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상처 입은 치유자, 배신의 시대를 거스르는 천국 시민의 복음적 논리
인간의 실존적 삶 속에서 가장 파괴적인 고통은 언제나 낯선 타인이나 대적에게서 오지 않는다. 가장 신뢰했던 동역자, 모든 것을 내어주었던 형제, 혹은 목숨처럼 아꼈던 제자에게서 받는 배신이야말로 인간의 영혼을 가장 처참하게 무너뜨리는 치유하기 힘든 독소다. 오늘날 현대 사회와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배신과 거역의 상처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닫고, 분노와 단절의 벽을 높이 쌓아 올린다. 자연인(自然人)의 본성과 세상의 정의관은 배신을 마주했을 때 오직 한 가지 선택지만을 제시한다. 그것은 '공의로운 분노'이며 '철저한 절교', 혹은 '합당한 복수'다. 배신자를 징벌하는 것은 정의의 실현처럼 보이며, 그를 향해 등을 돌리는 것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정당방위로 여겨진다.
그러나 성경의 구속사(救贖史) 속에서 조명되는 하나님의 심정은 인간의 이러한 상식적 논리를 정면으로 거스른다. 하나님은 우상을 숭배하며 끊임없이 배반하는 이스라엘을 보며 창자가 들끓는 고통을 겪으시면서도 끝내 사랑의 손을 거두지 못하셨고(호 1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은 30에 팔아넘길 가룟 유다를 향해 진노의 심판 대신 "친구여"라 부르시며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주셨다(마 26:50). 또한,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저주하며 배신했던 수제자 베드로를 찾아가 숯불을 피워 조반을 차려주시며 그의 상처받은 영혼을 어루만지셨다(요 21:15).
여기서 성도는 거대한 영적 절벽 앞에 마주 서게 된다.
"주님, 이것은 전능하시고 완전하신 신(神)만의 영역입니다. 흙으로 지어져 감정과 상처에 휘둘리는 연약한 인간인 우리는 도저히 나를 배신하고 거역한 자들을 향해 이 애끓는 사랑을 품을 수 없습니다."
과연 그러한가? 기독교 복음은 이 사랑을 인간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저 하늘의 추상적인 이상형으로 남겨두지 않았다. 성경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입고, 예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성도들을 향해, 이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이 하나님의 단호한 '요구'요, 성경 전체의 '교훈'이며, 타협할 수 없는 '명령'이라고 선언한다. 왜 인간은 할 수 없다고 탄식하는 그 절망의 자리에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명령을 두셨을까? 본 고를 통해 신구약 성경 전반에 흐르는 배신자를 향한 하나님의 애끓는 심정 24가지를 심층 강해하고, 성도가 이 불가능해 보이는 신적 성품에 참여해야 하는 복음적 이치와 영적 원리를 명백히 밝히고자 한다.
2. 제1부: 구약 성경에 나타난 배신자를 향한 하나님의 가슴앓이 (12가지 강해)
구약의 역사는 인간의 끊임없는 반역과 배신, 그리고 그것을 가슴으로 받아내시는 하나님의 눈물겨운 인내의 역사다. 하나님은 전능자의 권위로 배신자들을 단번에 쓸어버리시는 대신, 상처받은 부모의 심정으로 그들을 향해 다가오셨다.
(1) 창세기 3장 9절, 21절 - 배신하고 숨은 인간을 부르시고 가죽옷을 입히시는 심정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 강해 주석: 인류 최초의 배신 현장이다. 하나님의 말씀 대신 사탄의 유혹을 택해 전면적인 반역을 저지른 아담과 하와는 두려움과 수치심 속에 나무 사이에 숨었다. 하나님은 전능자의 공의로 "네가 무슨 짓을 했느냐!"라고 호통치기 전에, "네가 어디 있느냐"라며 잃어버린 자식을 찾는 부모의 애타는 음성으로 인간을 부르신다. 그리고 수치에 떠는 배신자들을 위해 짐승을 잡아 피 흘리게 하시고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을 배신하는 그 첫 순간에, 이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를 통한 구원 계획을 준비하신 하나님의 먹먹한 심정과 선행적 사랑의 극치를 보여준다.
