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흑암을 밝히는 완전한 도(道)
본문
사무엘하 22장 21~32절
서론
인생의 밤을 만날 때
우리의 인생에는 누구에게나 예상하지 못한 ‘어두운 밤’이 찾아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질병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자녀의 방황과 가정의 갈등, 경제적인 무너짐과 인간관계의 상처로 찾아옵니다. 때로는 오래 붙들고 있던 꿈이 무너지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아픔 속에서 깊은 절망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인생의 밤이 깊어질수록 사람은 방향을 잃어버립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보이지 않고, 마음은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낮에는 견딜 만했던 문제도 밤이 되면 훨씬 크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들도 어두운 밤을 통과했다고 말씀합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버림받아 애굽의 종이 되었고, 모세는 광야 40년을 지나야 했으며,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구할 정도로 낙심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후서 1장 8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밤은 찾아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밤이 오느냐가 아니라, 그 밤 속에서 누구를 바라보느냐입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도 오랜 시간 인생의 밤을 지나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울 왕의 추격을 피해 광야와 동굴을 떠돌아야 했고, 블레셋 땅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미친 척까지 해야 했습니다. 노년에는 사랑하던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맨발로 울며 예루살렘을 떠나야 했습니다. 시편 6편 6절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그 모든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은 다윗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은 떠나고 환경은 무너졌지만, 하나님은 단 한 번도 다윗의 곁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긴 세월이 지난 후, 다윗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 이 고백은 단순한 시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온 사람이 부르는 믿음의 찬양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어둠 속에서도 우리를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함께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본론
1. 말씀을 붙드는 사람이 끝까지 살아남습니다 (22~23절)
다윗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을 행함으로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모든 규례를 내 앞에 두고 그의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사무엘하 22:22-23)
이 말씀만 보면 마치 다윗이 자신을 완전한 사람처럼 말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압니다. 다윗도 연약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는 밧세바 사건으로 무너졌고, 충성된 군인 우리아를 죽게 만든 큰 죄를 범했습니다. 자녀들의 끔찍한 범죄 앞에서도 무력했던 아버기였고, 노년에는 인구조사를 행하여 영적 교만에 빠지기도 했던 연약한 성정을 가진 인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여호와의 도를 지켰다”고 말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를 한 번도 짓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생의 중심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시편 119편 11절입니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다윗은 죄를 지었을 때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죄를 지적했을 때 그는 왕의 권력으로 선지자의 입을 막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라고 고백하며 회개의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시편 51편 10절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그는 자신의 허물과 수치가 백성들 앞에 드러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을 떠나고 주의 성령이 거두어지는 것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시편 51편 11절의 고백처럼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라고 눈물로 침상을 적셨던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을 깨뜨릴 줄 아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다시 말씀 앞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하나님께 귀한 사람입니다.
미가 7장 8절은 선포합니다.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이처럼 말씀의 중심을 잡은 자는 결코 아주 엎드러지지 않습니다. 잠언 24장 16절 말씀과 같습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특별히 다윗의 믿음이 가장 빛났던 순간은 사울을 죽일 기회 앞에서였습니다. 엔게디 동굴에서 그는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을 단번에 제거할 수 있었습니다. 부하들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가장 빠른 해결책처럼 보였습니다. 만약 다윗이 현실적인 타협이나 정치적인 계산을 따랐다면 그 자리에서 사울을 베어버리고 고통의 세월을 끝내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감정보다 말씀을 선택했습니다.
사무엘상 24장 6절입니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자신의 안위보다 하나님의 주권과 명령을 더 무겁게 여겼습니다. 내 손으로 원수를 갚는 것이 인간적으로는 통쾌할지 몰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법을 깨뜨리는 것이라면 단호히 멈추어 섰던 것입니다.
하박국 2장 20절의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신 말씀처럼,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 앞에서 자신의 칼을 거두고 잠잠히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렸습니다.
진짜 믿음은 감정이 아니라 기준입니다. 상황이 아니라 말씀입니다. 세상은 늘 타협을 요구합니다. “이번 한 번쯤은 괜찮다”고 말합니다. “상황이 이런데 어쩔 수 없지 않느냐”라며 합리화를 부추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손해를 보더라도 말씀을 선택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상황 따라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호수아 1장 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수많은 소음과 유혹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읊조리는 자만이 영적인 분별력을 잃지 않습니다.
시편 119편 9절은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라고 선언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순결함과 거룩함을 유지하며 세상의 흑암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오직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둠이 깊어질수록 더욱 말씀을 붙드십시오. 감정 따라 움직이지 마십시오. 환경 따라 판단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소리는 끊임없이 변하고 흔들리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치 않는 바위와 같습니다. 이사야 40장 8절은 말씀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도 우리의 길을 비추는 등불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105) 등불은 멀리 미래 전체를 한꺼번에 다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캄캄한 밤길에서 등불을 들면 오직 내가 당장 내디뎌야 할 그다음 한 걸음만큼만 빛이 가닿습니다.
