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바울의 가르침에서 본 현대 선교 목표 평가
1. 복음운동이 아닌 사회운동의 경향
에큐메니칼 선교는 세상에 대하여 매우 긍정적인 견해를 지니고 있고 세상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진다. 전통적인 선교가 세상에 대하여 다소 부정적인 견해를 지니고 세상으로부터 빨리 나와 구원의 방주인 교회로 오는 것이 구원을 얻을 길이라는 사고를 가진 것과는 대조를 보이는 면이다. 전통적인 선교에서 세계와 교회를 분리하고 교회를 우선적으로 보는 것과 달리, 에큐메니칼 선교는 세계와 교회를 함께 보고 세상을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함을 강조해 왔다.
이와 같은 관점은 기독교 선교가 교회 중심의 선교가 아니라 세계 속에서도 책임적인 교회가 되는데 일정 부분 기여한 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런데 이런 관점은 그 장점보다 더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선교 운동을 자칫 하나의 사회운동으로 변질시킬 수 있는 위험성이다. 바울의 선교는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하는 선교 운동이었지 사회 자체를 변혁하는 사회운동이 아니었다. 복음이 한 영혼의 심장에 박히면, 그 구원받은 개인은 삶의 현장에서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 거듭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사회적 책임은 선교의 핵심 목적(Core Purpose)이기보다는 구원받은 자들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대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 또는 윤리적 과제(Ethical Task)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 세상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그 모습 그대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구원의 길로 나아올 때만 소망이 있으며, 이 구원의 길을 따라 세상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자들이 바로 교회 (Ecclesia, 부름 받은 자들의 모임)이며 교회는 복음을 전함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명을 부여받았다. 사회운동은 사회의 다양한 기구들이 교회보다 더 잘 하지만 복음 운동은 오직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운동이다. 이 사실을 망각하고 복음 운동을 사회운동으로 대체하는 것은 교회가 세상과 같아지는 것이며, 이것을 열매의 근원이 되는 뿌리를 잊고 열매만 생각하는 오류가 될 수 있다.
에큐메니칼 선교의 목표는 주로 세계를 변화시키고, 세계를 섬기고, 창조 세계를 보존하는 등의 거대담론의 성향을 지닌다. 그런데 이러한 거대담론적인 목표는 대부분 교회가 할 수 있는 능력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들이다. 교회가 직접 나서서 사회운동을 통하여 세상을 변혁하는 일을 실행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백번 양보하여 에큐메니칼 진영에서 말하는 거대 담론의 선교 목표가 완성되어 모든 사람에게 정의와 평화 그리고 샬롬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임한다 해도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아무런 관심도 없고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지 않고 하나님 없이 자신들의 힘으로 자신들만을 위해서 살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면 그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은 어차피 세상의 문제에 관심을 가질 뿐 하나님께는 관심이 없다. 교회는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 뜻을 따라 살아갈 때 세상에 참된 행복이 임한다는 사실을 전하는 일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2. 지나친 포괄성으로 인한 선명성과 효율성의 약화 경향
현대 선교에서 추구하는 목표의 포괄성은 교회가 세상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껴안고 고민하는 데 일조하고, 지나치게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비치기 쉬운 교회에 대하여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일에 일정 부분 기여한 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너무 넓어져서 모든 것을 다 선교의 목표로 보는 관점은 심각한 문제점도 내포한다. ‘목표’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단일하고 명확할수록 달성 가능성이 높아지는 법이다. 목표를 너무 많이 잡으면 자연히 효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선교란 단순한 이론적인 작업이 아니라 한 종교를 널리 펼치는 활동이며, 이런 점에서 선교 역시 분명하고 간결한 목표를 설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다 목표로 포함한다면 그 활동의 성공 가능성은 매우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선교 역사학자인 스티븐 닐(Stephen Neil)은 “모든 것이 선교라면 아무 것도 선교가 아니다”라고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돋보기로 까만 종이를 태우는 실험이 있는데, 이 실험에서 배울 수 있는 중요한 자연의 원리는 초점을 최대한 작게 맞추어야 종이가 빨리 탄다는 것이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창조 원리이며 선교에도 적용될 수 있는 원리이다.
