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네 부모를 즐겁게 하라!

목회·신학
편집부 기자
김지철 목사(소망교회)ㅣ잠언 23:24~26

아버지들도 가족의 사랑을 그리워합니다.

▲소망교회 김지철 담임목사.

우리 아버지들은 가정에서 늘 정갈한 앞모습만 보여주려고 애를 썼습니다. '가장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지. 가장으로서 품위를 지켜야지.' 때로 자녀들에게 엄격했던 이유도 그것이었습니다. 또 그렇게 해야 아버지의 권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가장으로서의 책임이며 의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세상에 나가 힘들게 땀을 흘리며 수고한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 아버지들에게는 숨겨진 뒷모습이 있습니다. 때로 쓸쓸하고 외로운 모습입니다. 아내로부터 위로받고 싶어 합니다. 자녀로부터 인정받고 싶습니다. 여기,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헛헛하게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딸을 가진 40대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회사에서 밤늦게까지 야근을 해야 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자 밀려오는 피로와 스트레스가 아주 컸습니다. 갑자기 외롭고 쓸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잠시 일을 멈추고 집으로 전화를 하고 싶었습니다. 중학교에 다니는 딸아이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대화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저 딸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허전한 마음을 달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신호음이 들립니다.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올 딸의 목소리를 생각하니 벌써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보통은 아내가 받지만 오늘은 딸이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후 누군가 전화를 받습니다. 기대했던 대로 딸이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은 딸아이에게 좀 특별한 선물을 줘야겠다. 잠든 아이 머리맡에 두어야지.' 그런데 아버지인 것을 안 딸아이는 귀찮다는 듯이 말합니다.

"아빠야? 엄마 지금 연속극 보고 있어. 잠깐만, 엄마 바꿔줄게." 아빠가 말을 하기도 전에 전화기를 놓고 엄마를 부릅니다. "엄마, 아빠 전화야." 엄마가 말합니다. "네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 엄마 지금 바빠."

"그냥 엄마가 받아." "나도 연속극 봐야 한단 말이야. 얘가 왜 이렇게 귀찮게 굴어." 그리고는 아내가 받습니다. "여보세요. 무슨 일이예요? 오늘 못 들어오는 거예요?"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듣지 않아야 할 대화를 들은 것처럼 무안했습니다. 설레던 마음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무심한 가족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니 무슨 일인데 전화했어요? 왜 아무 말이 없어요?" 할 말은 이것뿐입니다. "아니야 그냥. 늦게 갈게." 그리고는 전화를 끊습니다. 혼자라는 생각이 가슴을 적셔왔습니다.

부모도 자녀의 말에 상처를 받습니다.

가족에게서 전화가 걸려올 때 어떻게 받습니까? 아버지에게서,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올 때 어떻게 받습니까? 남편이나 아내에 게서 전화가 올 때 어떻게 받습니까? 가까운 사람일수록 정성스럽게, 친밀감을 가지고 받아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그렇게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법칙입니다.

한 매체에서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일주일 동안 부모님과 통화하는 시간을 조사했습니다. 애인과는 140분, 친구와는 97분이 일주일의 평균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부모님과는 평균적으로 6분 통화가 전부였습니다. 애인과 통화하는 시간의 1/20도 되지 않는 시간입니다.

부모와 떨어져 생활하는 자녀가 일 년에 부모를 만나는 횟수는 평균 16회라고 합니다. 전화 통화는 일 년에 37회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도 전화를 안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가끔 전화를 해서는 무슨 말을 할까요? 처음에는 부모님의 안부를 물었다가 금세 돈이 떨어졌다거나 집에 반찬이 없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부모와 자녀가 대화를 자주 나누지 않다 보니,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내용과 방식을 모르는 부모가 참으로 많습니다.