(2) 사사기 10장 16절 - 거역하는 이스라엘의 고통 때문에 마음에 근심하시는 심정
"자기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 강해 주석: 사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조적 배신의 역사다. 구원해 주시면 또다시 우상을 섬기고 배반하기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참다못한 하나님께서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하셨지만, 대적들에게 짓밟혀 고통당하는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자 하나님의 마음이 먼저 무너져 내린다. 여기서 '마음에 근심하시니라'의 히브리어 원어적 의미는 "하나님의 영혼이 더 이상 참지 못하셨다(Shortened)"이다. 자식을 징계해 놓고 그 자식이 아파하는 모습에 도저히 가슴이 미어져 견디지 못하는 육신의 부모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애달프고도 가녀린 부성적 사랑의 실존을 증거한다.
(3) 시편 78편 38절 - 배반을 밥 먹듯 하는 자들을 향해 진노를 억누르시는 심정
"오직 하나님은 긍휼하시므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리시며 그의 모든 분을 다 쏟아내지 아니하셨으니"
• 강해 주석: 시편 78편은 광야 여정 속에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거역했던 이스라엘의 완악한 배신의 역사에 대한 고발장이다. 공의의 잣대로라면 광야에서 수백 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야 마땅한 백성들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리셨다"고 기록한다. 백성들이 등을 돌릴 때마다 하나님은 당신의 공의의 칼을 스스로 거두시며 가슴으로 그 분노를 삭이셨다. 배신자들을 살려내기 위해 자신의 거룩한 공의적 진노마저 스스로 억누르시고 통제하시는 하나님의 처절한 인내와 비장한 사랑을 보여준다.
(4) 이사야 1장 2~3절 - 키워주었더니 거역하는 자식을 보시는 아버지의 탄식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만은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 강해 주석: 미천한 짐승인 소와 나귀도 자신을 먹여주는 주인의 은혜를 알고 그 구유를 기억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사랑으로 양육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버지를 철저히 배신하고 떠났다. 하나님은 이때 법정의 엄격한 재판관처럼 심판의 형량을 먼저 선고하시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를 향해 "내가 자식을 키웠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했다"라며 찢어지는 마음을 호소하신다. 배신당한 아버지의 가슴 깊은 울분과, 그럼에도 끊어내지 못하는 사랑의 탄식이 서려 있는 구절이다.
(5) 이사야 49장 15~16절 - 자기를 잊은 배신자를 손바닥에 새기신 심정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 강해 주석: 바벨론 포로기라는 징계의 터널을 지나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라고 도리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신하는 배신을 저질렀다. 배은망덕함이 극에 달한 상황이지만, 하나님은 인간 세상의 가장 강한 유대인 어머니의 모성애를 뛰어넘는 사랑을 선포하신다. 육신의 어머니는 타락한 본성으로 인해 혹시 자식을 잊는 비극이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당신을 배신한 백성들의 이름을 당신의 '손바닥에 칼로 새기듯' 깊이 새겨 결코 잊지 못하신다는 애끓는 신적 사랑의 고백이다.
(6) 이사야 65장 2절 - 종일 팔을 벌리고 거역하는 백성을 기다리시는 심정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 강해 주석: 하나님을 정면으로 거역하고 우상에게 제사하며 자기 고집대로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배신자들을 향해, 하나님은 "종일 손을 펴고 서 계셨다"고 말씀하신다. 팔이 저려오고 가슴이 찢어지는 영적 고통 속에서도, 그들이 돌이켜 당신의 품에 안기기만을 바라며 하루 종일 두 팔을 벌리고 서 계시는 하나님의 애처롭고도 가녀린 기다림의 심정이 눈물겹게 묘사되어 있다. 배신자의 완악함보다 더 끈질긴 하나님의 포용적 사랑이다.
