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덥지근한 열대의 아침 햇살을 뚫고, 당초 계획과 달리 먼 산골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동네는 적막할 정도로 한적했다. 하루를 꼬박 지내도 환자 몇 명이나 찾아올까 싶은, 의료 봉사의 필요성조차 의심될 만큼 고요한 곳이었다. 방 한 칸을 빌려 임시 진료실을 꾸미는 분주한 손길 사이로, 내 마음 한구석에는 ‘왜 하필 이곳인가’ 하는 작은 의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의문은 진료실의 칸막이 커튼이 흔들리며 들어온 한 환자를 마주하면서부터 풀리기 시작했다. 초로의 할아버지 한 분이 보행기에 의지해 힘겹게 들어섰다. 뇌손상 후유증으로 편마비가 와서 스스로 걷는 것은 물론, 균형을 잡는 것조차 힘겨워 보이는 상태였다. 놀라운 것은 그가 무려 270km나 떨어진 곳에서 가족의 차를 타고 이곳까지 찾아왔다는 사실이었다. 대화를 나누어 보니 경제적인 형편도 넉넉하여, 평소 의료적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인 분도 아니었다.
그 순간 묘한 무게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육신의 회복은 이토록 절실히 구하면서도, 영혼의 궁핍함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보편적 현실을 마주한 까닭이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십니까?" 진료에 앞서 조심스럽게 건넨 질문에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나 확신보다는 망설임이 묻어나는 대답이었다. 나는 속으로 ‘오늘 이 사람에게 주님의 마음이 전해지게 하시고, 저를 그 도구로 사용하여 주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침 치료를 시작했다. 고요한 진료실 안, 육체의 회복을 바라는 작은 소망이 영혼 깊은 곳으로 스며드는 듯한 설명할 수 없는 평안이 감돌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조용히 기적이 찾아왔다. 치료를 마치고 이제 한번 걸어보시겠느냐는 권유에 그는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이내 그는 보행기 없이 걷고 있었다. 놀란 표정으로 스스로 몇 걸음을 더 옮기던 그는, 마침내 의지하던 보행기를 번쩍 들어 올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했다. “주님이 나를 여기서 만나 주시네요.” 그 짧고 강렬한 고백이 작고 초라한 진료실을 거룩한 감격으로 가득 채웠다.
보행기를 들고 제 발로 걸어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박힌 듯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왜 우리는 당초 계획을 수정해가며 환자도 없을 것 같은 한적한 마을로 와야 했을까. 그리고 왜 그는 그 먼 270km의 길을 달려 우리 앞에 앉게 되었을까. 이제야 그 명징한 해답을 알 것 같다.
우리가 그곳에 가야 했던 이유는 우리의 치밀한 계획이나 얄팍한 판단 때문이 아니었다. 주님께서 그 한 사람을 기다리시며, 그에게 살아계심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보다 먼저 그곳에 가 계셨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그저 환자를 만나러 간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예비하신 한 영혼을 향한 길에 순종하고 있었을 뿐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보다 앞서 걸으시며, 우리는 다만 그분의 시선을 따라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며 섭리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 그래서 그곳에 가야 했구나.
#주재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