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운데 일부 교계 인사들의 ‘이중 잣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앞서 여러 사회적 현안에 앞다퉈 입장을 밝혔던 이들이 이번 사태에는 유독 조용하다는 것이다. 공의와 정의를 앞세우며 불의에 맞서겠다고 했던 이들이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불의’로 보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이번 건은 자기 진영에 불리한 이슈라 입을 닫는 것인지 모르지만 어떤 경우라도 납득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 박승렬 목사, 이하 NCCK)가 꼽힌다. NCCK는 교계의 그 어떤 기관보다 ‘사회 참여’에 가장 적극성을 보였던 곳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자들의 편’에 서서 ‘정의 실현’을 외쳤던 그들은 무수한 사회적 현안에 ‘성명’을 내왔지만 이번 사태엔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그들이 그토록 수호하고자 하는 ‘민주주의’에서 그 ‘꽃’이라 불리는 선거가 훼손됐는데도 말이다.
기독교대한감리회(감독회장 김정석, 이하 기감)의 ‘입꾹닫’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기감은 지난 12·3 비상계엄 사태에 교계에서는 가장 먼저 입장을 내며 이를 비판했던 곳이다. 당시는 계엄 선포 직후라 명확한 사실 관계가 아직 드러나기 전이어서 교단이 너무 성급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이렇게 민주주의와 정의에 예민했던 교단이,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핵심 ‘사실’이 이미 밝혀진 이번 사태엔 왜 이토록 둔감한 것인지 교단 내부 인사들조차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감리회 내 단체들은 최근 시국선언문에서 “120만 감리회 공동체를 대표하는 김정석 감독회장께도 정중히 요청드린다”며 “지난 2024년 12.3 계엄 선포 당시 감리교회를 대표하는 수장으로서 계엄을 비난하는 입장을 발빠르게 대변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 선거 의혹으로 인한 전 국민적 공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음을 보면서 공인으로서 지극히 편향적인 그의 행보에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일부 신학교 교수들의 행보도 비판받고 있다. 감리교신학대학교 학생들은 학내에 대자보를 게시, 계엄 선포의 잘못을 지적했던 감신대 교수들에게 “그날 외쳤던 정의는 오늘도 유효한가? 그날 교수들이 외쳤던 민주주의는 오늘도 유효한가?”라고 물었다. “국민의 참정권과 민주주의의 신뢰를 둘러싼 중대한 논란”에 침묵하고 있는 교수들에게 ‘동일한 잣대’를 요구한 것이다.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들도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이 학교의 김철홍 교수는 얼마 전 학생들과 함께한 시국선언 자리에서 “장신대 교수님들 시도 때도 없이 성명서, 시국선언 많이 했다. 그런데 왜 지금 안 하고 있나?”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장신대 교수님들이 민주주의를 수호해온 것이 맞다면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시국선을 하시는 게 맞다. 만약 시국선언을 이번에 안 하면 이분들이 지금까지 수호하고자 한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고 민주당이라는 것을 스스로 폭로하는 거 아니겠나”라고 했다.
물론 이번 사태가 과거에 그들이 성명이나 입장을 냈던 사안들과는 비교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민주주의나 정의의 훼손을 말할 정도로 심각한 사건이 아니라 봤을 가능성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왜 그런지 그 이유라고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정도로 국가적 이슈가 된 사태에 침묵하는 그들의 행보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교계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을 향하는 ‘선택적 침묵’이라는 비판은 그동안 그들이 외쳤던 정의의 순수성을 스스로 증명하라는 외침이다. 교단과 대학이 세상에 선포해 온 메시지가 한낱 ‘정치적 수사’가 아니었음을 보이라는 것이다. 그러자면 이제라도 침묵을 깨고 동일하게 하나님의 법과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