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수 설교] 행함 있는 믿음으로 구원(마 7:21; 25:3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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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종교개혁연구소 소장 임태수 박사

루터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말했다. 이 구원론은 50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우리 개신교회를 지배하고 있다. 과연 이 말이 맞는지 성경에서 찾아보기로 하자.

1. 마 7:21

마 7:21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말씀에 두 종류의 믿음이 나타나 있다. 하나는 행함 없는 믿음이요 다른 하나는 행함 있는 믿음이다.

주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를 항하여 ‘주여 주여’ 하고 부르는 사람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다. 루터의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고 구원얻는다”는 구원론에 의하면 예수를 향하여 ‘주여 주여’ 하고 부르는 사람, 즉 예수를 믿는 사람은 모두 구원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야 마땅하다. 그런데 주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을 ‘주여 주여’ 하고 부르며 믿는 사람이라도 모두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를 항하여 ‘주여 주여’ 라고 부르지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이 있고, 반면에 구원을 얻지 못하는 믿음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믿음은 구원의 필수 조건이다. 믿음 없이는 구원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마 7:21에서 믿음이 구원의 필수 조건이지만, 필요중분조건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믿음에 더하여 또 하나의 조건이 필요함을 마 7:21에서 알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어떤 믿음이 구원을 얻고 어떤 믿음이 구원을 얻지 못하는가? 구원을 위한 또 하나의 조건에 대하여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행함 있는 믿음: 믿음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행함 없는 믿음: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행함은 구원의 또 하나의 조건으로 등장한다. 다시 말하면 마 7:21에서 구원의 조건은 ‘믿음과 행함’ 두 가지다. 루터는 구원의 조건을 ‘믿음’ 한 가지 뿐이라고 말한다.

 이에 반하여 예수님은 마 7:21에서 구원의 조건을 “믿음과 행함” 두 가지로 제시하신다. 그렇다면 누가 틀렸는가? 루터의 “믿음으로만 구원얻든다”는 구원론과 달리, 구원의 조건을 ‘믿음과 행함’ 두 가지로 제시하신 예수님이 틀렸는가? 그럴 수 없다. 예수님이 틀릴 리 없다. 틀린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루터다. 구원의 조건은 ‘믿음’ 한 가지만이 아니라, “믿음과 행함” 두 가지라고 마 7:21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옳다. 믿음에는 구원을 얻을 수 있는 ‘행함 있는 믿음’과 구원을 얻을 수 없는 “행함 없는 믿음” 두 가지가 있다는 사실은 다른 성경구절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2. 마 7:24-27

마 7:24-27에서 예수님은 산상설교 마지막에 집짓는 자의 비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이 비유에서도 우리는 두 종류의 믿음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행함 있는 믿음’이요, 다른 하나는 ‘행함 없는 믿음’이다. 이 두 종류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다.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은 “나의 이 말 즉 주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24절)이요 주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이다. 여기에서“나의 이 말 즉 주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주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주님의 산상설교의 일차적인 청중이 ‘제자들’(마 5:1)이라는 사실이다. “나의 이 말을 듣는 사람”이 주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또 다른 증거는, 이 사람이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는”집을 지은 사람, 즉 구원을 얻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믿음 없이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는 사람”은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도 “나의 이 말을 듣는 사람”(26절)이므로,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마찬가지로 주님을 믿는 사람이다.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나,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이나 모두 다 예수를 주로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데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의 집은 무너지지 않았다. 집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말은 구원을 얻었다는 말이다. 이와는 반대로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의 집은 무너졌다. 집이 무너졌다는 말은 구원을 얻지 못했다는 말이다. 두 사람 모두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한 사람은 구원을 얻고, 다른 한 사람은 구원을 얻지 못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종류의 믿음 즉 구원얻는 믿음과 구원얻지 못 하는 믿음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종류의 믿음이 구원을 얻고 어떤 종류의 믿음이 구원을 얻지 못하는가?

행함 있는 믿음: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은 "나의 이 말을 듣는 사람”(24절) 즉 주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임과 동시에 “이 말을 행하는 사람”(24절)이다. 그래서 그가 지은 집은“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않았다.” 구원을 얻었다는 말이다.

행함 없는 믿음: 이와는 반대로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은 "나의 이 말을 듣는 사람”(26절) 즉 주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지만, “이 말을 행하지 않는 사람”(26절)이다. 그래서 그가 지은 집은“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그 무너짐이 심하였다.” 구원을 얻지 못 했다는 말이다.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나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 모두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오직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만 구원을 얻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 두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 차이는 그들의 행함 여부에 있다.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주님이 하신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믿을 뿐만 아니라) 행한 사람인 반면에(24절),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주님이 하신 말씀을 듣지만(믿지만) 행하지 않은 사람이다(26절).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을 가지고 있으되, 행함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구원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결정된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행함 있는 믿음’은 구원을 얻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구원을 얻지 못함을 알 수 있다.

