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복음의 전달자이자 복음을 보여주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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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서신에서 배우는 15가지 선교 핵심 키워드(7)

3. 자립 교회의 설립

안승오 영남신대 선교신학 교수

교회는 예수께서 명하신 대위임령을 수행함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기구이다. 교회가 없이는 그리스도의 지상 대위임령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전현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선교의 교회론적 본질은 교회공동체의 전인적(holistic) 활동 안에 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적 위임은 제자들에서 교회 공동체로 확장된다.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 유기적으로 연합된 제자들의 공동체를 말한다. 다시 말해, 선교는 개인의 부분적 활동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전인적 활동이기 때문에, 복음의 증언, 성례전의 집행 및 목회적 돌봄이라는 선교적 과제는 교회 일치 없이는 효과적으로 수행될 수 없다.”

즉 예수의 대위임령은 교회를 통하여 실행으로 옮겨지며, 아울러 대위임령의 실천은 새로운 교회를 탄생하게 한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사람들은 단순히 하나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교회라는 제자 공동체에 합류되어 지속적으로 가르침을 받으며 제자의 삶을 살아가며 선교를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설립은 선교의 한 목표일 수도 있고 선교의 중요한 전략일 수도 있다.

바울은 이런 점을 잘 이해했고 그런 점에서 바울은 건강한 신앙공동체인 교회를 세우는 일에 그의 힘을 기울였다. 어떤 도시에 들어가면 그는 대부분 1) 복음 전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전함, 2) 공동체 형성: 믿는 자들을 모아 예배 공동체를 만듦, 3) 리더십 세우기: 장로와 집사를 세워 조직적인 기틀을 마련함, 4) 편지와 방문: 서신서(로마서, 고린도서 등)를 보내 교리를 가르치고 문제를 해결 등의 방식으로 선교를 수행하였고 이 사역들은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일과 연관되었다. 교회를 세우는 일이 매우 중요한 바울의 선교 전략 중 하나였기에 바울은 교회가 건강히 서가지 못할 때 근심하였고, 스스로 서가는 건강한 자립 교회를 세우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4. 동역자와의 협력 선교

바울은 결코 홀로 선교를 수행한 고독한 선교사가 아니었다. 그의 주변에는 늘 많은 동역자가 함께 동역하였고 그런 점에서 그는 소위 말하는 ‘팀 사역’의 좋은 모델이었다. 이 동역자들은 공동의 ‘사역’(ἔργον)을 위하여 ‘함께’(σύν) 연합한 ‘동역자’ (συνεργός, 수네르고스)로서 복음의 공동 사역을 위하여 함께 일한 사람들이었다. 바울서신서에 약 40여 명의 동역자 이름이 언급되어 있고, 그중에서도 16명은 명시적으로 그의 ‘동역자’(συνεργός)로 일컬어졌다.

즉 바울의 사역이 가능하게 된 배경에는 동역자들의 적극적인 협력이 있었다. 이러한 동역자들을 보쉬는 올로그의 견해를 따라 세 가지 범주로 구분한다. 첫째는 실라와 특히 디모데로 구성된 가장 친밀한 집단이고, 둘째는 브리스길라와 아굴과 디도와 같은 ‘독립적인 동역자들’로 바울의 선교에 동참하여 힘을 보탠 일꾼들이다. 셋째는 에바브라디도, 에바브라, 아리스다고, 가이오 그리고 야손과 같은 지역교회의 대표자들로서 이들은 바울의 사역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일꾼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바울의 동역선교를 말할 때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바나바와의 결별 사건이다. 바나바는 바울을 예루살렘 사도들에게 소개한 사람이고(행 9: 26-28), 안디옥교회로 초청한 사람으로 바울의 영적인 멘토요 스승과 같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행 11: 22-26). 바나바가 아니면 우리가 아는 바울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바울 마가 문제로 크게 다툰 뒤 결별하였다 (행 15:36 -39). 겉모습만 보면 바울은 동역 선교를 잘못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이 결별은 ‘위로와 수용’이라는 바나바의 가치와 ‘사명의 엄중함’이라는 바울의 가치가 충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동역과 연합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진리와 사명을 희생시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바울의 생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한편으로는 불협화음을 일으킨 것처럼 보였지만 결과적으로는 합력하여 선이 되었다. 그리고 바울은 훗날 감옥에서 마가 요한을 다시 찾으며 ‘...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 4;11)고 호칭한 것을 보면 바울의 결별은 개인적인 감정의 결과가 아니라 ‘선교의 유익’이라는 기준에 충실한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동역은 아주 중요한 선교의 자세와 방법이지만 그것은 선교의 목표에 유익할 때 의미가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5. 삶을 통한 모범

바울의 또 하나의 선교 방법은 자신의 삶을 모든 사람에게 모범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복음의 전달자일 뿐 아니라 복음을 실제로 보여주는 자라는 사실을 늘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고별설교를 하는 자리에서도 “...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행 20:18) 라고 말하였다. 그는 자신의 삶 자체가 복음을 보여주는 삶이 되도록 힘썼고 이것이 그의 선교를 힘 있게 만든 요인이었다.

바울의 선교를 사회학적 관점에서 연구한 말허비(Malherbe)는 바울의 선교 방법에 대하여 “공동체를 건설하는 바울의 방법은 자신의 주위에 신자들을 모으고, 자신의 삶으로 자신이 가르친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라고 분석하였다. 바울의 삶을 보여주는 선교 방식에 대하여 보쉬는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 바울은 자신을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바울이 자기를 모범으로 생각하는 확신은 자신과 자신의 성취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는 그의 삶에 있는 하나님의 주도권과 능력을 지속적으로 언급한다. ... 그의 삶이 그의 복음과 분리될 수 없다고 그는 생각하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삶과 사역을 통하여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으로 부르고 있다고 확신한다.”

아울러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삶으로 보여주는 삶을 살았을 뿐 아니라, 그의 성도들에게도 늘 자신과 같이 살라고 권하면서, “나를 본 받으라”(고전 4:16, 11:1), “나와 같이 되라”(갈 4:12)고 권하였다. 이 가르침대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고”, 주님의 말씀과 그들의 믿음의 소문이 그들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는 물론 각처에 두루 퍼지게”되었다(살전 1:7-8). 즉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아름다운 선교와 믿음의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울의 삶을 통한 모범이 있었고 이것을 본받고자 한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의 순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런 점에서 삶을 통한 모범이야말로 바울의 선교에 많은 열매를 맺게 한 핵심적인 선교 교육 방법이었고 할 수 있다. (계속)

※ 기독일보는 안승오 교수(영남신대 선교학)의 책 「다시 바울에게 묻다- 바울서신에서 배우는 15가지 선교 핵심 키워드」의 내용을 연재합니다.

다시 바울에게 묻다

 

안승오 교수

성결대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M.Div)에서 수학한 후,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으로 신학석사(Th.M) 학위와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총회 파송으로 필리핀에서 선교 사역을 했으며, 풀러신학대학원 객원교수, Journal of Asian Mission 편집위원, 한국로잔 연구교수회장, 영남신학대학교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선교와 신학』 및 『복음과 선교』 편집위원, 지구촌선교연구원 원장, 영남신학대학교 선교신학 교수 등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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