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원로목사 제도가 있다. 한 교회에서 20년 이상 시무한 목사가 은퇴하면 원로목사로 추대한다. 물론 절차가 있다. 교회에서 공동의회를 통해 생활비를 작정하고 원로목사 추대를 투표 결정한다. 원로목사가 되는 것은 목사의 노후 보장이요 사역의 명예요 영광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교회는 원로목사 추대 과정의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언제부터 ‘원로목사 예우’ 문제로 시험에 든 교회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교회 은퇴 목사 제도가 한국 사회에서 받는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떠나려는 목회자는 한 푼이라도 더 받아 가려고 노력하고, 교인들, 특히 평신도 리더들은 할 수만 있으면 교회 재정을 아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탐욕과 매정함이 보인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하지만 스스로 원로목사 예우를 받지 않겠다는 목사님의 아름다운 소식이 종종 들린다. 목회자가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예수님 닮은 모습으로 조용히 마무리하는 것이 주변에 감동을 준다. 목회자가 원로 목사 되기를 거부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청빈을 선택하는 것이다. 노후에 누릴 수 있는 여러 가지 혜택을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잔잔한 감동을 주는 목회자의 아름다운 은퇴 소식을 정리해 본다.
아름다운 목회 퇴임의 대표적인 사례가 서대전교회(기독교대한성결교회) 허상봉 목사다. 허 목사는 65세에 조기 은퇴했다. 그는 5년 더 섬기고 20년 목회한 원로목사로 은퇴할 수 있었지만, 모든 것을 사양하고 조용히 은퇴했다. 그는 별도의 퇴임 축하 행사를 하지 않고 주일예배 설교를 끝으로 이 교회에서의 15년 목회를 마무리했다. 퇴임식도 따로 없었다. 마지막 예배에서 허 목사가 설교한 뒤 몇 마디 소감을 덧붙인 게 전부였다.
허상봉 복사는 자신 때문에 교회 분위기가 고루해질까 염려돼 조기 은퇴를 결단했다. 말만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40~50대 때 가졌던 패기와 박진감이 줄어드는 게 느껴지면서 성도들의 신앙도 활력이 떨어질지 봐 걱정했다. 주변 사람들은 60대면 팔팔한 나이라고 했으나 허 목사는 스스로 예전에 비해 타성에 젖기 쉽고 교회가 노후화된다고 생각했다. 교회는 사회에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안주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
허 목사는 50세에 동대전성결교회에 청빙 돼 담임 목회를 시작했다. 당시 출석 성도 1,500여명 교회로 대전에서 손꼽히는 대형교회였다. 그는 목회 당시 성탄절마다 지역에 사랑의 쌀을 전했다. 남아공, 레바논, 카자흐스탄, 방글라데시, 미얀마 등에 병원과 대학을 짓는 해외선교도 열심히 했다.
수년 내 빚 없이 교회 건축을 할 수 있도록 예산도 꼼꼼히 챙겼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은퇴 계획은 2주 전에 당회에 알렸다. 장로들은 ‘한 주간 기도해 보고 결정하라’고 만류했다. 하지만 강행했고, 미리 마련해 둔 천안의 임대아파트로 이사했다. 후임 목사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대전에서 멀리 떨어진 천안에 정착했다. 지도자의 숙고가 담긴 선택으로 보인다.
깜짝 놀라는 당회에 허상봉 목사는 ‘3무(無) 은퇴식’을 제안했다. 은퇴를 위한 특별 순서와 화환, 현수막이 없는 은퇴식이었다. 목회 15년을 압축한 동영상 제작도 허락하지 않았다. 당회는 전별금 5억원을 전달하겠다고 했지만, 이것마저도 거절했다. 담임목사가 은퇴한다고 교회에 큰 부담을 줄 수 없으며 자녀가 장성해 밥벌이하므로 임대아파트와 생활비만으로 충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다만 ‘추대식을 해야 원로목사로 공인된다’라는 교단 헌법에 따르기 위해 지난 30일 ‘3무 은퇴식’을 약식으로 다시 열었다.
평소 하고 싶었던 검도를 배우고 있다는 그는 35년간 쌓인 목회 노하우를 전국 농어촌교회 목회자에게 전수할 계획이다. 목회 코칭 및 강연을 위해 ‘멘토리움’이란 이름으로 사업자등록도 했다. 이 또한 원로 목사의 사역이 본교회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사전에 조용히 준비해 두었다.
허 목사는 자신의 ‘조기 은퇴’가 목회자 은퇴 문화에 있어 절대적 원칙이 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허 목사는 “조기 은퇴를 하고 싶어도 경제적으로 준비가 안 된 경우가 있다며 “주님께 기도하는 동시에 냉철한 판단을 내려야지 몇몇 사람을 잣대로 결정해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35년간 다양한 규모의 교회를 맡았지만, 목회에서 중요한 덕목은 ‘화목’”이라며 “은퇴를 앞둔 목회자가 교회를 배려하고 성도가 애정을 담아 은퇴 목회자의 새 출발을 응원하는 문화가 생기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부산북교회(예장 고신) 조서구 목사의 은퇴도 감동을 준다. 은퇴를 결심한 년초에 조서구 목사는 제직회에서 원로목사 예우를 받지 않겠다며 금년 10월 경 조기은퇴를 선언했단다. 평소 존경받아 왔던 조 목사의 은퇴 선언에 교회는 크게 당황했다. 일부 성도들은 조 목사에게 조기 은퇴선언을 철회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조 목사의 소신에는 변함이 없었다.
조서구 목사가 부산북교회에 부임한 날짜는 1996년 10월 20일이다. 교단 헌법대로라면 2016년 10월20일이 원로 목사 자격을 갖추는 20년째 되는 날이다. 하지만 조서구 목사는 원로목사의 예우를 받지 않기 위해 하루 전날인 2016년 10월 19일 조기 은퇴식을 가졌다. 2016년은 조서구 목사 만 64세가 되던 해이다. 조서구 목사는 6년을 조기 은퇴했다. 원로목사가 되어 교회에 부담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2016년경 조서구 목사의 조기 은퇴 예배가 결정되자 이목이 쏠렸다. 기독 언론은 조서구 목사의 진의를 파악하려 취재를 요청했고, 교계는 그의 결단을 응원했다. 조서구 한사코 언론의 조명을 피하려 했다. 어느 언론사 기자가 조서구 목사와 통화하며 취재 계획을 밝히자, 조 목사는 “보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견해를 밝혔단다. 그리고 조서구 목사는 주변에 “내가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소신을 밝혔다고 전해진다.
소망스럽고 아름다운 사연들이다. 허상봉 목사나 조서구 목사는 자신들의 소신이 다른 목회자들에게 부담이나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걱정했단다. 반면 그들이 목회했던 교회 성도들은 헌신적으로 목회했던 목회자의 소박하고 이른 은퇴를 아쉬워했다. 교회와 후임자를 배려하는 목회자의 헌신이 아름답다. 아울러 목회자를 존경하고 섬기려는 성도들의 사랑과 섬김의 마음이 아름답다.
#강태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