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회신학대학교 세계선교연구원이 19일 오후 장로회신학대학교 소양관 606호에서 제10회 방지일 목사 선교신학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방지일 목사(1911~2014)의 중국 산둥 선교와 신학적 사상을 조명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사)방지일목사기념사업회와 영등포교회, 총회 세계선교부가 후원했다. 이날 이선이 호남신학대학교 교수, 오석환 캄보디아 장신대학교 교수, 신상현 박사가 발제자로 나서 방 목사의 선교사역과 신학적 특징을 다뤘다.
이선이 교수 “방지일의 산둥 선교, 아시아선교가 지향할 역사적 사례”
첫 번째 발제에 나선 이선이 호남신학대학교 교수는 '아시아선교 모델로서의 방지일 선교사: 산둥 선교 사역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한국교회의 중국 선교 역사와 방지일 목사의 선교 방식을 분석했다.
이 교수는 “방지일의 선교는 완성된 아시아선교 모델이라기보다, 아시아선교가 지향해야 할 몇 가지 요소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라며 “선교는 '파송'보다 '현존'에 기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교회의 초기 타문화권 선교가 중국 산둥에서 시작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해외선교를 결의한 뒤 이듬해 박태로·사병순·김영훈 목사가 산둥성 라이양에 파송됐으며, 이후 방효원 선교사와 그의 아들 방지일 목사가 현지 사역을 이어갔다고 설명했다.
이어 방지일 목사의 선교사역을 일본의 중국 점령기인 1937~1945년, 국공내전 시기인 1945~1949년, 중국 공산정권 수립 이후인 1949~1957년으로 구분했다. 방 목사는 중일전쟁으로 사역지를 변경한 뒤 칭다오에서 교회 개척과 전도활동을 진행했으며, 일본의 대동아선교회 편입 요구를 거부하고 중국교회의 소속과 자율성을 지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방지일의 선교는 아시아선교 주체의 전환을 보여주었다”며 한국교회가 서구 선교의 수혜자에서 다른 아시아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의 주체로 변화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특히 중국인 신자들과 함께 교회를 세우고 현지 지도자들이 교회 운영에 참여하도록 한 점에서 선교사 중심의 사역과 차이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1945년 일본 패망 이후에는 중국에 머물던 한국인들의 귀국을 지원하고, 국공내전으로 발생한 난민들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구제활동에도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방 목사는 중국인 목회자와 교인들이 함께 운영하는 죽창(粥廠)을 통해 난민들을 돌봤으며, 공산정권 수립 이후 종교 통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도 중국인 교인들과 사역을 이어갔다.
이 교수는 이러한 활동에 대해 “방지일의 선교는 역사적 고난의 현장 속에서 현지인과 함께하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교회가 단기적인 선교 성과보다 현지인과의 관계 형성과 장기적인 신뢰를 중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한국교회는 선교사가 현지인에게 무엇을 주는가에서, 선교사와 현지교회가 서로 무엇을 나누고 배우는가로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교회가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현지교회를 일방적인 지원 대상이 아닌 동역자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방지일 목사의 선교가 오늘날 한국교회에 주는 과제에 대해 “더 깊이 현존하고, 더 겸손히 배우며, 더 평등하게 동행하고, 더 책임 있게 증언하라는 요청”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전쟁과 빈곤, 난민과 이주민, 종교적 박해 등 사회적 문제에 참여하는 선교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오석환 교수 “선교사 자신이 첫 번째 선교지… 성과보다 존재 중요”
두 번째 발제에 나선 오석환 캄보디아 장신대학교 교수는 '방지일의 실존적 선교신학 - 성과주의 선교 모델에 대한 비판과 디지털 시대의 실존적 변혁'을 주제로 한국교회의 선교 평가 방식과 선교사의 정체성을 다뤘다.
오 교수는 “현대 선교의 비극은 선교를 비즈니스 모델로 치부하는 '기업화'에 있다”며 “복음을 숫자로 증명하려는 시도는 결국 선교지를 데이터의 집합으로, 선교사를 실적에 쫓기는 영업사원으로 전락시킨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교회 선교가 교회 개척 수와 교인 수, 재정 규모 등 외형적 성과를 중심으로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선교의 성패를 수치로 판단하는 과정에서 선교사의 신앙과 인격, 현지인과의 관계가 소홀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오 교수는 방지일 목사의 선교신학을 설명하며 “선교사 자신이 첫 번째 선교지”라고 강조했다. 이어 “타인을 변화시키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먼저 복음화 하지 못한 선교는 결국 공허한 울림에 불과하다”며 선교사의 신앙과 삶이 복음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관점을 사역(Doing)에서 존재(Being)와 되어감(Becoming)으로의 전환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방지일은 선교를 '업적의 누적'이 아닌 '존재의 되어감(Becoming)'으로 이해했다”며 선교사의 역할이 신학적 지식을 전달하거나 교회를 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복음을 자신의 삶으로 실천하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철학자 키르케고르의 주체적 전유 개념을 제시하며 신학적 지식을 아는 것과 이를 삶에서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복음의 진리가 개인의 인격과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며, 선교사 역시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오 교수는 방지일 목사의 선교신학을 설명하는 또 다른 개념으로 '피해 복음'을 제시했다. 그는 “그리스도가 인류를 위해 스스로 피해를 입으신 것처럼, 선교사 또한 복음을 위해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는 삶”이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교리적 지식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지일 목사가 중국 선교 현장에서 현지인과 함께 생활하고 전쟁과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중국인 교인들과 관계를 유지한 점에도 주목했다. 그는 이러한 사역이 현지 문화를 외부에서 관찰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지인의 삶에 참여하고 고난을 함께 감당하는 선교였다고 평가했다.