오십대 이상 중장년층에게 평소에 자녀들과 대화하면서 가장 크게 상처받는 말이 무엇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첫 번째가 "아빠, 엄마하고는 말이 안 통해"였습니다. 불통의 대상으로 부모를 모는 것입니다. 나의 자녀가 나와 이야기하기 싫어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 부모는 가장 크게 상처를 받습니다. 두 번째는 이것이었습니다. "아니 몇 번을 가르쳐 드렸어요?" 휴대폰 이용 방법을 배웠는데도 자꾸만 잊습니다. 그래서 자녀에게 물어보면 이것도 못하느냐면서 핀잔을 줍니다. 이런 때 부모는 상처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제가 너무 바빠서요. 찾아뵙지 못하겠습니다"였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을 찾아뵙지 않는 것이 상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부모가 자녀에게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가 "부모님, 잘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입니다. 이 말을 듣는 것이 자녀가 돈을 주거나 함께 식사하는 것보다 더 좋다고 대답했습니다. 두 번째는 "이제 제 걱정은 그만두시고요. 부모님을 위해서 사세요"입니다. 부모를 배려하고 높이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입니다. 건강을 챙기는 말에 그동안 쌓였던 모든 앙금들이 눈 녹듯이 풀어진다는 것입니다.

자녀들과의 대화가 어떻습니까? 부모님과의 대화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전화를 하고 끊기 전에 "고마워요, 엄마. 감사해요, 아빠." 이런 말 한 마디가 부모님께 기운을 드리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부모를 기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말씀은 구약의 지혜서로 알려져 있는 잠언서입니다. 여기에는 모든 삶의 내용들이 들어 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잠언서에 나타난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대해서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잠언서 23장 2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잠언 23:25)

'부모를 즐겁게 하고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초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나'에게 있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중심입니다. 나의 관점에서 어떻게 하면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릴까가 아니라 부모님의 관점에서 부모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관점으로 사물을 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간혹 생각합니다. '나는 할 일을 다 했어. 내가 용돈도 드리지, 가끔씩 먹을 것도 사 드리지, 때로는 선물도 하잖아.' 하지만 오늘 말씀은 책임을 다했다고 스스로 생각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부모님은 우리의 말과 행동 속에 진심이 담겨 있는지 보고 싶어 하십니다.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하는지, 작은 선물 하나에도 따뜻한 사랑이 들어있는지를 보고 싶어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부모님께 기쁨이 될까요? 어떻게 하면 부모님께 즐거움을 드릴 수 있을까요?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잠언 23:22)

첫 번째는 아버지에게, 곧 부모에게 청종하는 것입니다.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hearing은 그냥 듣는 것인 반면, listening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이야기가 어쩌면 10번, 50번, 100번 이상 들은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를 들을 때 맞장구를 쳐 보라는 것입니다. "맞아요, 그렇군요! 그리고 어떻게 되었어요?"

판소리에는 소리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노래를 하는 소리꾼 옆에 북을 치는 고수가 있습니다. 그는 북을 치면서 장단에 맞추어 추임새를 붙입니다. "얼씨구", "좋다", "그렇지!", "아먼(암)" 등 공감하고 칭찬하고 격려하는 감탄사를 더합니다. '함께 추다, 맞장구치다'는 의미의 추임새는 결국 '공감'을 의미합니다. 이 공감의 마음으로 부모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이 바로 이 듣는 마음입니다. 부모는 내 자녀가 나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부모님을 즐겁게 하는 두 번째는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무시하고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나이가 들었다고, 이제 힘이 없다고 큰소리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적극적으로는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여기라는 말입니다.

부모님의 기쁨이 어디에 있습니까? 내 자녀가 부모인 나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자랑스러워 할 때 부모는 기쁨과 행복을 느낍니다. 자녀들이 어릴 때는 부모의 손을 잡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 손을 놓칠까봐 걱정했습니다. "우리 엄마, 최고! 우리 아빠, 최고! 아빠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어." 부모를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기던 아들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춘기에 들면서는 변하기 시작합니다. "우리 부모는 구닥다리야. 대화하기도 싫어. 정말 짜증나." 노골적으로 부모에게 반항하고 심지어 무시하기도 하면서 부모의 존재 자체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자녀의 이러한 모습은 부모에게 아픔과 상처가 됩니다.

