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 구원 개념이 선교에 미칠 수 있는 영향 분석(2)

오피니언·칼럼
기고
전통적인 구원 개념의 혼선 가능성
안승오 영남신대 선교신학 교수

전통적인 신학에서는 구원과 그 후에 오는 변화, 그리고 구원과 윤리 등이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그런데 방콕의 구원 개념은 이 모든 것을 다 하나로 묶어서 포괄적인 구원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전통적인 구원이해에서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영생,’ 등이 구원의 핵심사항이었다. 이것이 이루어지면 구원을 받은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물질적인 개선, 인권의 개선, 소외의 개선, 정의와 평화의 성취, 생태 환경의 개선 등은 구원 얻은 자들이 점진적으로 맺어가야 할 열매로 보았다. 하지만 에큐메니칼 구원이해는 구원의 핵심사항과 부수적인 결과를 구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다 구원의 핵심 사항이라고 보는 것이다.

아울러 전통적인 구원론에서는 칭의와 성화가 구분되어 이해되었다. 의롭지 못한 죄인이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와 신앙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롭다는 인정을 얻는 것이 바로 칭의 이다. 칭의는 한 역사적 순간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유일회적인 행위이다. 그것은 인간의 존재 전체와 연관된 전체적 사건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유일회적이며 전체적인 사건으로서의 칭의는 역사적 연속적 과정으로서 일어나는 성화로 연결된다. 칭의와 성화의 관계는 나무와 열매의 관계로 비유되어질 수 있다. 즉 나무에서 열매가 맺혀지듯이 칭의가 이루어질 때 성화의 열매가 맺혀지게 되는 것이다. 성화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도 인간의 노력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을 의롭다고 인정하심으로써 죄의 세력으로부터 해방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즉 칭의가 일어났기 때문에 성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들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거룩한 자들로서의 새로운 삶 즉 성화의 삶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방콕의 구원 개념은 전통적인 칭의와 성화, 구원의 핵심과 열매, 개인의 구원과 사회적인 구원까지를 모두 하나로 묶어서 구원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물론 선교를 수행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복음을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사회가 변화되지 않고 구조적 악이 팽배하고 죄악이 만연할 경우 도대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방콕이 구원의 개념에 정치 경제적 구원까지를 포함하게 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과연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예수를 받아들이고 구원을 받은 사람이 여전히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억압 가운데 있다면 그는 여전히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일까? 그렇다면 북한과 같은 공산권이나 억압을 받는 이슬람권 등의 신자들은 억압 가운데 있으므로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일까?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된 노예들이 여전히 노예의 신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구원받은 성도로 생각하면서, 주인을 잘 섬기라고 권면하였다(엡 6:5, 딤전 6: 1-2). 즉 바울에게 있어서는 사회 신분적으로 자유인인가 노예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영접했는가 안했는가의 문제가 구원의 기준이었다. 즉 바울에게는 칭의 차원의 구원이 가장 핵심적인 차원의 구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구원의 기준에 가난으로부터의 해방 등을 포함하면 도대체 어느 정도의 부를 가진 자가 구원을 받은 것인지를 규정하는 것이 매우 애매하게 될 수 있다. 지역마다 그 기준이 다를 것이고, 사람마다 부의 기준에 대한 생각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큐메니칼 방콕의 구원 개념은 구원의 개념 속에 모든 것을 포함하기 때문에 구원의 기준이 매우 혼란스러워질 위험성이 커진다.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매우 애매해지게 된다. 이런 점에서 방콕의 ‘오늘의 구원’ 문제를 실제적으로 책임졌던 토마스 위져(Thomas Wieser)도 구원의 문제를 다룰 때 견고한 신학적 기준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분명히 이것은 정치적 운동 혹은 이념적 경향을 무조건 승인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 목적을 파악하는 임무에는 중대한 판단이 만들어질 수 있는 기초 위의 견고한 신학적 기준이 요구된다. 여기에서 단기간의 연관성의 진전 속에서 교회의 신뢰성이 다시 상실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중요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바삼도 방콕을 평가하면서 “방콕에서는 참여자들이 직면한 신학적 임무의 요구가 적절히 다루어지지 않았기에 더 빈약했다”라고 말하고 있다. 방콕의 포괄적인 구원 개념은 포괄적이어서 그럴듯해 보이지만, 구원에 대한 정의가 상황마다 사람마다 다 달라질 수 있어서 혼동을 가져올 위험성이 있다. 선교는 구원을 전하는 사역인데, 구원이 무엇인지 조차도 명확하지 않는다면 그 선교는 성공적인 결과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 좀 더 자세한 내용과 각주 등은 아래의 책에 나와 있다.

현대선교신학

 

안승오 교수(영남신대)

성결대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M.Div)에서 수학한 후,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으로 신학석사(Th.M) 학위와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총회 파송으로 필리핀에서 선교 사역을 했으며, 풀러신학대학원 객원교수, Journal of Asian Mission 편집위원, 한국로잔 연구교수회장, 영남신학대학교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선교와 신학』 및 『복음과 선교』 편집위원, 지구촌선교연구원 원장, 영남신학대학교 선교신학 교수 등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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