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고통의 은총(권성수, 생명사역훈련원, 2017)

오피니언·칼럼
배안호 선교사(영국 선교사)
배안호 선교사.

“고통을 뒤집으면 은총이 보인다” - 강한 훈련을 통하여 인격을 빚으시는 하나님

들어가기(서론): ‘독수리 5형제’(목사·박사·교수): 권성묵/권성수/권성호/권성대/권성달

이 시대는 무병장수 ‘꽂길 인생’을 부추긴다. 책 제목이 생뚱맞다. <고통의 은총>. 고통을 뒤집으면 은총이 보인다. 고통은 은총을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를 일깨운다. 혹독한 가난과 질병, 아내의 불임 등 수 많은 역경을 ‘오직 믿음’으로 돌파한 권성수 목사의 자서전적 간증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부으셔서 ‘고통’을 ‘은총’으로 승화시키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일깨워준다.”(뒤표지) 저자는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인격을 낳고, 인격은 희망을 낳는다’고 야고보의 고백(약1:2-4)을 하고 있다.

“나는 거창한 자서전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자서전을 쓸 만한 나이가 된 것(2017년의 고백)도 아니고, 남다른 업적을 남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지금까지 나의 삶을 돌아보면서 고통을 통해 나를 빚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싶다” (p. 4, 들어가는 말)

전체 5장: 제1장 강가의 소년 시절, 제2장 서울의 청년 시절(16년), 제3장 미국의 유학 시절(7년), 제4장 총신의 교수시절(14년) 그리고, 제5장 대구의 목회생활(22년). 서평자는 저자의 소년과 청년/총신대 신대원 교수/대구 동신교회 목회를 중심으로 서평을 쓴다.

권성수 목사(교수)는 한국교회 신학계의 주목받는 신학자요 목사다. ‘생명 사역자’로 널리 인정받았다. 빼어난 교수사역과 성공적인 목회사역을 펼치게 된 저력(底力)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서평자는 <고통의 은총>을 읽으며 그의 탁월한 삶과 사역의 근원을 알게 되었다.


A. 권 목사의 소년·청년 시절: 욥의 고난을 연상케 하는 긴 고통의 연단기간

1. “나는 목사가 될 바에는 차라리 자살해 버리겠다”

도서 ‘고통의 은총’ 표지 이미지.

“우리 가문에는 할머니를 통해 복음이 들어왔다. 할머니는 방위량(William Blair) 선교사님의 동생, 방혜법(Herbert Blair) 선교사님을 통해 복음을 들었다. 방혜법 선교사님은 경북 의성군 구천면 구천교회 초대 목사님이셨다. (중략) 할머니는 당시 14세의 소녀로 선교사님의 전도를 받고 바로 예수님 믿으셨다.” (p. 18, 공교롭게도 저자의 외할머니도 같은 방혜법 선교사님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여 외갓집이 모두 구원을 받게 되었다)

할머니는 안동 권씨 집안에 시집오면서 증조할아버지를 전도하여 안동권씨 가문 복음화의 대업을 이루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가문의 운명을 바꾸었지만 할머니의 인생은 불행했다. 아들 셋 중에 첫 아들과 막내아들을 잃은 것이다. 둘째 아들(권 목사의 부친)을 위해서 생명을 건 기도로 6.25 전쟁 부대원이 다 사망하는 가운데서 생존하여 후에 목사가 되었다. 아버지는 새벽기도때에 5아들을 다 목회자로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헌신한대로 다섯 아들들(‘독수리 5형제’)은 대한민국교회의 실력있는 목사박사와 교수가 되었다.

“나는 목사가 될 바에는 차라리 자살해 버리겠다고 했다. 우리 (다섯) 형제들이 그렇게 반발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고향에 있는 논밭을 다 팔아 서울 홍제동에 개척교회를 세우셨다. 아버지가 전 재산을 주님께 바치고 8자 9자 전세방 한 칸에 가족들을 몰아넣으시는 바람에 우리 가족 8명은 꽁보리밥을 먹고 칼잠을 자야 했다” (p. 28)

고향의 논밭을 다 팔아 서울 홍제동에 개척한 교회. 교회 내 분쟁이 발생하자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떠나게 되었을 때, 8명 가족이 당한 고통은 형언키 어려웠을 것이다. 할머니와 아버지의 이 같은 ‘무서운 신앙, 미친 신앙’은 하나님의 영광을 믿음으로 미리 바라보았던 것…

2. “죽으면 썩을 몸 아껴서 무엇 하랴”.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

“아버지는 신학공부를 하시면서 전도사로 목회 하시느라 어머니와 함께 항상 타지에 가 계셨다. 형님과 나는 고향에 남아서 할머니와 함께 농사를 지었다. 땅이라 해 봤자 안계평야에 논 4마지기 600평과 대꼴이라는 곳에 밭200여 평이 전부였다” (p. 30, 권 목사는 둘째 아들).