종교가 지나치게 포괄적 목표를 추구하는 경우 그것이 종교의 약화로 이어진다는 점은 종교 사회학적으로 실증되고 있는데, 종교사회학자인 피터 버거(Peter Berger)에 의하면 정의와 평화 같은 문제에 관심을 두고 거기에 힘을 쏟는 종교는 전통 신앙의 약화와 그로 인한 종교의 쇠퇴가 일어나는 반면, 전통적인 신앙에 충실한 보수적 종파들은 오히려 종교가 성장하면서 사회봉사에도 더욱 열심을 내는 모습을 보인다고 보고하였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이론가 중 하나인 이형기도 이와 비슷한 견해를 피력하면서, “복음과 교회의 정체성에 안주하는 한 교회의 사회 참여를 소홀히 여기게 되고, 교회의 사회참여에 전념하다 보면 복음과 교회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헤메지 않나 하는 문제가 오늘 우리 한국에서까지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고 간파하였다. 이것은 소위 말하는 복음화와 인간화의 반비례성을 언급한 것인데, 선교 목표가 지나치게 광범위한 사회 문제에 매몰되는 것은 포괄성의 측면에서 장점으로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정체성과 효율성을 상실하고 교회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3. 항상성의 상실로 인한 목표 달성 가능성의 약화
에큐메니칼 선교의 목표는 선교의 목표와 윤리의 목표를 혼합하여 선교의 목표로 삼는 경향이 있고, 이런 경향으로 인하여 선교의 목표가 다소 혼란스러운 경향이 있다. 물론 선교도 교회의 사명이고 윤리적 책임도 교회의 사명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선교적 과제와 윤리적 과제를 하나로 만들어 선교의 과제로 인식하는 것은 선교의 수행을 혼란스럽게 할 가능성이 있다. 윤리적 과제는 이 세상의 변화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또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십자가의 도를 널리 펼쳐야 한다는 선교의 과제는 동일하다. 물론 오늘의 시대가 독선적인 종교에 대하여는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최대한 부드럽게 기독교의 진리를 전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그렇다고 진리 자체를 변화시키거나 진리를 전하는 것 자체를 다른 목표와 적당히 혼합하여 항상성을 상실하는 것은 결국 종교 자체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선교 목표의 항상성의 차원에서 본다면 이슬람은 기독교보다 훨씬 더 일관된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 기독교는 에큐메니칼 진영을 중심으로 선교에 있어서 사도적 헌신을 봉사적 헌신으로 바꾸면서 상황에 따라서 선교의 목표가 변동되는 경향을 보이는 반면, 이슬람 진영은 자신들이 세운 목표에 대하여 추호의 의심이나 회의감을 갖지 않고 자신들의 선교 목표인 ‘세계의 이슬람화’를 차근차근 추진해 가고 있다.
이슬람은 ‘세계의 이슬람화’라는 목표에 대하여 흔들림 없는 확신 속에서 끊임없이 선교를 추진해 나가는 반면, 기독교 진영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분명하게 지니고 있었던 세계 복음화의 목표를 뒤로 하고 해결 가능성이 낮은 세계의 문제 해결에 분주한 선교를 추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선교의 목표 차이로 인하여 두 종교 간의 차이가 점점 줄어들어 언젠가 이슬람이 기독교를 능가할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점을 학자들은 경고하고 있다. 이처럼 목표를 지속적으로 변화시키는 현대 선교를 향해 바울은 어떻게 말할지 재고해야 할 것이다. (계속)
※ 기독일보는 안승오 교수(영남신대 선교학)의 책 「다시 바울에게 묻다- 바울서신에서 배우는 15가지 선교 핵심 키워드」의 내용을 연재합니다.
안승오 교수
성결대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M.Div)에서 수학한 후,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으로 신학석사(Th.M) 학위와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총회 파송으로 필리핀에서 선교 사역을 했으며, 풀러신학대학원 객원교수, Journal of Asian Mission 편집위원, 한국로잔 연구교수회장, 영남신학대학교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선교와 신학』 및 『복음과 선교』 편집위원, 지구촌선교연구원 원장, 영남신학대학교 선교신학 교수 등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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