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다윗의 삶을 큐티하면서

목회·신학
기고
편집부 기자
하늘중앙교회 유영완 목사ㅣ사무엘상 24장 16절~20절
유영완 목사   ©하늘중앙교회

우리들이 예수님과 똑같아질 수 있습니까? 저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출생할 때 DNA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혈통과 육정으로 태어난 자들입니다. 근본이 다릅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똑같아질 수는 없어도, 닮아갈 수는 있습니다. 닮아가는 첫 출발은 따라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하나하나 따라하다 보면 닮아가는 것입니다. 자식을 보면 그 부모를 똑 닮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같이 살면서 하나하나 쳐다보며 따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예수님을 하나하나 따라하다 보면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저는 새벽기도가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큐티 밴드 '생명의 삶'에 날마다 큐티한 것을 올려놓는 일입니다. 얼마나 제게 영적으로 유익한지 모릅니다. 많은 분들이 큐티 밴드에 댓글을 적어서 큐티한 것을 서로 나누고 있고, 150여명의 성도들이 큐티 밴드에 들어와 읽고 있습니다. 저는 저녁마다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읽었나 조회수를 확인하면서 얼마나 보람되고 기쁨이 넘치는지 모릅니다. 큐티 밴드에 들어오는 분들은 참으로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시는 분들입니다. 더 많은 분들이 큐티 밴드에 들어오기를 소망합니다.

3월달 큐티하면서 깨달은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무엘상을 큐티했는데, 주인공이 다윗입니다. 다윗의 삶을 큐티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다윗의 삶 속에 예수님의 흔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똑같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몇 가지가 예수님과 닮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그것을 나누고 싶습니다.

1. 예수님의 생애를 살펴보면, 두 번 확연히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 물세례 뿐만 아니라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또 한 번은 변화산에서 사랑하는 세 제자와 기도하실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마 17:5)라는 동일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친히 사랑하시는 자요 기뻐하는 자였습니다.

다윗 왕도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삼상 17:12~13) 하나님께서 친히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신 것입니다. 기름은 성령을 뜻합니다. 그래서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자 하나님의 영이 임한 것입니다. 또한 성경은 다윗을 뭐라고 설명하고 있습니까?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행 13:22, 개역한글)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꼭 들었다는 뜻입니다.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꼭 들었으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쁘셨겠습니까? 얼마나 사랑스러우셨겠습니까? 저는 큐티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다윗에게도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동일한 음성을 들려주시는 것을 마음으로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든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솔로몬 왕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습니다. 왕상 3:10을 보면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라고 했습니다. 개인의 이익과 욕심을 채우려고 구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국가 공동체의 유익을 구했으니 솔로몬 기도가 하나님 마음에 쏙 든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보너스로 주셨습니다. 다윗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였기 때문에 일생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복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의 삶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행복한지 모릅니다. 부모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자식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인정하면 그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중부연회 고신일 감독님은 장로님을 세울 때 아내와 자녀들을 불러서 상담을 한답니다. "아버지가 장로 되는 것에 이의가 없습니까? 아버지가 장로의 자격이 있다고 동의하십니까? 정말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그런데 어떤 자녀는 이 질문을 하면 막 운답니다. 그러면서 "우리 아버지는 장로가 돼서는 안 됩니다. 교회에서 보여지는 모습과 집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극과 극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절대로 장로의 자격이 없습니다."라면서 흐느낀답니다.

그런데 솔로몬을 보십시오. 아버지 다윗 왕을 얼마나 인정하고 극찬합니까? 왕상 3:6을 보니까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서 아버지 다윗 왕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강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 아들이 하나님 앞에 나에 대해서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 내 아들이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나를 뭐라고 고백할까?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한참동안 가슴이 답답해지고, 무엇인가 가슴속에 아픔으로 저며오는 통증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정말 잘 믿어야 되겠다! 정말 바르게 믿고 바르게 행동해야 되겠다!'는 결단을 했습니다.

다윗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들 솔로몬에게 이런 평가를 받았으니 얼마나 성공한 사람입니까? 원인은 오직 한 가지,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로 살아갑시다! 그래서 자녀들로부터 똑같은 평가를 받읍시다!

2.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새 계명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입니다. 사랑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할 때 다른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사랑의 극치가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이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사랑이 무엇입니까? 바로 원수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실천하셨습니까?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실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이 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달라고 절규하며 기도하셨겠습니까?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이보다 더 큰 원수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다윗의 삶 속에서도 예수님의 사랑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친구였는데, 자기 생명을 사랑하듯 서로 사랑하는 친구였습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 하자, 다윗을 피신시켜 살려준 자가 누구입니까? 요나단입니다.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집에서 피신시키고, 은밀한 곳에 숨겨서 보호하고, 에셀 바위에 숨기고, 십 광야 수풀에 은둔했을 때도 찾아가서 위로하고, 끝까지 사울 왕으로부터 다윗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요나단은 끝까지 다윗을 사랑했습니다.

사랑은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다른 사람을 살립니다. 그래서 훗날에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친아들처럼 선대했습니다. 친아들처럼 한 밥상에서 밥을 먹고, 물질적으로도 극진히 보살펴주었습니다. 다윗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헤세드를 얼마나 깨달으십니까? 헤세드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입니다. 헤세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약속된 영원한 사랑입니다. 다윗 왕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호의와 긍휼과 사랑을 베푼 것처럼 하나님은 동일하게 여러분들에게 헤세드를 베푸실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헤세드를 마음껏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이 엔게디 굴속에 숨어있을 때 사울 왕이 3,0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다윗을 죽이러 왔습니다. 사울 왕이 무장을 해제하고 무방비 상태로 용변을 보러 굴속에 들어왔습니다. 다윗의 추종자들이 사울을 처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주셨다고 하면서, 사울 왕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임을 다윗은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접근해 사울의 옷자락 일부만 베어냈습니다. 절호의 기회가 왔지만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올바른 선택을 한 다윗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그 후에 사울 왕이 그 사실을 알고난 후, 사울의 입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왔습니까? "내 아들 다윗아" 하면서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 감격한 것입니다. 죽을 목숨이었는데, 원수를 갚지 않고 살려주었으니 얼마나 감사했겠습니까? 그러면서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넘기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네가 나를 선대하였도다." /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라."(삼상 24:16~22)고 말했습니다. 원수의 입에서 어떻게 이런 고백이 나올 수 있습니까? 사랑의 힘입니다. 다윗은 큰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큰 사랑을 가진 사람입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사울에게도 선한 마음으로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칼로 칼을 이기는 자가 있고(일시적 승리), 악을 사랑으로 이기는 자(영원한 승리)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 영원한 승리요 참된 승리입니까? 위대한 사랑 앞에 무릎 꿇지 않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큰 사랑은 원수까지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다윗의 삶 속에서 예수님의 그림자 일부분을 발견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예수님의 그림자들이 발견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영완목사 #하늘중앙교회 #주일설교 #오늘의설교

지금 인기 많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