서평자도 가난한 농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논 5마지기에 밭 400여 평이 전부였다. 무더위에 넓은 콩밭 김매는 일, 가을 추수 때는 손바닥에 금방 피가 나오곤 하였다. 권 목사의 할머니는 힘든 농사일을 감당하며 자주 힘들어 하는 손주들에게 이렇게 훈계를 하였다. “죽으면 썩을 몸을 아껴서 무엇 하랴”.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남아 열다섯이면 호패를 찰 나이!” 이 조부모의 훈육은 일평생 권 목사의 인생의 좌표가 되었다.

“할머니는 성경의 인내, 책임, 덕성, 교훈을 한 마디의 속담에 담으셔서 내게 전해 주셨다. 그것은 90분 강의보다 더 힘이 있는 훈육이었다. ‘잔 소리’가 아니라, ‘한 마디’가 그렇게 효과적인 것일까. 할머니는 시간 날 때마다 성경의 요셉, 다니엘, 모세 이야기 등을 내게 들려주셨다. (중략) 목숨 걸고 주님께 충성하셨던 아비지의 영향이 컸던 것도 사실이지만, 다니엘의 사자 굴 이야기 때문에 내가 신앙의 지조를 지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pp. 34-35, 어린시절부터 (조)부모의 자녀교육의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3. 성숙은 고통에서 온다. 한번 시작한 일은 아무리 힘들어도 끝내야 한다.

“하나님은 이런 고통을 통하여 내게 놀라운 은총을 베푸셨다. 하나님은 나에게 어릴 때부터 고통의 맛을 속속들이 보게 하셨다. 눈물을 흘리며 빵을 먹어 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눈물을 흘리며 빵을 먹어본 사람은 빵 먹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중략) 물을 마셔도 물맛을 보면서 물을 마신다. 공기를 한 모금 마셔도 공기의 단 맛을 알고 마신다. 어차피 사는 인생이니 그냥 살아가는 인생은 맛이 없다. 삶의 맛을 알고 사는 인생은, 삶을 인지하고 의식하는 의식의 질이 높다.” (p. 50, 그래서 고통은 은총이다)

‘고통을 통해서 ‘삶의 맛/인생의 맛’을 알게 되었다’. 온실에서는 거목이 나올 수 없다.

“하나님은 내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이 주신 삶의 가치를 알고 살게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총이다. 하나님은 육체적인 고통을 통해서 내게 인생의 맛을 알게 하셨을 뿐 아니라, 관계적 고통을 통해서도 인생의 맛을 알게 하셨다.” (pp. 50-51, ‘관계적 고통’은 경험해야 안다)

“하나님은 일하는 과정에서 겪는 고통을 인내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한 번 시작한 일은 아무리 힘들어도 끝내야 한다는 것도 가르치셨고 할머니의 ‘단 한디’ 훈육을 통해서 끝까지 참고 견디는 훈련도 시키셨다.” (pp. 51-52, 끝까지 참고 견디는 것이 찐 실력이다)

권 목사는 어린시절의 이런 고난과 고통을 통해서 인생의 큰 자산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미국에서 힘든 박사학위를 쓸 때도, 교회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어떤 일이든지 한번 시작하며 아무리 힘들어도 반드시 끝내야 한다는 일찍이 체득한 것이다. 서평자도 가난한 농촌 가정의 장남으로서, 3동생들 돌보며 15년 직장 생활하며 주경야독(晝耕夜讀)해야 했다.

4. 물지게, 나무지게, 인생 지게. 내 인생은 지게 인생

“아버지는 신학교에 다니면서 서울 홍제동에 이미 개척교회를 시작하셨다. 고향의 땅을 판 돈으로 전세 방 두 칸을 얻고는 나머지를 몽땅 교회에 바치셨다. 아버지는 그 돈으로 홍제동 판자촌 언덕에 교회를 세우셨던 것이다. 우리 가족이 살던 판자촌은 위로는 안산, 옆으로는 홍제동 화장터, 앞으로는 한길 건너 인왕산이 있었다.) (p. 57)
“그곳은 수도가 없어서 나는 매일 안산 중턱 약수터로 물지게를 지고 물을 뜨러 갔다. 고향의 나무지게가 서울의 물지게로 바뀌었을 뿐, 내 인생은 지게 인생이었다.” (p. 58)

“새벽 기도 하지 않으면, 너희는 내 자식 아니야”… 박윤선 목사님의 선한 영향력!