(7) 예레미야 31장 20절 - 패역한 자식을 생각할 때마다 창자가 들끓는 심정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창자가 들끓으니 내가 반드시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강해 주석: 여기서 '에브라임'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앞장서며 영적으로 철저히 타락했던 북이스라엘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배신한 그들을 매로 때리시고 징계하시면서도, 그들을 책망할 때마다 가슴이 아파 견디지 못하신다. "그를 위하여 내 창자가 들끓으니"라는 표현은 자식을 향한 부모의 단장(斷腸), 즉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의미한다. 거역하는 자식을 향해 심판의 매를 들 수밖에 없는 공의의 아픔과, 그 속에서 피를 흘리는 자비의 심정이 교차하는 대목이다.
(8) 호세아 3장 1절 - 배신한 아내를 다시 돈 주고 사 오라 하시는 사랑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하시기로"
• 강해 주석: 선지자 호세아의 아내 고멜은 남편의 사랑을 저버리고 다른 남자의 품으로 도망쳐 음녀가 되었다. 인간의 사법적·도덕적 기준으로는 가차 없는 이혼과 징벌이 당연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몸값을 지불하고 그 배신한 여인을 다시 데려와 사랑하라고 명령하신다. 이는 영적 간음을 행하며 하나님을 배신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가슴 찢어지는 심정의 시각적 시연이다. 배신의 아픔 속에서도 끝내 상대를 포기하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집요하고도 거룩한 사랑의 성격을 규명한다.
(9) 호세아 11장 8절 - 도저히 너를 놓아줄 수 없다는 하나님의 사랑의 통곡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 강해 주석: 끊임없이 배반하고 이방 우상들에게 절하는 자식들을 향해 하나님은 마침내 공의의 심판을 집행하여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절시키려 하신다. 그러나 심판의 집행 직전, 하나님의 가슴속에서 통제할 수 없는 사랑이 불붙듯 일어난다.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하시는 하나님의 거친 숨소리와 통곡이 선지자의 언어를 통해 터져 나온다. 심판해야만 하는 공의의 요구와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사랑의 외침 사이에서 고뇌하시는 하나님의 애끓는 심정의 최고 절정이다.
(10) 미가 6장 3절 - "내가 너에게 무엇을 잘못했느냐" 애원하시는 사랑
"이르시기를 내 백성아 내가 무엇을 네게 행하였으며 무슨 일로 너를 괴롭게 하였느냐 너는 내게 증언하라"
• 강해 주석: 출애굽의 위대한 구원을 베풀고 광야에서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먹이시고 입히셨으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쫓았다. 이때 하나님은 하늘의 번개와 폭풍으로 그들의 교만을 꺾지 않으시고, 도리어 깊은 상처를 입은 피해자의 모습으로 다가오신다. "내가 네게 무슨 잘못을 했기에 나를 떠나느냐? 말 좀 해보아라" 하시며 스스로를 낮추어 호소하신다. 전능자가 도리어 배신자에게 다가와 애원하시는 눈물의 심정이다.
(11) 에스겔 18장 23절 - 악인이 배신하고 죽는 것조차 아파하시는 심정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 강해 주석: 하나님을 배신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공의의 심판을 받아 파멸하는 것이 우주의 법도에 맞고 당연한 일이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그것이 정의의 승리이며 통쾌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정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은 당신을 배신한 악인이라 할지라도 그가 죄 가운데 심판받아 죽는 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시며, 어떻게든 그가 돌이켜 살기를 열망하신다. 배신자의 파멸조차 아까워하시고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보편적 자비와 긍휼을 계시한다.
(12) 출애굽기 32장 32절 - 배신한 백성을 위해 자기 생명을 걸어버린 모세의 심정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 강해 주석: 모세가 시내산 위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계명을 받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산 아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광란의 축제를 벌이며 하나님과 모세를 철저히 배신했다. 하나님께서 이 패역한 백성들을 쓸어버리려 하실 때, 모세는 분노를 뛰어넘는 애끓는 사랑으로 중보 기도를 올린다. "저 백성을 용서치 않으시려거든 차라리 주님의 생명책에서 제 이름을 지워 지옥에 보내십시오." 이 모세의 심정은 배신한 형들을 위해 울었던 요셉의 심정이자, 장차 배신자들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 자신을 던지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심정을 예표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