믿음은 10년 뒤, 20년 뒤의 모든 미래를 미리 보고 확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나에게 주신 말씀에 의지하여, 비록 사방이 어두울지라도 신뢰함으로 오늘 한 걸음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한 걸음의 순종이 매일매일 쌓일 때, 결국 우리는 은혜의 자리, 승리의 자리에 도달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2. 하나님은 우리의 어둠 속에 등불로 찾아오십니다 (29~30절)
다윗은 계속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 고대 사회에서 등불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생명과 안전의 상징이었습니다. 기름이 떨어져 등불이 꺼진다는 것은 곧 보호막이 사라지고 죽음과 파멸이 찾아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따라서 다윗이 하나님을 자신의 등불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자신의 생명과 방향과 승리가 모두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전전후적인 믿음의 선언입니다.
시편 27편 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어둠의 가장 큰 특징은 실제보다 문제를 더 크게 보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낮에는 아무것도 아닌 작은 나무의 그림자도, 밤이 되면 마치 나를 덮치려는 거대한 괴물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어둠 속에서 상상력의 지배를 받으며 극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빛이 마음에서 희미해지면 작은 문제도 거대한 절망처럼 느껴집니다. 통장의 잔고가 조금 줄어든 것이 내 인생 전체의 파산처럼 보이고, 몸에 찾아온 작은 질병이 삶의 전반을 뒤흔드는 사망의 선고처럼 느껴지며, 인간관계의 소소한 오해가 영원한 고독처럼 다가옵니다. 실패와 낙심의 안개가 우리를 덮치면, 우리는 문제의 실상보다 훨씬 더 큰 두려움에 압도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빛이 임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요한복음 8장 12절입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빛이 비치면 어둠은 아무리 짙었을지라도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물러갑니다. 빛과 어둠은 싸우지 않습니다. 빛이 들어오면 어둠은 밀려날 수밖에 없는 정해진 이치입니다. 하나님의 빛이 내 심령에 비추기 시작할 때, 우리를 짓누르던 모든 가짜 두려움과 왜곡된 염려의 실체가 드러나고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흑암 속에서 보이지 않던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비로소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3절은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어서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본문 30절입니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
이 고백을 가만히 묵상해 보십시오. 얼마 전까지 동굴 깊은 곳에서 사울의 군사들이 올까 봐 숨을 죽이고 떨던 사람이 아닙니까? 아둘람 굴에서, 엔게디 황무지에서 낙심하여 울부짖던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제는 그가 고백하기를, 자신이 적진을 향해 기세 좋게 달려가며 거대한 성벽을 단숨에 뛰어넘겠다고 말합니다.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다윗을 둘러싼 군사적 상황이나 객관적인 조건이 바뀐 것이 아닙니다. 원수들은 여전히 강력했고, 성벽은 여전히 높고 견고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심령에 여호와 하나님이 등불로 찾아오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그를 둘러싼 환경이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 영혼에 들어오면 사람은 다시 살아납니다. 인간의 계산으로는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 절망의 한복판에서도 벌떡 일어설 힘이 생깁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늘 성벽만 보게 만듭니다. “네 능력으로는 저 벽을 넘을 수 없어”, “네 배경으로는 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라며 불가능과 한계만을 끊임없이 계산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영안을 열어 말씀하십니다. “그 성벽보다 내가 더 크다. 내가 너를 붙들고 있다.”
빌립보서 4장 13절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또한 로마서 8장 37절은 강력하게 선언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 힘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지혜와 경험으로는 세상의 거대한 장벽을 넘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등불이 되시고 나의 능력이 되시면 무너뜨리지 못할 장벽은 없습니다. 오랜 세월 나를 옭아매던 중독의 성벽도 무너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절망의 벽도 허물어지며, 영혼 깊숙이 자리 잡은 상처와 분노의 담도 기쁨으로 뛰어넘게 될 줄 믿습니다. 하박국 3장 19절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될 것입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우리의 조건과 능력을 바라보며 낙심치 마십시오. 스가랴 4장 6절은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인생의 높은 벽 앞에서 낙심하고 계신 성도 분이 계십니까? 내 힘의 한계를 만나 주저앉아 계십니까?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주님의 빛으로 그 벽을 뛰어넘는 역사가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의 삶에 임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3. 하나님의 길은 완전합니다 (31~32절)
마지막으로 다윗은 자신의 인생을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결론적인 고백을 올려드립니다. 본문 31절입니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
이 고백은 책상에 앉아 머리로 연구해서 나온 이론이 아닙니다. 차가운 새벽 광야의 바람을 맞고, 밤마다 흙바닥에서 잠을 청하며, 수많은 생사의 갈림길을 지나온 사람만이 가슴 저리게 터뜨릴 수 있는 고백입니다. 다윗은 지나온 모든 밤을 돌아보며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으셨고, 그분이 나를 인도하신 모든 길은 가장 선하고 완전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막상 인생의 한복판을 통과할 때는 이 사실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고통의 터널이 너무 길어지면 우리는 자주 하나님께 서운한 마음을 품고 묻게 됩니다. “하나님, 왜 하필 나입니까?” “왜 다른 사람들은 다 평탄해 보이는데, 왜 내 삶에는 이런 파도가 멈추지 않습니까?” “왜 지금입니까? 왜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시고 내 기도를 외면하십니까?”
