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파키스탄 대법원이 신성모독 혐의로 장기간 수감 생활을 해온 기독교인 형제에 대해 형의 사형을 확정하고 동생은 무죄로 석방하는 엇갈린 판결을 내렸다고 10월 12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대법원 차원에서 신성모독 혐의로 사형이 확정된 것은 이례적인 사례로, 파키스탄 기독교 박해와 신성모독법 악용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커지고 있다.
지난 7일 파키스탄 대법원 3인 재판부는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를 모욕한 혐의(파키스탄 형법 제295-C조)로 기소된 카이세르 아유브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의 사형 선고를 확정했다. 반면 야히아 아프리디 대법원장 등이 포함된 해당 재판부는 동생 아문 아유브에 대해서는 범행 가담 증거가 부족하다며 원심을 깨고 무죄 석방을 선고했다.
라호르 출신인 이들 형제는 카이세르 명의로 등록된 웹사이트에 신성모독성 게시물이 게재되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2018년 1심 법원과 2022년 고등법원에서 각각 사형을 선고받았다. 컴퓨터 전공자인 카이세르는 2009년 해당 사이트를 폐쇄했으나 무슬림 지인들이 자신의 이름이 포함된 저작권 정보를 남겨둔 채 무단으로 사이트를 복구했다고 혐의를 부인해 왔다.
디지털 증거 채택으로 사형 확정… 기독교 변호인단 즉각 재심 청구 예고
대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디지털 증거 유무로 형제의 유무죄 판단을 명확히 갈랐다. 재판부는 카이세르의 노트북에서 압수된 도메인 등록 기록과 공식 이메일 계정 사용 내역 등을 근거로 그가 해당 블로그 개설과 운영에 관여했다고 판단했다. 경찰이 압수한 컴퓨터에서 온라인 게시물과 일치하는 파일이 발견된 점도 유죄의 핵심 근거가 되었다.
반면 동생 아문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아문 명의로 개통된 유선 전화와 사무실 임대 기록을 증거로 제시했으나, 대법원은 통신망이나 임대 공간은 가족 간 명의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아 범행의 직접적인 증거로 채택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개인적 가담을 입증할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석방을 명령했다.
미국법의센터(ACLJ)를 비롯한 변호인단은 동생의 석방을 환영하면서도 카이세르의 사형 확정 판결에는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즉각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피해자 지원 단체들은 아문이 무죄를 선고받았음에도 무려 11년이 넘는 세월을 구금 시설에서 보내야 했다며 부당한 인권 유린을 비판했다. 반면 고발인 측 단체들은 이번 판결이 파키스탄 대법원에서 신성모독법 제295-C조가 집행된 중대한 이정표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신성모독법 악용 범죄 지속 및 파키스탄 기독교 박해 실태
CDI는 이번 대법원 판결은 파키스탄 내 종교적 소수자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어 온 신성모독법의 부작용을 다시 한번 부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 인권 단체들은 신성모독법이 개인 간의 원한이나 재산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 변질되었으며, 혐의가 제기되는 것만으로도 무슬림 폭동과 사적 제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해 왔다.
실제로 대법원 판결 직후인 지난 9일 펀자브주 셰이쿠푸라 지역의 가리알 칼란 마을에서는 신성모독법을 빌미로 한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현지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40세 기독교인 캄란 마시가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신성모독적인 영상을 공유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직후 분노한 무슬림 군중이 그의 자택과 상가에 방화 테러를 가했으며, 군중 폭동 확산을 우려한 35가구 이상의 현지 기독교인들이 집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르는 사태가 빚어졌다.
이러한 종교적 폭력이 일상화되면서 기독교인들의 생존권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국제 기독교 지원 단체인 오픈도어선교회는 '2026 세계감시목록'에서 파키스탄을 기독교인에 대한 탄압이 가장 극심한 국가 8위로 지목했다. 오픈도어선교회는 파키스탄 사회 내부에 만연한 구조적인 차별, 군중 폭동, 강제 개종 등을 지적하며, 사법 당국의 미온적인 대처와 가해자에 대한 면책 특권이 파키스탄 기독교 박해와 맹목적인 폭력을 사실상 방조하고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