사람간 전염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 짧은 보도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도 더러 있었겠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이 소식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마치 돌멩이 하나를 잔잔한 호수에 던졌는데 물결이 잠깐 일다가 잠잠해진 것처럼 말이다. 많은 노인들과 뉴스의 핫이슈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이미 전투가 자신들의 옆에서 조용히 터지고 있음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전 가족이 자동차를 타고 탈출할까도 생각했었다. 1월 20일 중난산원사가 우한에 현지답사를 하러 왔을 때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겼었다. 그리고 중난산원사가 신종폐렴이 사람간 전염이 가능하다고 말했을 때에야 우리는 정말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아빠는 좀 더 많이 두려워하면서 자꾸 우리에게 이마를 만져 보라고 하고 열이 나는지 확인했다. 나도 어디 안 좋은 데가 없는지 몸상태를 체크하면서 무의식중에 이마를 만져보곤 했다.

그날 나는 남동생과 함께 물건을 사러 마트에 갔는데 내가 자동차를 운전해서 가자고 고집했다. 마트가 우리 집에서 세 정류장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평소에는 버스를 타거나 스쿠터를 타고 갔었다. 그런데 마트 입구에 도착하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끼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는 엄마가 제일 믿음이 좋아서 우리가 당황하고 무서워할 때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해주셨다.

20일부터 도시를 봉쇄하기까지는 삼일밖에 지나지 않았다. 1월 23일 잠에서 깨어보니 우리는 이미 도시에서 나갈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도시의 봉쇄는 너무나 갑작스러웠고 우리에게 그 어떤 준비나 생각의 여지조자 주지 않았다. 우리와 같은 아파트단지에 사시는 이모네는 도시를 봉쇄하는 날 아침에 자동차를 운전해서 외진 길로 탈출할까도 생각했었지만, 일단 도시를 떠나면 가족들의 의식주 문제며 또 다른 지역 사람들의 배척을 받을 것을 생각하니 탈출할 생각을 접게 되었다.

도시 봉쇄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엄마에게 집에 먹을 양식이 부족하지 않은지 물어보았다. 아빠가 그 말을 듣고 바로 마스크를 끼고 조용히 아파트지하에 있는 마트에 가서 쌀 한 자루를 사오셨다. 남동생도 바로 약국으로 가서 마스크 50개를 구입해왔다. 오전에 나는 친척들에게 전화를 해서 음력설 기간에 서로 방문하지 말고 각자 집에서 조용히 보내자고 말해주었다. 사촌오빠와 새 언니는 타지에 있었고 또 두분 다 의사였기 때문에 원래 춘절에 고향에서 와서 설을 쇠려고 했지만 그 계획을 취소하고 윗선의 명령을 기다리면서 수시로 우한을 지원할 준비를 했다.

갑자기 도시를 봉쇄하는 바람에 정보가 막히면서 곳곳에서 유어비어가 난무했다. 어떤 사람은 우한에 바이러스로 감염된 사람이 천만이 넘었다거나 도시를 봉쇄했다는 것은 나라에서 우한을 포기하고 우한사람이 자멸하게 한다는 등이었다. 오후에는 이웃에 사는 할아버지 한분이 빨리 우한을 떠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원망스러워했다. 자신이 시골로 가면 환경이 도시보다는 못해도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을 거라면서 한탄했다. 마트의 물건들은 순식간에 동이 났다.