3. 마 25:31-46

마 25:31-46의 최후심판비유에서 예수님은 두 종류의 믿음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37절에서 양과 같은 사람들은 인자(31절) 즉 주님을 향하여 ‘주여’(Kyrie)라고 부른다.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44절에서 염소와 같은 사람들도 주님을 향하여 ‘주여’(Kyrie)라고 부른다.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여기에서 우리는 양과 같은 사람들이나 염소와 같은 사람들 모두 인자 즉 주님을 향하여 주여(Kyrie) 라고 부르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을 향하여 ‘주여’(Kyrie) 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루터의 구원론에 의하면 양과 같은 사람들이나 염소와 같은 사람들은 모두 믿음을 가졌으므로 구원을 얻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최후심판비유는 양과 같은 사람들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34절) 즉 구원을 얻는 복을 받지만, 염소와 같은 사람들은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41절) 즉 구원을 얻지 못하고 저주를 받는다.
행함 있는 믿음: 양과 같은 사람들은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35-36절)고 주님께서 칭찬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행함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구원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향함 없는 믿음: 반면에 염소와 같은 사람들은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42-43절)고 주님께서 꾸중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행함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구원을 얻지 못하고 지옥불에 들어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종류의 믿음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는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인도는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지옥으로 인도하는 믿음이다. 이 비유에서 어떤 종류의 믿음이 구원으로 인도하고 어떤 종류의 믿음이 구원으로 인도하지 못하는가? 마 7:21; 24-27에서와 마찬가지로 ‘행함 있는 믿음’이 구원으로 인도하고, ‘행함 없는 믿음’이 구원으로 인도하못 한다.

4. 마 19:16-19

재물이 많은 청년에 대한 이야기는 마 19:16-30; 막 10:17-31; 눅 18:18-30 등 세 복음서에 다 나온다. 이 청년(막 10:17은 ‘한 사람’, 눅 18:18은 ‘관리’)은 예수님을 향하여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묻는다. 이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이 청년은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하고 다시 묻는다. 이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등 출 20:12-16과 신 5:16-20에 나오는 십계명 가운데서 이웃 인간에 관한 계명들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어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레 19:18을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영생을 얻는 길이 5-9계명을 지키고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신다(막 10:17-31; 눅 18:18-30에는 이웃사랑에 대한 조항이 빠져 있다). 재물이 많은 청년은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다”(20절)고 한 것으로 보아 이미 하나님을 믿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이 청년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므로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이신칭의를 받은 청년에게 예수님은 영생을 얻으려면 “계명들을 지켜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물론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상은 유대인 청년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기독교인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이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기독교인들도 “계명들을 지켜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최소한 십계명을 지키고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부자청년에 관한 이야기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한 의도이다.

예수님께서는 요 14:15에서“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21; 15:10 참고)고 말씀하셨다. 또 요 13:34에서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5:12 참고)고 하셨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인간에 관한 5-10계명을 지키고, 자기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인이 믿는 예수님이 기독교인들에게 명령하신 새 계명이다. 예수님을 믿고 이신칭의를 받은 이후에는“서로 사랑하고”“인간에 관한 5-10계명을 지키고,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마 19:16-19에서 예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가르치시는 말씀이요 교훈이다. 다시 말하면 이신칭의를 받은 이후에는 영생을 얻기 위하여“서로 사랑하고”“인간에 관한 5-10계명을 지키고,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행함이 필요하다는 말씀이다. 이신칭의 이후의 행함은 필요한 행함이요 구원의 필수조건이다.

5. 눅 10:25-28

눅 10:25-28에 율법교사가 등장한다. 율법교사는 이미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므로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향하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질문한다. 이 질문을 받고 예수님은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고 반문하셨다. 그러자 그 율법교사가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눅 10:25-28은 신 6:5와 레 19:18의 인용문으로서, 이 두 말씀은 10계명 전체의 요약임과 동시에 온 율법과 선지자의 핵심(골자)이다(마 22:40). 이 대답을 들으시고 예수께서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믿고 이신칭의를 받은 사람도, 이신칭의를 받은 이후에는 두 큰 계명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눅 10:25-28; 마 22:34-40; 막 12:28-34)을 실천해야 영생을 얻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이신칭의를 받은 이후에는 영생을 얻기 위하여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행함이 필요하다는 말씀이다. 이신칭의 이후의 행함은 필요한 행함이요 구원의 필수조건이다.

성도님들 모두 행함 없는 믿음이 아니라 행함 있는 믿음으로 구원얻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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