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복음주의연맹(WEA)이 국회에 계류 중인 민법 개정안에 대해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종교단체에 대한 국가의 행정 권한을 과도하게 확대함으로써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한 ‘종교의 자유’와 ‘국제 인권 규범’에 정면 충돌할 수 있음을 지적한 건데 기독교 국제기구까지 나설 정도로 이 사안을 심각하고 보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WEA는 지난 6월 초에 발표한 2쪽 분량의 성명서에서 지난 1월 국회에서 발의된 해당 법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우선 행정 당국에 종교단체를 조사, 활동 정지, 해산하고 그 자산을 국고로 귀속시킬 수 있는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한 부분을 예로 들면서 법안에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정치적 관여' 및 '정교분리 원칙 위반' 등에 대한 기준에 의문을 제기했다. 기준의 광범위성과 모호성이 대한민국 헌법뿐만 아니라 국제 인권기구가 규정한 의무에 심각하게 위배됨을 지적한 거다.
WEA는 이 개정안이 한국의 헌법적 질서와 충돌하는 지점을 매우 심각하게 봤다. 그 근거로 헌법 제20조에 모든 국민에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며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고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한 규정과, 제16조에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하며, 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을 할 때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도록 명시한 점을 들었다. 해당 법안에 영장 없이 종교시설을 강제 행정조사를 허용한 건 헌법적 보호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WEA가 성명에서 가장 심각하게 본 게 법안이 지닌 정당성 논리다. 법안 발의자들이 국가가 종교단체를 감사하고 정지, 또는 해산할 수 있는 권한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정교분리’를 들었는데 이런 논리와 접근방식이야말로 ‘정교분리 원칙’과 그 의미를 완전히 전도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WEA는 “한국을 포함한 모든 민주적 헌정 전통에서 ‘정교분리’는 국가로부터 종교를 보호하기 위한 원칙이지, 국가가 종교 공동체를 감독하고 징계하거나 소멸시킬 수 있도록 허용하는 원칙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정교분리’ 실현을 주장하면서 종교생활에 무제한적 행정 통제권을 부여하는 입법은 그 원칙을 사실상 폐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WEA는 한국이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 당사국이라는 점도 상기시켰다. ICCPR 제18조의 종교 또는 신념의 자유를 보장하며, 예배와 공동체 생활 속에서 신앙을 표현할 권리가 포함돼 있음을 지적했다. ICCPR 제22조와 관련해서도 종교단체는 법적으로 온전한 결사체에 해당하며,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단체 해산에 대해 강력한 정당성, 독립적인 사법 절차, 엄격한 비례성을 요구하고 있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WEA는 다만 정부가 법인 구조가 범죄적·재정적·반사회적 목적으로 악용되는 걸 방지하려는 점에 대해선 수긍했다. 하지만 “위법행위에 대한 책임 추궁은 기존 법체계 안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면서 모호한 정치적 근거를 가지고 사법적 판단 없이 행정적 해산 권한을 행사해선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와 관련해 갓프리 요가라자 종교자유 대사(WEA 국제위원회 의장)는 ”종교 또는 신념의 자유는 국가가 허락하는 특권이 아니“라며 “국제 규약의 구속을 받는 국가들이 신앙 공동체에 대한 규제를 행정 편의의 문제로 다루기 시작할 때,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다원주의 자체를 약화시키게 된다”고 우려했다. 또 “어떤 민주국가든, 그 사회의 지배적인 종교 전통이 무엇이든 관계없이 종교 또는 신념의 자유를 이름뿐 아니라 법과 제도의 실질 속에서 지켜야 할 엄숙한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WEA가 문제를 제기한 법안은 지난 1월 무소속 최혁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2215932)이다. WEA는 이 법안이 행정당국에 종교단체 조사, 활동 정지, 해산, 종교단체의 재산 국고 귀속 등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한 점을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했다. 특히 ‘정치 관여’와 ‘정교분리 위반’ 같은 표현이 정의되지 않은 채 사용될 경우, 목회자의 공적 발언이나 교회의 시민 참여, 양심에 따른 의견 표명 등 통상적인 종교활동까지 법 위반 행위에 포함될 수 있음을 지적하며 한국 국회에 헌법적 쟁점과 국제 인권 기준을 “신중하고 철저하게 검토해 줄 것”을 재차 요청했다.
전 세계 160여 개국, 약 6억 명의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을 대변하는 WEA가 한국 국회에서 발의된 특정 법안에 대해 성명을 발표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우려를 표한 건 매우 드문 일이다. 시각에 따라 국제기구가 한국 내정에 관여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는 예민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법안이 지닌 문제의 핵심과 쟁점 사항에 대해 장문의 성명서 형식으로 문제를 짚은 이유는 만에 하나 이 법안이 제정됐을 때, 한국교회와 선교활동 전반에 미칠 심대한 악영향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해당 법안에 대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교회연합은 국회 발의 직후 잇따라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교회총연합도 정책간담회를 통해 분명한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 진보 성향의 NCCK를 제외하고 모든 연합기관이 이처럼 반대 목소리를 냈다는 건 이 법안에 한국교회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독소’가 들어있다는 뜻이다. 국가가 종교단체의 활동을 간섭하고 통제하도록 무제한적인 권한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헌법이 명시한 ‘종교의 자유’의 권한과 범위를 뛰어넘는다고 본 거다.
이 법안은 국회에서 발의된 후 숱한 반대 여론에 부딪히며 아직 소관 위원회 관문도 넘지 못한 상태다. 그런데도 세계적인 복음주의 기구가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국 정부와 국회를 넘어 유엔 등 관련 국제기구들에까지 주의를 환기하려는 거다. 통일교와 신천지 등 이단들의 정치 유착을 막으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그렇다고 종교활동 전반을 국가가 통제하겠다는 발상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 것인지를 드러내 밝히려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