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각인가, 하나님의 말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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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진화론과 동성애 논쟁 앞에 선 교회의 선택

양기성 박사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기독교 신앙은 끊임없이 도전을 받아 왔다. 초대교회 시대의 영지주의와 아리우스주의 논쟁에서부터 중세 후기의 세속주의, 르네상스 인문주의, 계몽주의, 진화론, 그리고 현대의 성혁명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생각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었다. 시대마다 도전의 형태는 달랐지만 본질은 같았다. 인간의 이성과 경험을 최종 권위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계시와 말씀을 최종 권위로 삼을 것인가의 문제였다.

르네상스 이후 발전한 인문주의는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재발견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인간의 학문과 문화, 예술과 과학의 발전은 하나님의 일반은총 안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의 이성이 하나님의 계시 위에 서기 시작할 때 발생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는 자리에 앉게 되면, 신앙은 점차 인간 중심으로 변질될 위험을 안게 된다.

그 결과 하나님의 창조,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십자가의 대속, 육체의 부활과 같은 초월적 진리에 대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질문이 믿음을 돕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믿음을 해체하기 위한 것이 될 때 문제가 된다. 믿음보다 증명을 우선시하고, 계시보다 이성을 앞세우는 풍조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한 대표적인 논쟁 가운데 하나가 유신진화론이다. 유신진화론은 하나님께서 진화의 과정을 사용하여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주장한다. 반면 창조론자들은 창세기의 기록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직접적인 창조를 강조한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이 문제를 두고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그러나 어떤 입장을 취하든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창조의 궁극적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점이다. 인간의 과학과 이성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연구할 수는 있지만, 창조의 신비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다. 과학은 관찰과 실험을 통해 자연의 원리를 탐구하지만, 하나님은 실험실 안에 가두어 둘 수 있는 존재가 아니시다. 성경은 창조를 과학 교과서처럼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믿음의 영역으로 선포한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브리서 11:3). 그러므로 창조는 인간의 실험실에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진리이다. 과학은 "어떻게"를 연구하지만, 신앙은 "왜"를 묻는다. 과학은 과정에 관심을 갖지만, 신앙은 목적과 의미를 밝힌다. 따라서 과학과 신앙은 서로 대립하기보다 각자의 영역에서 진리를 탐구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동시에 현대 교회는 성윤리 문제에서도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특별히 동성애 문제는 단순한 사회적 논쟁을 넘어 성경관과 인간관, 그리고 창조질서에 관한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오늘날 많은 국가와 사회는 다양성과 권리를 강조하며 동성애를 하나의 개인적 선택 또는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반면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으며, 가정을 통해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하셨다고 가르쳐 왔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27)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세기 1:28)

따라서 역사적인 기독교는 결혼을 남성과 여성의 언약적 결합으로 이해해 왔다. 이러한 입장은 단순히 문화적 전통이 아니라 성경적 창조질서에 기초한 신앙고백이었다.

오늘날 사회는 자유를 강조한다. 그러나 성경은 자유와 함께 책임을 강조한다. 인간은 원하는 대로 살아갈 자유가 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뜻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이다. 성경이 말하는 자유는 욕망의 해방이 아니라 죄로부터의 해방이며, 자기중심성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순종 속에서 누리는 자유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교회 안에서도 시대정신이 성경의 권위보다 우선시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시대의 기준에 맞추어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신앙은 시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따라가는 것이다. 진리는 시대의 유행처럼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져 있다. 독일의 신학자 Karl Barth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를 강조하였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인간은 피조물이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인간은 유한하다. 그러므로 인간의 이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심판하는 자리에 설 수는 없다. 오히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서야 한다.

또한 존 웨슬리(John Wesley)는 성경을 신앙과 생활의 최고 권위로 삼았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사상과 철학은 결국 시대와 함께 사라질 것이라고 보았다. 실제로 역사를 돌아보면 수많은 철학과 이념이 등장했다가 사라졌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여전히 살아 역사하고 있다.

오늘날 교회가 붙들어야 할 것은 특정 학자나 유행하는 사상이 아니다. 어떤 철학도, 어떤 과학 이론도 완전하지 않다. 인간의 지식은 제한적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 시대는 변하지만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시대의 유행보다 성경을, 인간의 주장보다 하나님의 계시를, 자신의 생각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우선해야 한다. 신앙의 본질은 복잡하지 않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믿고, 하나님이 명하시면 순종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의지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도들이 걸어간 길이요, 종교개혁자들이 지킨 길이며, 오늘의 교회가 끝까지 걸어가야 할 길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한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언 3:5) 인간의 생각은 시대마다 변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오늘도 교회는 그 갈림길에 서 있다. 우리는 인간의 지혜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것인가. 그 선택이 교회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지만, 인간의 사상은 시대마다 변한다."(John Wesley)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시편 119:89)

양기성 교수(Ph.D., Hon. Th.D.)
서울신학대학교 교회행정학 특임교수
웨슬리언교회지도자협의회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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