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에서 북한을 생각해 보다…"어둠이 있는 곳마다 촛불은 타오른다"

오픈도어 북한사역자, 아우슈비츠 방문 소감
포로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설치한 전기 철조망.   ©오픈도어선교회

[기독일보·선교신문] 1945년 1월 7일, 대부분 포로가 남겨진 아우슈비츠에 "쾅"하는 폭발음이 터졌다. 겨울 하늘이 갑자기 노란색과 오렌지색, 그리고 붉은색으로 뒤덮였다. SS장교가 그들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 화장터를 폭발시킨 것이다. 비르케나우에 있던 포로들은 2.4Km 떨어진 아우슈비츠 형무소로 이동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몇 시간 후에 수많은 무장군인이 나타났다. 붉은 군대가 도착한 것이었다. 비록 소련군인들 또한 잔혹한 일들을 벌였고, 많은 수감자가 불행히도 그들에게 희생되었지만, 적어도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에서 유대인들과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멸절하던 행위는 최소한 멈춰지게 되었다.

7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매년 수만 명의 사람이 기념관을 방문하는데도 비정상적인 정적이 이곳에 흐르고 있다. 몇몇 관광객은 그들이 흑백으로만 알고 있던 건물들 앞에서 기념사진들을 찍고 있다. 그러나 수용소와 건물들, 그리고 그곳에서의 이야기들은 아직 살아있다. 아우슈비츠를 실제로 보는 것은 이상한 경험이다. 과거를 걸으면서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스쳐 지나간다. 아우슈비츠에서 있었던 일들이 오늘날 여전히 북한에서 나타나고 있다. 나치 정권이 끝나고 수용소는 해방되었듯이 북한의 문들과 벽들 또한 어느 날 열릴 것이다.

원래 아우슈비츠 I은 예상 밖의 작은 규모이다. 이곳은 폴란드 정치범을 수용하기 위해 1940년경 지어졌으나 곧 히틀러의 '유대인 말살'을 위한 핵심 장소가 되었다. 많은 러시아 전쟁포로도 이곳에 왔으나 그들은 처형당했다. 높고 두꺼운 콘크리트 벽과 꽃들, 몇몇의 소형 화단들이 그들의 죽음을 기억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전경.   ©오픈도어선교회

"독일 여성 포로들이 우리에게 유니폼을 줬어요." 레나는 '레나의 약속'이라는 그녀의 책에서 그렇게 서술했다. 그녀는 20년 전 이미 작고했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그녀는 우리가 수용소와 정신적 교감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독일 여성들이 주었던 그 옷의 가슴에는 러시아 휘장이 새겨져 있었어요. 우리는 맞지 않는 옷들을 입으려고 애썼고, 바지들을 서로 바꾸었어요. 진녹색 옷의 냄새를 맡을 때, 나는 소독약의 매스꺼움을 느꼈지요. 옷에는 단추조차 없어서 옷을 닫을 수가 없었어요. 그 옷에는 구멍들과 불그스름한 얼룩들과 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옷들을 전혀 세탁도 하지 않았어요.

그 점들을 만지면서 혹시나 긁어서 없앨 수 있을까 궁금했지요. 하지만 그것들은 흙이 아니었어요. 그것은 끈적거렸어요. 난 이미 옷을 입고 있던 주위의 여인들을 봤어요. 소독약으로 축축해졌지만 그들은 단지 몸에 뭔가를 걸칠 수 있다는 점에 좋아했어요. 나처럼 그들도 처음에는 알아채지 못했어요. 옷들이 총알이 아니라 이나 벌레 같은 것들에 의해 상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했어요. 그들은 자국들이 점이나 흙이 아니라 피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어요. 우리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과 같았어요. 우리는 그저 다른 사람들을 따라갔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어요."

나중에는 사형장 옆 건물에서도 잘 수 있었다. 군인들은 창문가리개를 만들었지만, 그녀는 웅덩이로 버려지는 시신들을 볼 수 있었다. 그 광경은 그녀의 인생 동안 잊을 수 없는 괴로움이 되었다.

아우슈비츠 II 비르케나우의 입구.   ©오픈도어선교회

아마도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아우슈비츠 II 비르케나우의 입구일 것이다. 그것은 1941년 원래 수용소의 확장으로 지어졌다. 그리고 나치 홀로코스트의 상징이 되었고 여전히 함정에 빠지는 먹이를 기다리는 사자와 같이 서 있다. 방문객들은 그 문과 철길, 플랫폼을 오고 간다. 70년 전 이곳은 죽음의 플랫폼이었다. 새로 온 대부분의 포로는 숲에 숨겨진 굴뚝이 있는 가스실에 보내지기 위해 왼쪽으로 보내졌다. 다른 이들은 사람이 가득 찬 건물로 보내졌다. 평균 생존기간은 대부분 몇 개월이었다.