우한은 하루가 다르다. 1월 23일 저녁 7시, 같은 아파트단지에 사는 이모, 삼촌, 사촌언니, 사촌동생이 마스크를 끼고 우리 집에 왔다. 우리는 바닥에 꿇어앉아서 조용히 '야베스의 기도'라는 찬양을 불렀다. "원컨대 주께서 나에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와 동행하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우리는 울먹이면서 찬양했다. 그러나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마치 버림받은 것만 같았던 우한의 '고아'들은 다시금 의지할 곳을 얻게 되었고 긴장된 마음에도 조금씩 평안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기도할 때 우리는 우리의 동포를 위해서 회개했다. 우한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이 있는데 '뿌씬시에(不信邪, 못한다는 걸 인정할 수 없다는 뜻)'라는 말이다. 이미 사스의 교훈이 있었음에도 우리 우한 사람들은 여전히 "뿌씬시에"한다. "뿌신시에"하는 우한사람들은 자기자신을 너무나 믿었다. 우리는 9개 성의 교통요충지이며 중국 중부에서 가장 큰 도시라고 자부했다. 우리는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전을 제외하고 중국도시의 '넘버 원'이라고 자부했다. 세계군인체육대회를 우한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우리는 더욱더 의기양양해졌고 자부심이 극에 달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단번에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고 외로움과 무기력함에 휩싸이게 되었다. 우리는 함께 우한을 위해서 기도했고 다른 전염병이 확산된 도시를 위해서 기도했으며 최일선에서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인들을 위해서 기도했다. 우리는 "뿌신시에"하는 우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후베이성 주변의 7개 성에서 후베이로 통하는 도로를 다 파괴시켰다고 한다. 후베이성은 고립된 섬이 되었고 우한은 고립된 섬 속에 있는 고립된 도시가 되었으며 각 가정은 '고아'가 되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나는 영국의 작가 빅토리아 히슬롭의 장편소설 '섬'에 나오는 '스피나롱가 섬'이 생각났다. 그곳은 세상과 격리된 고립된 섬이었는데 나병환자들의 유배지였고 죽음을 기다리는 감옥이었다. 또한 많은 우한 밖에서 체류하고 있는 우한 사람들은 스피나롱가 섬에 유배된 나병환자들처럼 주변사람들의 경계와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전염병사태가 터지기 전에, 우한시의 도시 타이틀은 "우한, 하루 하루가 다르다"였는데, 지금 전염병 사태도 하루 하루가 달라지고 있다. 같은 아파트단지내에서도 우리는 서로 방문하기를 두려워했다. 그러나 문은 닫았을지라도 우리 안에 위엣 것을 찾는 영적인 필요까지는 닫아놓지 못했다. 우리는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채팅방에서 음성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휴대폰에 대고 함께 찬양하고 함께 기도했다. 이어진 며칠간, 매일 밤 8시가 되면 친척들은 모두 온라인으로 음성통화를 통해 같이 성경을 읽고 찬양하고 기도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읽은 성경본문은 '시편 91편'이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부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리시니 네가 그 날개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1월 26일 일요일은 초이튿날이었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주일예배를 중단하고 온라인에서 예배하기로 했다. 예배는 가정 단위로 진행되었다. 나의 할아버지는 아직 예수를 믿지 않으시기에 아빠가 주일예배를 인도했다. 지난달 성탄절때만 해도 나는 교회의 목사님께 사역이 합리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투덜거렸었다. 나는 직접 프로그램도 해야 했고 사회자도 해야 하고 사회자가 읽을 글도 써야 했고 성가대도 해야 하고 셀그룹도 하는 등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그 때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지금 이렇게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세요. 늙었을 때는 오늘날이 그리울지도 몰라요. " 그러나 아직 늙지도 않았는데, 한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나는 이미 교회에서 모임을 하고 뛰어다니면서 눈코뜰새 없이 바빴던 시간들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도시를 봉쇄한 후 며칠동안 90년대 이후에 출생한 나는 처음으로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 또한 평생 처음으로 나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잠복기는 3~7일이고 최장 14일까지 갈수도 있다고 한다. 전염병이 발발하기 전에 나는 거의 매일 한커우에 인구밀집지역을 오갔고 내가 일하는 곳도 지금 세계에서 유명해진 화난해산물시장에서 너무도 가까웠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예수님을 믿었던 나는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두려웠다. 내가 잘못해서 하나님께서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라고 하실까봐 두려웠다. 우리의 생명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삶이란 의미가 있는 것인가? 죽음 이후에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어디가 우리의 고향이며 어디가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는 곳이란 말인가?

1월 27일 NBA의 농구스타 코비 브라이언트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갑자기 사망하고 그의 13살 된 딸도 함께 조난당했다. 휴대폰에서 이 뉴스를 접했을 때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진실은 우리는 참으로 나그네라는 것이며 이 땅에 우거하는 자일뿐이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이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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