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회신학대학교(장신대)와 총신대학교(총신대)가 각각 개교 125주년을 맞았다. 1901년 설립된 평양 신학교에 뿌리를 둔 두 신학대는 오랜 역사 속에서 각기 한국교회 신학 교육을 선도하며 숱한 영적 지도자를 배출해 낸 공통분모가 있다.
장신대는 12일 서울 광진구 장신대 한경직기념예배당에서 개교 제125주년 감사예배와 기념행사를 가졌다. 총장 박경수 목사의 사회로 드려진 예배에서 황명환 목사는 “참된 학문의 목적은 피조물인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창조주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서는 데 있다”며 “오늘날 신학교육과 학문의 자세 역시 십자가 중심이어야 한다”는 설교를 전했다.
총신대는 14일 서울 동작구 총신대 제1종합관 백남조기념홀에서 개교 125주년 기념예배와 기념예식을 가졌다. 총동창회장 김영삼 목사의 사회로 드려진 예배에서 총장 박성규 목사는 “감사하고 기억하고 도약해야 한다”며 “한 손에는 복음을 들고 한 손에는 예수님의 사랑을 들고 온 땅 구석구석을 밝히는 시대의 등대와 등불이 되길 바란다”고 설교했다.
장신대와 총신대는 1901년 평양에 세워진 ‘조선장로회신학교’의 후신으로 각기 한국 장로교 신학 교육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런 두 신학대가 개교 125주년을 맞아 신학의 본질을 성찰하고, 교회와 사회 속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다진 거다.
평양 신학교라는 한 뿌리에서 출발해 두 학교로 나뉘게 된 과정은 한국교회, 특히 장로교의 뼈아픈 분열의 역사와 괘를 같이 한다. 그러므로 두 신학대는 한국 장로교의 분열 역사를 극복하고 신학의 공공성을 회복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 앞에 서있다.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 마펫이 설립한 평양신학교는 1907년 길선주·한석진·이기풍 등 7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하며 한국교회 목회자 양성의 산실이 되었다. 하지만 1938년 장로교 총회의 신사참배 가결을 둘러싼 갈등이 8.15 해방 후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자유주의 신학과의 충돌, 신사참배 반대로 옥고를 치른 이들과 잇따라 분열하며 기장, 고신이 분리되고, 그 후 에큐메니칼 신학 문제로 다시 합동과 통합으로 나뉘면서 신학교도 총신대와 장신대란 각기 다른 이름으로 발전해 왔다.
사실 두 대학은 25년 전 개교 100주년 때 평양 ‘조선장로회신학교’라는 한 뿌리를 되새기는 특별한 만남을 계획했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교단 원로들 사이에 교단 분열의 앙금이 남아있던 터라 끝내 성사되지 못한 이력이 있다.
1959년 교단이 갈라질 당시에 불편했던 감정과 복합적인 문제로 합동 측 총회가 ‘강단교류 금지’를 가결하면서 한동안 멀어졌던 두 교단은 지난 1995년에 총회 임원 교류를 재개하면서 교단 차원의 연합·협력의 끈이 다시 이어졌다. 이런 기류가 최근에 와 더욱 활발해지며 정기적 연합예배와 임원 간담회, 공동성명서 발표 등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연합사업에 있어서도 두 교단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구심점으로 보수 기독교 연합운동을 이끌어가는 사이로 발전했다. 한 때 한기총의 금품 선거 문제로 금이 갔던 두 교단 사이는 한국교회총연합 창립과 함께 연합사업의 협력을 이어가는 관계로 봉합됐다.
두 교단의 신학대인 총신대와 장신대의 경우, 지난 2005년 10월 총신대 김인환 총장이 장신대 채플에서 설교하고, 그 이듬해 3월 장신대 김중은 총장이 총신대 양지캠퍼스 채플을 찾아 말씀을 전하는 등의 강단 교류를 재개했다.
그 후 가시적인 교류를 이어가지 못하던 두 학교는 2024년 총신대 박성규 총장이 장로회신학대학교를 방문을 계기로 다시 만남의 끈이 이어졌다. 박 총장이 장신대 김운용 총장에게 1918년 3월 평양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 시절 신학교 교수들의 연구논문이 실린 ‘신학지남’을 전달한 것이 두 신학대 간에 막혔던 물꼬를 트는 계기로 작용했다.
아쉬운 건 당시 두 총장 간에 한 뿌리에서 시작된 형제 학교로서 더욱 긴밀한 교류를 하기로 합의했음에도 그 이후 별다른 교류의 기회가 조성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배경에서 이번 개교 125주년을 계기로 두 신학대 간에 무언가 가시적인 협력과 교류의 결실을 선보이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던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두 대학이 따로따로 성대한 기념식을 치른 것 외에 별 다른 접점 없이 125주년을 그냥 보냈다.
지금 한국교회는 부흥기를 지나 정체기,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그 위기가 신학 현장에까지 고스란히 밀려드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교단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많은 수의 신학교가 신학생 수 감소와 정원 미달로 곧 문을 닫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이런 절박한 현실 앞에서 한국 장로교를 대표하는 두 신학대가 각각 125년이라는 지나온 역사를 반추하는 것으로 이날을 그냥 흘러 보내선 안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한국교회가 마주한 위기를 직시하고 각자 신학의 본질과 교회의 공적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되 당면한 실타래를 풀기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는 모습을 한국교회는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