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소개] 치열한 순종

[책 소개]

성령에 이끌려 치열하게 순종하라 

"너희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감사할 수 있느냐?"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우리 가운데 복음을 들을 자는 아무도 없다. 고린도교회를 생각하면 교회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교회는 이미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의 공동체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세상과 연결된 것들을 끊어버리고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공표하는 공동체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지 못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모두를 부르셨지만 모두를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들 중에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 뜻대로 사는 사람들을 기뻐하신다.

[저자 소개]

김병삼

아버지의 건강 악화로 딱 1년만 대신할 줄 알았던 만나교회 담임목사로서의 시간이 어느덧 13년을 넘기고 있다. 그사이 아버지의 소천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는 오히려 사역의 지경을 넓혔다.

저자는 무엇보다 성도가 행복한 교회, 세상이 인정하는 교회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비신자도 불편해하지 않는 교회 카페', '교회 내 흡연실', '트로트 특송' 등 새로운 것을 고민하고 도입함으로써 이웃과 성도를 행복하게 한다.

2천 년 전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서 우리와 같은 죄성을 발견한 저자는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고, 삶에서 그리스도만 드러내기 위해 우리가 취할 것은 말씀에 대한 순종뿐이라고 권면한다. 복음은 앎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함으로 삶 속에 나타내야 한다고 외치는 저자는 더 많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치열한 순종'의 결단을 제안한다.

만나교회의 담임목사이자 성도의 영적 아버지로서 사역하고 있는 저자는 (사)월드휴먼브리지 대표이사, 하늘다리호스피스 이사장 등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귀한 일꾼으로 쓰임받고 있다. 감리교신학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역사신학을 전공했으며, 미국 시카고 게렛(Garrett)신학교에서 신학석사(M.DIV), UTS(United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선교학박사(D.MISS)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액션플랜》, 《누가 왕인가?》(이상 두란노), 《그래야 행복합니다》(샘솟는기쁨) 등 다수가 있다.

[목차]

프롤로그 치열한 순종의 흔적이 있습니까?

PART 1. 치열하게 회복하라

1. 교만한 지성보다 겸손한 마음을

- 사랑 없는 지식은 이렇습니다

2. 조금 더 포기하고 조금 더 나누십시오

- 헌신이란 이런 것입니다

3. 그래도 끝까지 가야 할 길

- 믿음이란 이런 것입니다

4. 절망을 넘어 순종으로

- 믿음의 역사는 이렇습니다

PART 2. 치열하게 바라보라

5. 스스로 판단하고 구별할 수 있는 성도

- 성숙함이란 이런 것입니다

6. 거치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 은혜란 이런 것입니다

7. 욕망에 먹이를 주지 마십시오

- 덕을 세우는 일은 이런 것입니다

8. 성만찬을 회복하십시오

- 우리의 정체성은 이렇습니다

PART 3. 치열하게 사랑하라

9.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받은 선물

- 성령의 은사란 이런 것입니다

10. 성령의 은사들을 주신 이유

- 정상적인 교회란 이런 것입니다

11.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 기도의 언어란 이런 것입니다

12. 예배할 때는 품위 있고 질서 있게

- 예배란 이런 것입니다

PART 4. 치열하게 순종하라

13. 내 안에 가장 귀한 것 주님을 앎이라

- 부활 신앙의 진실은 이렇습니다

14.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습니다

- 헌금의 올바른 의미는 이렇습니다

15. 깨어 믿음에 굳게 서라

- 인생의 우선순위는 이렇습니다

[본문 맛보기]

<11-12쪽 중에서>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전 8:1)

