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나비 논평] 스승은 제자에게 모범 보여야

오피니언·칼럼
편집부 기자

스승은 제자들에게 진리와 인격의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
어려운 시대에 참된 스승을 분별하며 진정으로 존경하며 따르자.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샬롬나비 상임대표·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창립원장)

올해 52주년을 맞은 '스승의 날'은 스승의 은혜와 덕에 감사하고 존경하며 추모하기 위해 제정된 국가기념일이다. 교권 존중의 사회 풍토를 위해 국가가 정한 기념일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스승의 사랑과 은혜에 감동한 학생들의 자발적 운동이었다. 57년 전 1958년 5월 8일 청소년적십자 단원들이 세계적십자의 날 병환 중에 계시거나 퇴직하신 은사들을 방문·위로하는 일을 시작하였다. 1963년 청소년적십자단 전국대표들의 '사은행사'와 5월 24일 '은사(恩師)의 날' 제정, 이듬해 5월 26일 '스승의 날'로 변경, 1965년 성군(聖君) 세종대왕 탄신일 5월 15일 '스승의 날' 확정의 과정으로 계승되었다. 1973년 정치 폐단과 서정쇄신의 구실로 국민교육헌장 선포일(12월 5일)로 통합·폐지하였으나 1982년 국가기념일로 다시 채택하여 오늘에 이른다.

자발적 학생운동의 전통인 스승의 날을 즈음하여 샬롬나비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스승의 권위와 존경이 해체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이 날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며 나아가 기독교적 의의를 고취하는 계기로 삼고자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힌다.

1. 스승은 진리의 전달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오늘날 진리와 거짓이 혼동되고 선악의 구분이 폐기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위기 상황에서 진리의 전달자로서의 진정한 스승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모든 진리를 상대화시키는 시대의 흐름에 맞서서 교사들은 진리를 수호하고 다음 세대에 진리를 전달해 주어야 한다.

뱀의 유혹으로 벌어진 인류의 타락은 피조물이 창조주처럼 선과 악의 판단자가 되려했던 반역 사건이었으며, 하나님의 절대 진리를 거역하려는 반교육적 대반란의 사건이었다.

예수는 겸허하게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섬김의 모범을 보여주시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참 스승의 본을 보여 주셨다. 이 두 사건은 진리 전달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으로 교훈적 의미를 담고 있다.

2. 스승은 제자 위해 목숨 버린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야 한다.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시면서 전인격으로 제자들을 사랑하시고 섬기신 예수는 모든 교사들이 따를 모범이다. 인간관계가 비인격화되는 오늘날 그리스도처럼 인격적으로 학생들을 존중하고 인격과 실천으로 본을 보여주는 교사들이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는 '랍비'(선생님)로 불렸으며, 구약에서 약속된 메시아로 오신 선한 목자로서 자신의 제자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주신 영원한 사랑의 사표(師表)이시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요 10:11). 선생님으로서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과 무조건적 희생은 인간의 어떤 행동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신성한 사역이다.

3. 그리스도인 교사들은 진리로의 안내자 보혜사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진리가 위협받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 교사들은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 의지하여 진리를 대언하는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

성도들이 받는 모든 진리의 원천은 성부께서 성자의 이름으로 보내신 성령께 속해 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사랑과 헌신으로 참 진리를 가르쳐 주시는 '바다보다 더 깊은 스승'의 교훈은 바로 보혜사(保惠師)로 오신 성령의 사역을 직간접 대언한다.

4. 사랑과 진리의 사제(師弟) 관계를 멍들게 하는 '경제적' 논리를 철폐해야 한다

오늘날 교육은 총체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교육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알고 스스로 사고하고 비판할 줄 알고 도덕적 품성을 지닌 인격을 세우는 목표를 떠나서 경제논리에 따라 이익을 추구하고 경제성장을 위한 능력을 갖춘 인물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학생인권의 이름으로 교권이 짓밟히고 있다. 인격의 성숙을 책임지고 계신 선생님을 영리를 위한 단순 '서비스 공급자'로 대우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사랑과 헌신 그리고 감사와 존경의 사제 관계를 '공급자와 수요자'의 경제논리로 판단해서는 결코 안 된다.

교사는 단지 지식의 전달을 넘어서 인격을 전달하는 아비와 같은 스승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 4:15). 본질상 진리 전달의 사명자이신 선생은 단순한 지식 거래상이어서는 결코 안 된다. '스승의 은혜'의 노랫말처럼 참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스승으로서 진정한 보람과 기쁨은 제자들이 올바른 지식을 습득하여 훌륭한 인격체로 다시 태어나 또 다른 제자들을 훌륭하게 육성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다.

5. 스승의 사랑에 감동하는 자발적 존경심만이 바른 사제 관계 회복의 지름길이다.

스승의 사랑과 헌신은 어떤 행위와 감히 비교할 수 없이 고귀하다. 스승의 헌신에 대한 자발적 존경심이 높아지는 만큼 공동체의 성숙을 위한 겸양지덕(謙讓之德)의 정신도 더욱 발휘됨을 명심해야 한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 13:14).

전국학생협의회가 1965년 스승의 날을 확정하면서 그 기념일을 성군(聖君) 세종대왕의 탄신일과 일치시켰다. 백성을 위한 선정(善政)을 베푼 세종의 마음이 제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선생님들의 마음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성군의 마음을 스승의 사랑과 견주는 발상은 스승에 대한 감사와 존경이 단순한 고마움이 아니라 국가와 공동체 존립의 토대라는 선배들의 눈물어린 호소가 담겨 있다.

6. 은사에 대한 자발적 존경심은 부모의 올바른 가정교육의 확립에서 시작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 가르치는 귀한 사역은 가정이라는 학교에서 부모라는 교사에 의해 이루어진다. 학생으로서 자녀들이 처음 만나는 스승은 '홈교사'인 부모이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다'(신 6:7). 바른 진리를 전해주시는 참 '스승의 날'의 의미를 거듭 상기시키는 것은 부모의 가장 중요한 책무이어야 한다. 스승에 대한 존경과 감사가 퇴색하는 것, 이것은 부모의 가치도 동시에 훼손당하고 있음을 명심해야만 한다.

2015년 5월 14일

샬롬을꿈꾸는나비행동

#스승의날 #샬롬나비

지금 인기 많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