최고의 효도가 무엇일까요? 부모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우리 부모님의 자녀인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효도 중에 효도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주님이신 예수님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 예수님을 세상에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이 전도이고 선교입니다. 그분을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자랑하는 것이 찬양이고, 기도고, 예배입니다. 예배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시고 예수님이 나의 주님 되신 것이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복 받은 교회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자신의 교회를 예배드리는 성도들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있는 교회가 복 받은 교회입니다. 그리고 성도를 자랑하는 목회자가 있는 교회가 복 받은 교회입니다.

우리나라의 문제가 어디에 있습니까? 정치 지도자들을 뽑아 놓고는 마구 흔들어댑니다.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조롱하고 비난합니다. 지도자의 문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국민, 국민하며 국민을 위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국민을 우습게 여깁니다. 선거철에만 관심을 갖고 그 후에는 잊어버립니다. 백성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섬기는 지도자가 있는 나라가 복 받은 나라입니다.

지도자를 자랑할 줄 아는 백성들이 복 받는 백성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부모 공경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부모님을 공경하고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과 함께 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레위기 19장 3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위기 19:3)

하나님은 '너희는 너희의 부모를 공경하고 동시에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함께 간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부모를 공경할 줄 모르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것은 거짓말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대 종교인들에게 하신 말씀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고르반, 고르반 하지 말라!" '고르반'은 '하나님께 드렸다'는 뜻입니다. 당시에 자신의 재물과 재산을 공동체에 맡기고는 부모님이 가난하여 힘들게 사는데도 '고르반'을 이야기하며 부모님께는 드릴 것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습을 보시면서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고 봉양하지 않으려는 핑계로 고르반을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부모 공경보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우선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곧 부모님을 공경하고 사랑하고 봉양하는 데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어집니다. 믿음의 사람일수록 부모님을 더욱 사랑하고 공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어릴 때 부모님을 사랑하고 자랑하다가 어느 날부터 부모를 평가하기 시작합니다. 한걸음 더 나가서는 부모를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인생이 거의 끝나갈 때쯤이 되어야 소수의 사람들만이 부모를 용서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길을 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부모님이 완벽한 분은 아니지 않습니까. 때로는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고 결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 많은 것을 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감사한 마음을 평생 지니며 부모를 돌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를 낳아보면 알게 됩니다. '내가 어렸을 때 부모가 나를 위해 참 애쓰셨구나. 나를 위해서 기도하셨구나. 내가 울거나 아플 때 부모님의 마음이 참 아프셨겠구나.' 물론 깨닫게 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받은 만큼 드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는 마음은 표해야 합니다.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표현하십시오.

저와 아내가 지금까지 감사한 것 중에 하나는 생일이나 어버이날, 또는 결혼기념일에 자녀들이 편지를 써 주는 것입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제가 아버지의 아들, 제가 어머니의 딸인 것이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그 한마디로 충분합니다. 그 말을 들으면, '내가 고맙다. 너희가 내 아들과 내 딸이어서 내가 고맙다'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모님을 아직 모시고 계십니까? 시간을 내서 식탁을 함께 나누십시오. 그리고 부모님께 말씀하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제가 아버지의 아들이어서, 제가 어머니의 딸이어서 참 자랑스럽습니다"라고 말입니다. 그 말 한마디에 그동안 상했던 마음이 다 녹을 것입니다. 찾아가기 힘들면 전화하시고, 전화가 힘들면 문자라도 남기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부탁하는 것은 주일 예배 드리기 전에 토요일에 한 번쯤은 꼭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많은 축복이 전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그 말 한마디에 부모님은 기쁘고 즐거워지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하나님께 예배드릴 줄 아는 사람은 부모님을 사랑하고 공경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먼저 내가 그런 자녀가 되고, 또 나의 자녀들로부터도 그러한 사랑과 공경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축복을 우리 생애가 다지나가는 때까지 누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복된 가정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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