조금 안다고 생각하는, 다른 사람보다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문제라는 뜻입니다. 성경에 관한 지식과 믿음의 경험이 필요하지만 그 자체가 믿음은 아니며, 오랜 신앙생활로 신앙의 경험과 지식이 능숙해질 수는 있으나 그것이 믿음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운다"는 말의 뜻을 '유익'이라는 견지에서 하나하나 풀어가고 있습니다. 믿음은 본질적으로 겸손함과 자기 포기를 전제로 합니다. 그런데 신앙의 연조가 늘어가면서 내 믿음이 누군가를 판단하거나 내가 하나님 앞에서 포기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라 우리를 교만하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들어오는 순간 '믿음을 가진 우리가 어떻게 그 믿음을 끝까지 지킬 것인가?'라는 숙제가 생깁니다. 혹은 이런 질문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들어왔을 때 믿음으로 섬기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믿음을 자랑하며 누군가를 핍박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또는 '믿음의 지식과 지성이 겸손하게 드러나는가, 아니면 교만하게 드러나는가?'

자신의 믿음과 지성에 대한 '확신'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을 비판하거나 정죄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이 없는 지식은 늘 누군가를 정죄하는 데 사용됩니다. 우리는 덕을 세워야 합니다. 교만과 독선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19-20쪽 중에서>

믿음이 약한 사람, 즉 영적 지식이 부족한 사람은 어떤 양심을 가지게 될까요?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살던 세상의 관습적인 틀로 인해 소위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 죄책감으로 인해 죄인이 됩니다. 성경은 약한 크리스천의 특징을 '양심이 쉽게 더러워지고, 쉽게 상처받으며, 쉽게 실족한다'(고전 8:7;12;13)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올바른 지식과 성숙한 믿음을 갖고 있다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돌보고 그들을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양보는 성숙한 사람, 더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이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공동체 안에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우라는 것입니다.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때 덕을 쌓는다고 말씀합니다.

 <78-79쪽 중에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믿는 자들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바라보며 이 일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일어나는 일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마음대로 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뜻대로 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희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감사할 수 있느냐?"

하나님이 우리 삶을 인도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166-167쪽 중에서>

재능과 은사를 조금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재능은 자신을 위해 사용하거나 즐기는 데 사용할 수 있으나 은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이며 다른 사람을 드러내야 합니다. 재능은 자신이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은사는 때로 하기 싫어도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사람마다 자신이 잘하는 특기가 있습니다. 즐거워하는 것도 있고, 잘 못하고 즐겁지 않아도 가족을 위해 섬기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일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내가 잘하는 것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때로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일일 경우에는 더욱더 그래야 합니다. 재능은 호불호가 분명하지만 은사는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이루시려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과 결단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174-175쪽 중에서>

이 모든 선물의 근원은 같습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의 영이 하나씩 나눠 주시는 것들입니다 누가 언제 무엇을 받게 될지는 그분께서 정하십니다 제일 중요한 부분이 '그의 뜻대로' 즉, 그분이 정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우리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고전 12:11)

은사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야망'이 있어서, 자신이 가진 은사가 사람들 앞에서 미천해보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가진 은사를 증진시키거나 발전시키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의 영역 밖으로" 나가는 것에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성령님의 뜻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성령님 앞에서 늘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이 자신의 욕망을 포장하고 마음대로 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방언의 은사는 다른 은사와 달리 은사 받은 사람이 체험할 수 있고 자신이 그 은사를 나타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우위의 은사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방언과 예언이 하나님의 뜻을 전달받기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수단이 되었다는 점에서 초대교회에 유익이 되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은사들이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쓰이지 않을 때 성령님이 떠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22-223쪽 중에서>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은 이성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이성을 가지고 생각할 수 있는 믿음이 올바로 세워진 믿음입니다. 나의 믿음이 공동체를 위하여 얼마나 올바른가를 생각할 수 있을 때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선한 의지로 일하십니다.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오시면 성령님은 우리의 은사를 선하게 바꾸십니다. 우리의 마음대로 성령님을 부리거나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한 의지와 자유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무질서한 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고전 14:37-38)

정상적인 성령의 역사 가운데 있는 사람이라면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것을 알 것이라는 말입니다. 안다면 순종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치열한순종 #김병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