“아버지는 장승백 교회에서 열심히 목회하셨다. 아버지는 형님과 나에게 새벽기도를 강요하셨다. “새벽 기도 하지 않으면, 너희는 내 자식 아니야.” 아버지의 목회에 반발하던 나와 형님은 아버지의 강요에 못 이겨 새벽기도에 나가기는 했지만, 속은 편치 않았다.” (p. 67)
“아버지가 어느 날 또 갑자기 한 말씀 하셨다. “박윤선 목사님께서 함께 교회를 개척하자고 하시네. 마침 잘 됐어. 교회를 새로 시작해야 하겠어.” 박윤선 목사님은 성경 주석가요 신학자요 유명 교수님이셨다. 아버지는 박윤선 목사님을 신앙의 영웅으로 존경하셨다. 아버지는 박윤선 목사님이 쓰신 주석대로 설교하셨다. 설교 시간에 박윤선 목사님을 언급하시면서 몇 차례 감격해서 울먹거리기도 하셨다. 아버지가 그렇게 존경하시는 박윤선 목사님께서 신학교 교수생활을 하시면서 지원해 줄 테니 개척교회를 같아 하자고 하셨으니, 그것은 아버지에게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p. 68, 박윤선 목사님의 선한 영향력을 알게 된다)

5. “하나님은 둘러가는 ‘우회(detour)인생을 주셨다” : 박영선 목사/김인중 목사/김안신 선교사/김정우 교수/강승삼 선교대학원 전원장과 소그룹으로 공부)

군 입대하면서 간절한 기도: ‘전방은 피하게 해 주세요. 3년 동안 제가 지식을 다 잃어버리면 하나님 섬기는데 지장이 있어요. 후방에 배치시켜 주세요. 하나님께도 손해가 나지 않게 후방에서 공부하며 군 생활하게 해 주세요’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최전방 부대로 32개월 빡센 군생활을 하게 하셨다. 마침내 사단 군종병이 되었으나 허약한 건강으로 십이지장 궤양 부대병원 입원한 끝에 제대를 몇 달 앞두고 하나님께 항복기도! 신학교에 가기로 결단했다.

찢어질 듯 가난한 가정에서 형과 더불어 2명의 신학생. 총신대학교 수석입학으로 등록금 부담 없이 공부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나, 여전히 극심한 가난은 그를 옥죄어 왔던 것이다.

“아침마다 총신 뒷동산에 올라가서 헬라어로 요한복음을 소리 내어 읽기도 했다. 영어로 그렇게 공부했지만, 헬라어나 기타 공부도 유대인처럼 큰 소리로 읽거나 외우면서 하는 전신학습은 그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학습법이었다. 그 때에 나는 남포교회 박영선 목사님, 총신 신대원 김정우 교수님, 총신 선교대학원 강승삼 전원장님, 안산동산교회 김인중 목사님, 일본에서 일하시는 김안신 선교사님 등과 소그룹을 만들어 공부했다.” (p. 102)

‘고된 시집살이에 입을 꼭 다문 새색시’… 도봉산제일기도원에서 응답의 문 열리다.

“나는 대학생 시절부터 도봉산제일기도원을 드나들면서 밤에 산 기도를 드리곤 했었다. 군인으로 휴가를 나왔을 때도 군복을 입고 기도원에서 기도하곤 했다. 하나님께서 나를 연단하시는 손길이 너무 매섭고 힘들어서 나는 기도 굴에 들어가 밤을 새면서 기도하기도 했다. 한참 기도하다 보면 박쥐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소리가 마치 귀신들이 설쳐대는 소리 머리칼이 쭈뼛 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p. 103)
“내가 신학생 시절 친한 친구들에게라도 나의 아픔과 고민을 털어놓았더라면 그 친구가 그런 오해를 하지 않았을 것이며, 젊은 날 내가 우울증에 걸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일절 고민을 털어놓지 않고 늘 정장을 하고 공부와 기도만 하는 나를 보고, 친구들은 ‘고된 시집살이에 입을 꼭 다문 새색시’로 본 것 같다” (p. 106, 우울증 고통 가운데서 공부와 기도에 몰입!)
6.25 전쟁 중에 태어난 권 목사는 신학생이 되었지만 여전히 고민과 역경은 계속되었다.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입을 열어 털어놓지 않으면 뼈가 녹도록 종일 신음하였던 것이다(시32:3).
“나는 욥기를 읽고 나면 나의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을 들을까 하여 바위 위에 앉아서 욥기를 통독한 적도 있었다”(p.104). 다만 고난의 이유를 알기 위해서 부르짖었다. 그러기에 저자는 욥과 시편기자의 심정을 느끼게 되었다. 가중되는 고난의 터널의 벼랑 끝에서, 비로서 일체의 말과 행동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나를 온전히 주장해 달라고 찬송하였다(찬425장, 1-4절)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나를 온전히 주관하셔서 내가 주님과 함께 살고 있음을 만민이 알게 해 달라고 기도 드렸다”(p.108, 하나님의 부르심(calling)에 응답!)