하나님의 일하심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나를 향한 계획이 있기는 한 것인지 의심이 들고, 메마른 광야의 행진만 끝없이 계속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믿음의 눈을 들어 뒤를 돌아보면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내가 버려졌다고 생각했던 그 고독의 시간, 억울하게 눈물 흘렸던 그 광야의 시간조차도 나를 빚으시고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의 가장 완전한 계획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신명기 8장 2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만약 다윗에게 사울에게 쫓기던 10년이 넘는 광야의 세월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골리앗을 무너뜨린 영웅주의에 취해, 왕이 되었을 때 사울보다 더 교만하고 포학한 군주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광야는 다윗을 무너뜨리기 위한 심판의 장소가 아니라, 그를 깨뜨리고 낮추어 이스라엘의 가장 성군다운 왕으로 빚어내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인큐베이터였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은 선포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기서 ‘모든 것’에는 우리의 성공과 기쁨뿐만 아니라, 우리의 실패, 눈물, 고난, 심지어 우리의 연약함과 실수까지도 포함됩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파편들을 정교하게 엮으셔서 마침내 가장 아름다운 선을 창조해 내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이사야 55장 8~9절도 말씀합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우리의 좁은 식견으로 하나님의 깊은 지혜를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부분만 보지만 하나님은 전체를 보시며, 우리는 현재의 고통에 흔들리지만 하나님은 이미 마련된 영광스러운 결말을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흔들리지 않는 신뢰를 담아 외칩니다.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
시편 46편 1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세상이 자랑하는 방패는 결국 무너집니다. 물질의 방패도 영원하지 않으며, 세상 권력의 방패도 바람 앞에 등불처럼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내가 그렇게 믿고 의지했던 사람의 방패도 환경에 따라 변하고 상처를 주기 마련입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영원히 뚫리지 않는 완벽한 방패가 되십니다.
에베소서 6장 16절입니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사단이 우리의 과거를 들추며 정죄의 불화살을 쏘아댈 때, 환경의 어려움을 통해 불신앙의 불화살을 던질 때, 우리는 완전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방패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본문 32절에서 우상과 세상의 모든 헛된 것들을 향해 선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우리 인생의 영원한 기초가 될 수 없습니다.
결론
하나님의 은혜는 오늘도 우리를 추적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눈 다윗의 고백은 단순히 수천 년 전 이스라엘 한 왕의 과거 역사가 아닙니다.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며, 장차 우리가 부르게 될 간증의 노래입니다. 우리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우리가 하나님을 간절히 찾기 전에,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가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깊은 죄의 어둠 속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은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우리에 두고,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도록 끝까지 추적하시는 분이십니다. 누가복음 15장 4절입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주님은 대충 찾다가 힘들면 포기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찾아내기까지’, 끝까지 쫓아가시는 사랑입니다. 다윗은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평생 경험했기에 시편 23편 6절에서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여기서 “나를 따른다”라는 단어는 사냥꾼이 사냥감을 잡기 위해 맹렬하게 뒤쫓아가는 것과 같은 ‘추격’을 의미합니다. 즉, 내가 하나님의 낯을 피해 도망치려 할 때에도, 내가 낙심하여 깊은 동굴 속으로 숨어버릴 때에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나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추격해 오신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그 끈질긴 은혜의 추격이 있었기에 다윗이 살아남을 수 있었고, 오늘 우리 역시 이 자리에 예배자로 서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넘어져도 주님은 우리 손을 놓지 않으시며, 눈물의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우리 눈물을 병에 담으시며 우리를 지키십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입니다.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마무리 기도
존귀하신 하나님 아버지, 인생의 어두운 밤을 만나 방향을 잃고 힘겨워하는 주의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환경을 바라보며 두려워했던 저희의 불신앙을 용서하여 주시고, 어둠 속에 등불로 찾아오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내 힘으로 넘을 수 없던 성벽을 주를 의지함으로 뛰어넘게 하시고,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완전한 도를 신뢰하며 오늘 하루도 말씀 위에 굳건히 서게 하옵소서. 우리를 끝까지 추격하시는 그 은혜의 손길에 삶을 온전히 맡기오며, 우리를 어둠에서 건져내어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최원호 목사 (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