'나는 너에게 맹세하는 거야. 오늘 이후로, 만약 네가 끌려간다 해도,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너와 함께 할 거야. 너 혼자 트럭에 타도록 하지 않을 거야.'

레나와 그녀의 여동생 당카는 어느 날 밤에 오게 되었다. 당카는 두려워했다. "그들이 만약 가스를 아끼려 하면 어떡하지? 만약 내가 살아서 화장터로 가면 어떡해?" 레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앉아 봐, 당카야. 이리 와서 앉아." 그녀는 동생의 손을 붙잡았다. "내 손이 보이지?" 나는 동생 손을 내 위에 얹고 동생 눈을 보았다. "부모님이 우리 앞에 앉아 계셔. 내 손은 탈무드를 잡고 부모님 앞에서 그 책 위에 내 손을 얹고 너에게 맹세하는 거야. 오늘 이후로, 만약 네가 끌려간다 해도,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너와 함께 할 거야. 너 혼자 트럭에 타도록 하지 않을 거야."

이 약속은 그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해가 지나며, 마지막 날같이 끔찍했던 하루하루는 너무나 천천히 지나갔다. 그러나 그들은 그 약속을 깰 수 없었다. 그들이 존재하는 한 그 맹세를 깨는 것은 선택이 아니었다. 레나와 당카는 희망을 주는 약속 때문에 끔찍한 고난 가운데서 생존해 나갔다. 살려는 의지는 더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전쟁이 끝난 후, 레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미워하지 않아요. 미움은 히틀러를 승리자로 만들어주는 거에요."

그러나 레나와 같이 나는 아우슈비츠에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는지 궁금하다. 그분은 다른 곳을 보셨는가? 그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만약 그러셨다면, 지금 북한에도 계시지 않으실 것이다. 수용자들의 건물 옆에 기대서면서 수척한 사람들로 가득 찬 좁은 감방들을 상상해 본다. 내가 상상하는 그들은 바로 북한사람들이다. 그들을 보며 한 가지 질문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왜죠, 하나님?"

수용소 내부 모습.   ©오픈도어선교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통해 일하신다는 것을 안다. 한 폴란드인이 있었다. 그는 멕시밀리안 콜베라 불리는 프란시스 신부로, 폴란드 사원에서 수도사가 되기 전 몇 년 동안 선교사로 사역했다. 그는 1941년 게스타포(비밀경찰)에 체포되어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다. 신부로 계속해서 활동하며 콜베는 잔인한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친한 재소자들이 그를 은밀하게 감옥 병원으로 옮겼다. 그가 수용된 후 4개월 동안 세 명의 포로가 탈출했다. 열 명이 그들의 탈출로 처벌을 받았다. 그들은 굶주림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내 아내여! 내 아이들아!"라고 외쳤을 때, 콜베는 스스로 그를 대신해 처벌을 받았다.

그때 당시 보조 관리원이었던 목격자에 의하면 콜베는 재소자들을 기도로 이끌었다. 간수들이 매번 그를 확인할 때면, 그는 감방 중간에 앉아있거나 무릎 꿇고 들어오는 이들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탈수증세 등으로 허덕였던 두 주가 흐른 후에 오직 콜베만 살아남았다. "간수들은 그 장소가 비워지길 원했어요. 그래서 강한 산성을 띤 치명적인 주사를 놓았어요." 콜베는 그의 왼손을 들어 올리며 중얼거리고 조용히 죽음의 주사를 기다렸다.

"그가 유일한 사람이었나요, 주님?" 나는 콜베가 살해당했던 장소에 서 있으면서 질문했다. 걸음은 계속되었다. 우리가 방문한 마지막 장소는 공동 화장실이었다. 그곳은 다시 건설되었다. "이 곳은 너무나 더러워 SS장교들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려 했던 장소였습니다." 안내원이 설명했다. "그러나 이 곳은 외부보다 따뜻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여기서 일하고 청소하길 선호했어요."

나는 사람들이 그들의 짧은 휴식 동안 앉아야 했던 기다란 구멍들을 보았다. 갑자기 안내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곳은 SS대원들이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유대인와 기독교인들이 기도하기 위해 모였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순간적으로 나는 내 앞에 해우의 얼굴을 떠올렸다. 일흔 살 고령의 여인은 북한 노동 수용소에서 삼 년을 생존했다. "매일 매일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10가지 재앙을 동시에 내리는 것과 같았어요. 그만큼 힘들었다는 말이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로해주셨고 비밀모임으로 인도해 주셨어요. 매 주일 화장실에서 모여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동일하시다. 사람들은 아우슈비츠에서 그분을 예배했고 오늘날 북한 수용소에서 그분을 섬기고 있다. 어둠이 있는 곳마다 촛불은 타오른다. 그 빛이 너무나 희미한 불빛이어서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을지라도,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보고 계신다.

아우슈비츠에서 오픈도어 북한사역팀 소속인 '잰 버미어'로부터

오픈도어선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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