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인권이사회 남북 충돌 전말과 득실

국제기구
남북 충돌, 탈북자 강제송환 심각성 어필…한국 외교 상처도 커
▲ 탈북자 강제송환 저지 운동을 위해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 중인 국회대표단의 김형오 전 국회의장과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12일(현지시간) 유엔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이들은 이날 오전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장에서 발생한 북한외교관과의 충돌에 유감을 표시하고 북한측에 사과를 요구하는 한편 중국정부에 탈북자의 난민 지위를 인정해줄 것을 요구했다. ⓒ제네바=연합뉴스

지난 12일(현지시간) 제네바 유엔 유럽본부 인권이사회(UNHRC) 회의장에서는 매우 낯선 광경이 펼쳐졌다.

탈북자 강제송환 저지 여론 확산에 나선 우리나라 국회대표단과 주제네바 북한 대표부 외교관들 사이에 신체적 접촉을 동반한 충돌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12일 오전 10시45분께 마르주끼 다루스만 북한 인권특별보고관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탈북자 강제송환은 있어서는 안된다는 내용을 포함한 북한 인권 실태 조사보고서를 발표한 후 서세평 북한대사는 다루스만 보고관의 보고를 전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의 반론을 폈다.

이후 유럽연합(EU) 대표가 발언하고, 일본 대표가 다루스만 보고관의 보고를 지지하는 내용의 발언을 마쳐갈 즈음에 소동이 발생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회의장을 나가려는 서세평 북한대사에게 다가가 대화를 시도했고, 곧이어 새누리당 안형환 의원과 이은재 의원이 가세했다.

입을 굳게 다문 채 회의장을 빠져나가는 서 대사 주변을 순식간에 유엔 경비들과 북한 외교관들이 에워쌌다.

안 의원은 큰 목소리로 "사람들 잡아들이지 마세요", "중국에 (탈북자) 송환 요청하지 마세요" 등을 외쳤다.

안 의원은 곧바로 유엔경비들에게 왼팔이 꺾여 제압당했고, 이 의원이 잠깐 퇴장하는 서 대사를 막아세우려 팔을 잡았다.

이 의원은 북한 외교관으로 추정되는 남성으로부터 발목을 채이고 오른팔에 타박상을 입었다고 한다.

박 의원은 회의장 밖까지 서 대사를 쫓아가 탈북자 인권 탄압에 항의했지만, 서 대사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경비들의 경호를 받으며 떠났다. 이 모든 소동이 벌어진 시간은 1분도 채 되지 않았다.

안 의원은 `신체적 위협(physical assault)'를 가하려 했다는 이유로 약 30여분 가량 인권이사회 회의장 입구 옆에서 유엔경비들에 둘러싸인 채 격리됐고, 이 의원과 함께 유엔구내에서 퇴장당했다.

보통 20호 회의실(Room 20)로 불리는 인권이사회 회의장은 유엔 유럽본부에서 가장 큰 회의 공간 가운데 하나로, 이날도 500여 명에 달하는 각국 대표단과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직원,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모여있었다.

지난 1년 동안 7천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시리아 사태, 리비아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과 이집트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의 붕괴를 가져온 `아랍의 봄', 스리랑카 학살 등이 이 회의장에서 다뤄졌지만,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다자외교 공간인 만큼 민주적 회의 절차를 준수하는 한, 설사 자국민 수천명을 학살한 정권의 대표라 하더라도 모든 회원국에 발언권이 보장되는 것이 원칙이다.

여의도 국회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물리적 충돌을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장에서 목격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만큼 갑작스런 소란에 각국 대표단과 인권단체 활동가들, 취재 기자들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빚어진 남북 충돌로 얻은 소득을 꼽자면 탈북자 강제 송환 문제의 심각성을 유엔 회원국들이 한번쯤 생각해보는 계기를 줬다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 국제사회의 원칙과 상식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한국 외교가 입은 상처가 적지 않다. 일본 대표에 이어 발언한 박상기 주제네바 대한민국 대표부 대사의 발언도 소란에 묻혔다.

한바탕 소동이 있은 뒤 일부 북한 외교관들이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회의장 주변에서 외신 기자들의 질문에 `차분한' 어조로 상황을 설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스위스 출신의 한 기자는 연합뉴스 특파원에게 "대개 목소리를 높여 항의하는 사람들이 진정성이 있고 정직한 법이지만, 외교적으로는 점잖은 표정을 지으며 뒤에서 웃는 자가 이기는 법"이라고 촌평했다.

국회대표단장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12일 오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여성의원을 폭행한 북한 대표단의 사과와 유엔 사무처의 유감 표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유엔 유럽본부 코린느 모말-바니안 언론담당관은 13일 브리핑을 통해 "한국 국회대표단 중 두 명이 공격적인 행동(behaved aggressively)을 했고, 유엔 경비는 북한 대사가 회의장을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모말-바니안 담당관은 "남북한 문제에 개입할 생각은 없다"면서 "이는 명백히 유감스러운 사건(obviously a regrettable incident)이자 용인될 수 없는 행동(unacceptable behavior)"라고 밝혔다.

국회대표단은 14일 제네바의 명소인 유엔 유럽본부 앞 `부러진 의자' 조형물이 있는 광장에서 탈북자 강제북송 금지를 촉구하는 집회에 참석한 뒤 북한 대표부 및 중국 대표부까지 가두행진을 시도할 예정이다.

#유엔인권이사회 #남북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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