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그리스도인의 삶의 행동 원리" (롬14:1-12)

교회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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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다문화 선교센터 대표, 연합교회 담임 이선규 목사
대림다문화센터 대표, 대림중국교포교회 이선규 목사

여러 이삿 짐 센터에 이사 문제를 의뢰 했는데도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다며 거절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손 없는 날에는 너도나도 이사를 하기 때문이다.

결혼식도 마찬가지, 손 없는 날에는 예식장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

초대교회 당시에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다.

이방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렸는데 그 제물의 고기를 먹는 문제와 날의 길흉을 가리는 일로 다투는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해 본문에서 바울은 “어떤 음식은 먹어도 되고 어떤 음식은 안 됩니다. 라든가 “어떤 날은 소중하니 그렇게 아시오”라는 식으로 대답하지 않고 그 해결책으로 “자기를 위하여 사 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라고 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대답한다.

이 말씀이야 말로 실마리를 풀어주는 열쇠이다.

다툼의 가장 큰 이유는 나를 내 세우기 때문이다. 나를 내 세우지 않고 주님을 위하며 주님을 영광 스럽게 한다면 모든 다툼을 쉽게 해결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를 위해 사는가?

모든사람들이 이 세상에 살다가 죽어 가는데 이를 피할 자는 하나도 없다.

사람은 모두다 그 범주 안에서 살아가는데 이 모든 종류를 종합해 보면

자기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있다.

자기만을 위하는 생활이니 얼마나 비열하고 저속한가? 심지어는 부모 형제도 개의치 않고 오직 자기만 있을 뿐이다.

어던 사람은 자기 가족만을 위해 사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한 핏줄로 연결되는 가족을 말하는 것으로 친족의 울타리 안에 있는 식솔들을 말하는 것으로 부모를 위해 평생 고생을 무릎 쓰고 희생하는 효자 효부들 자식과 부모, 남편을 위하는 아내의 절개 형제를 위해 죽기까지 하는 사랑의 실천생활은 그래도 낫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나라와 동족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있고 모든 세계를 위하여 사는 사람 도 있다

때로 우리는 일을 시작 할 때 이일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또는 이 사업을 하는 것이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일까? 이 사람을 만나는 것이나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이에 대해 본문은 믿는 이를 위한 행동 원리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정확한 영적 원리를 찾아서 그대로 내 방법이나 내 삶을 수정하면서 나가면 하나님은 우리를 귀하게 쓰실 것이다.

첫째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이 일 행하는 것이 사욕인가. 아니면 야심인가? 이것을 늘 생각해야 한다.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을 위하여 잘못 구함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보자.

자신을 위함인가? 하나님을 위함인가?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어 졌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한다.

우리가 왜 자녀들을 고생 가운데 키우는가. 자녀를 바라보기만 해도 예쁜 것 처럼 믿음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바라보기만 하셔도 대견하게 보시고 기뻐하신다.

둘째: 그것이 유익한가? 셩경에서 보면 육적인 것을 선택하고 갈망하던 에서와 영적인 것을 갈망하여 믿음의 아버지가 되는 야곱이 등장한다.

이 원리를 깨닫고 이것이 영적 유익이 된다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인내하고 내 나가면 하나님은 기억하시어 복을 주실 것이다.

이 일이 나의 신앙에 유익한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가를 묻고 행동에 옮기자.

셋째: 사도 바울은 여러분이 믿음이 있습니까? 라고 물으며 그 위에 덕을 세우라고 강조 한다.

산을 옮길 큰 믿음이 있다고 해도 덕이 없으면 믿음의 효력은 감소된다.

믿음 위에 덕을 세우는 사람은 자신을 세우고, 남을 세우고, 가정과 세상을 세우고 역사를 세우게 될 것이다.