오 교수는 캄보디아 선교 현장의 사례를 제시하며 보고된 교회 개척 실적과 실제 운영 상황 사이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후원 확보를 위한 성과 보고가 선교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며, 선교 평가에 현지인과의 관계와 신앙적 실천, 인격적 변화 등을 반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선교신학 확산 방안도 제시했다. 그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번역과 음성 변환, 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해 방지일 목사의 신학과 성경 관련 저술을 여러 언어로 보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 교수는 “선교의 최종적인 질문은 '당신은 무엇을 하였는가(Doing)'가 아니라,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인가(Being)'로 수렴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가 사역 기술과 전략 중심의 선교사 훈련에서 벗어나 선교사의 신앙적 정체성과 인격 형성을 중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신상현 박사 “선교사뿐 아니라 현지교회의 이야기 함께 기억해야”
세 번째 발제에 나선 신상현 박사는 '『중국 선교를 회고하며: 방지일 목사 산동 선교 사진집』의 이야기 선교학적 소고'를 주제로 방지일 목사의 중국 선교 기록을 분석했다.
신 박사는 “방지일 사진집이 제기하는 중요한 선교적 질문은 선교를 누구의 이야기로 기억하고 전승할 것인가라는 데 있다”며 선교의 역사를 선교사 개인의 활동뿐 아니라 현지교회와 동역자들의 관계 속에서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11년 발간된 『중국 선교를 회고하며: 방지일 목사 산동 선교 사진집』을 중심으로 사진과 설명문, 회고문이 선교의 기억을 어떻게 구성하고 전달하는지 분석했다. 이 사진집은 1937년부터 1957년까지 진행된 중국 선교활동을 담고 있지만, 사역이 끝난 지 수십 년이 지난 뒤 발간됐다는 점에서 당시의 기록과 이후의 회고가 함께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신 박사는 “사진집의 시작에는 파송된 선교사가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중국인 교인과 전도자, 목회자와 교회공동체가 중심으로 등장한다”며 방지일 목사의 선교가 중국인 동역자들과의 협력을 통해 진행됐다고 밝혔다.
그는 사진집에 등장하는 류수파 목사와 양유쉬 장로의 활동을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했다. 두 사람은 방지일 목사와 함께 교회 운영과 전도활동에 참여했으며, 전쟁과 정치적 혼란 속에서 교인들을 돌봤다. 특히 공산정권의 감시 속에서 중국인 교인들이 방 목사에게 음식과 의복을 제공하고 귀국 과정에서도 그를 보호한 기록을 통해 선교사와 현지인 사이의 상호 돌봄을 설명했다.
신 박사는 사진집에 나타난 신학적 주제를 '하나님의 선교', '파종의 신학', '관계 선교', '우정과 환대'로 구분했다. 하나님의 선교는 선교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으며 선교사가 떠난 이후에도 현지교회를 통해 복음 전파가 이어진다는 의미이고, 파종의 신학은 복음을 전해 들은 중국인들이 다시 전도자와 교회 지도자로 성장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과정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계 선교는 선교사와 현지인이 함께 생활하고 책임을 나누는 방식이며, 우정과 환대는 선교사가 현지인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동시에 현지인으로부터 보호와 돌봄을 받는 관계라고 밝혔다. 그는 “방지일의 선교에서 관계는 사역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선교가 이루어지는 삶의 방식이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중국교회의 성경교육 프로그램인 도리반을 통해 한국교회의 사경회 전통이 중국의 언어와 교육 환경에 맞춰 적용된 사례도 제시했다. 도리반에서는 성경교육과 함께 문자교육, 역사, 위생 등 생활 관련 교육이 진행됐으며, 이를 통해 중국인 지도자들이 양성됐다고 설명했다.
신 박사는 사진집에 수록된 선교사 파송 관련 문서와 교회 기록, 사진과 회고문 등이 선교의 역사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방지일 사진집은 한국 교회의 산동 선교를 보존하는 '선교 기억의 저장소'”라며 선교 기록이 현재의 교회가 선교적 정체성과 관계를 되돌아보는 데 활용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끝으로 그는 사진집이 방지일 목사의 회고와 한국교회 자료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중국인 교인과 현지 지도자들의 관점을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중국교회 관련 기록과 현지인들의 증언을 확보해 당시 선교활동을 추가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