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먼저 보내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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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식 선교사(대한예수교장로회 (개혁총연) 캐나다 노회 파송, 세계 순회 의료복음 선교사)
주재식 선교사

열대 건기의 뜨거운 햇볕이 마나과의 대지를 달구던 어느 날이었다. 니카라과 수도의 한 교회 목사실을 작은 진료소로 탈바꿈하며 개원 준비에 한창이었다. 무더위를 피하려 굳게 닫아둔 문밖으로, 지팡이를 짚은 채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는 한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일흔을 훌쩍 넘긴 마른 체구의 노인. 20년 전 큰 다리 수술을 받은 이후, 그는 평생을 지팡이 없이는 걷지 못하는 불편한 삶을 견뎌왔다. 그를 바라보는 순간, 의사로서의 본능보다 먼저 기도가 앞섰다. ‘주님, 오늘 제가 아니라 주님께서 일하여 주십시오.’

진료실 침대에 누운 노인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나는 먼저 그에게 물었다. “저는 의사이기 전에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이곳에 왔습니다. 먼저 기도하고 시작해도 될까요?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십니까?” 그는 낮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예”라고 답했다. 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그의 굳게 닫혔던 표정은 눈물과 함께 서서히 풀려나갔다.

진료를 마친 후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시 걷기를 권했다. 노인은 떨리는 발걸음을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디뎠다.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던 그는 끝내 오열했다. 그의 입에서 가장 먼저 터져 나온 고백은 자신의 회복에 대한 기쁨이 아닌, 하나님께 드리는 진실한 감사였다. 며칠 뒤 주일 예배에서 그는 지팡이 없이 단상에 올라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간증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주님은 단지 한 노인의 다리를 고치신 것이 아니었다. 그 영혼에게 베푸신 기적을 통해 온 회중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목도하게 하신 것이다.

그를 먼저 나에게 보내신 이유는 단지 치료를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그를 통해 공동체의 믿음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를 맞이하도록 나를 먼저 그 자리에 보내신 것 또한 하나님의 치밀하고도 완벽한 섭리였다.

의사로서 나는 가끔 내 손의 기술을 의지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러나 사람의 손은 그저 잠시 쓰임 받는 도구일 뿐이다. 영혼을 살리시고, 무너진 믿음을 다시 세우시는 분은 오직 주님뿐이다. 오늘도 나는 내 손이 아닌, 그분의 섭리를 의지하며 부르신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우리의 삶에 우연이란 없다. 지금 내 앞에 보내신 사람,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바로 주님의 뜻이 완성되는 선교지임을 다시금 기억한다.

#주재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