고린도 교회가 제사 음식을 먹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에 대해 바울은 이 편지를 쓸 당시 로마나 각 도시에는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 중에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이 많았다. 그런데 문제는 개종한 그들이 전에 가지고 있던 유대교의 옛 규례들을 버리지 못하고 온전한 기독교이 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이방인 개종자들이나 바울과 같이 믿음이 성숙한 자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자칫하면 서로 비판을 하게 되었는데 바울은 말한다.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인가? 그렇다 우리는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 하인에 불과하다. 이렇다 저렇다 말할 권리가 우리 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복음이 들어온 사람이라면 이전의 율법에서 자유로워지고 메이지 말아야 하는데 먹는 문제로 논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고기를 먹느냐 먹지 말아야 하느냐? 는 본질이 아니다.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먹고 먹는 것이 양심에 거슬리는 사람은 먹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본질적인 것에는 흔들리지 말자.

로마서를 통해서 주어진 하나님의 메시지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이다.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이다.

이것은 굉장히 본질적인 것이다.

그런데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면 우리는 그것과 싸워야 한다.

행위 구원을 얻고자 하니까 면죄부를 판매하는 것이다.

우리가 종교개혁을 계속 기념하는 것은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가?”라는 본질에 서 있는 가를 확인 하자는 것이다.

처음에는 모두가 선한 목적으로 시작 했는데 나중에는 엉뚱한 곳으로 빗나가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아 왔다.

우리는 진리에 대하여는 바위처럼 흔들리지 말아야 하나, 진리가 아닌 것에는 고집을 피우거나 목숨을 걸 필요가 없다.

본질에 대해서는 버티고 물러서지 말아야 하고, 본질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물처럼 흘러야 한다.

우리는 주님 앞에 서면 아무것도 아닌 싱거운 주제들로 싸우지 말자.

우리는 항상 물어야 한다.

내가 여기에 에너지를 쏟고 생명을 바쳐야 하는가. 중요한 것은 본질이고 비 진리이다.

문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 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우리가 가져야 할 중요한 목표는 ”주를 위하여“이다.

바울이 우리에게 주는 궁극적인 메시지는 ’자유‘이다.(6)

우리가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난 후에 변화는 우리를 얽매이게 하는 많은 것들로 부터 자유하게 되었다.

우리는 주신 모든 것을 감사하게 여기면서 받으면 된다.

내 생각이 항상 옳다고 여기면 내가 곧 예수님이 되는 것이다.

그런 말은 예수님만 할 수 있는 말이다.

내 말만 맞다 하는 것은 타인에게 폭력이 되는 것이다.

신앙이 강하다고 하는 것은 약한 자를 허용할 줄 아는 것이다.

믿음이 강한 것이 상대방을 깎는 것으로 드러난다면 그것은 악한 것이다.

성숙한 교회는 오래된 신자들일 수록 말 수를 줄이고 헌신을 많이 하고 열심을 낼수록 겸손 해지고 헌금을 많이 해도 자기 소리는 낮추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곳이 좋은 교회이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개인적 확신의 원리를 말하고 있다.

주의나 사상에 동요하지 말고 양심과 성령의 감동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살면 결과도 하나님이 책임져 줄 것을 믿고 나가면 하나님의 역사는 나타나게 될 것이다.

혹 견해의 차이가 있을 경우라도 함부로 비판을 하지말자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도 항상 의견 충돌이 있을 수 있다.

마르틴 루터가 마지막 종교 재판 때 재판관이 변명을 하라고 했다.

그때 그는 “모세가 아무 변명을 하지 않았듯이 나도 아무 변명도하고 싶지 않다.

예수님이 아무 변명도 않았듯이 나도 아무 해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결론적인 말씀은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않은 그 모든 것이 죄이다.

내게 성령의 감동이 왔을 때 ‘나누어 주어라’ 하면 그 시간에 나누어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손길이 붙드는 사람은 의무 이상을 사는 사람이다.

바울은 고전 8:11절에서 그리스도인의 행동원리를 제시하면서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했다.

어떻게 해야 멸망치 않게 할 수 있는가?

믿음이 약한 자의 그 단점을 비판하지 말아야 형제를 멸망으로 내 몰지 않을 수 있다.

관심과 이해로 관용하고 납득 시키고 이해시켜 그리스도인의 행동 원리를 바로 알고 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자.

TV에서 방영하는 사극을 보면 마음으로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목숨까지 바치며 임금을 섬기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는 주님께 속한 신앙인으로서 주인이시요 상전이신 주님에게 얼마나 충성하며 영광을 돌리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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