‘김명혁 교수님은 유학의 문을 열어 주셨고, 김진택 목사님은 유학비용을 후원!’

“내가 신학교 2학년 때 김명혁 교수님이 미국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셔서 “권 전도사, 유학가지 않을래요?”라고 하셨다. 그때까지 유학이라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고 기도하지도 않았다. (중략) 김 교수님은 미국 칼빈 신학교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등을 다녀오시면서 장학금이 가능하겠다는 판단을 하시고 나에게 유학을 권하신 것이었다. 나는 그 때부터 유학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p. 108)
유학을 생각도 않았을 때, 김명혁 목사님은 권 전도사에게 유학을 권하였고, 그 후 적극적으로 “이 학생은 지원해 줄 만한 학생이니 지원해 주시기 바랍니다”는 추천서와 함께 전국의 가장 큰 교회에 지원을 요청하였고, 결국은 당시에 다니던 한성교회 (담임: 김진택 목사)에서 파격적인 지원(당시 500만원)으로 미국 유학이 성사되었다.

서평자도 김명혁 교수님은 평생 잊지 못할 도움을 주셨다. 연이어 영국유학길이 열렸다…

김명혁 교수님은 총신대학 선교연구소 서평자의 사무실에 느닷없이 찾아오셨다. 시카고 세계선교대회에 참석할 것을 강권하셨다. 비자서류. 추천서를 친히 써 주시며 필요한 비자서류 모두 다 챙겨 주셨다. 시카고 한인세계선교대회(KWMC, 1992.7월) 참석. 먼저 나 자신이 선교를 공부해야 함 절실하게 깨달았다. 2년간 기도한 후, 1994년 9월에 영국유학이 시작되었다.

‘참한 아가씨’와 드라마틱 결혼에 골인! 7년 만에 ‘100:1의 불임’ 깨고 기적의 첫 아기 출산!

권 목사의 결혼 이야기 또한 흥미진진하다. 자주 오르내리던 도봉산제일기도원 원장의 중매로. 충주 양반집 맏딸로 건실한 신앙인. 신부 아버지는 명문대 출신(서울 법대)이었다. “숭실대 영문과 수석졸업과 총신 신대원 수석입학 정도의 실력으로 과연 유학을 갈 수 있을까?”고 염려하며 “마지막 조건으로 토플(TOEFL) 성적을 들고 오면 한 번 생각해 보겠다”고. 다행히 670점 만점에 620점 얻어 ‘결혼 토플점수’ 확보하였다.
“결혼은 해도 자네 집은 마련해 줄 수 없네”고 장인 어른이 허락으로 천신만고 끝에 결혼에 골인! 영국 케임브리지 틴데일 하우스(Tyndale House)에서 박사논문 쓸 때, 100일 집중기도를 마칠 때 즈음에, 결혼 7년 만에 ‘100:1의 임신’. 기적적으로 첫 아기 임신과 출산!

“1964년 중학교 2학년 때 상경하여 1980년 미국 유학길에 오르기까지 16년 동안 나는 힘든 고통을 다양하게 겪었다. 그때 겪었던 고통 하나하나를 되짚어 보니. 당시에는 예리하게 느껴지던 고통이 이제는 감격스럽게 다가오는 은총으로 느껴진다. 내가 당한 일은 겉으로 보면 분명히 고통인데, 그 속에 들여다보면 은총이다. 참으로 신기할 뿐이다.” (p. 118)

‘고통이 곧 은총이다’. 이런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남의 간증을 듣고 아멘 했다고 자신의 신앙이 업그레이드되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고통의 긴 터널, 광야 길에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하나님을 체험한자에게 고통이 곧 은총이다.

B. 총신교수시절과 대구동신교회 목회: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생명사역’

1. 탁월한 강의와 영성 넘치는 채플 설교. ‘균형을 잡고 전통을 지키다’

“지금 목회자가 되어서 회고해 보니, 그때 학생들에게 좀 더 후한 성적을 주었 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선교지를 방문하면서 거의 매번 제자들을 만날 때에 대부분의 제자들이 내가 준 짠 성적에 대해 섭섭해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p. 186)
“나는 총신 교수를 하면서 약 20권의 책을 번역하고, 15권 정도의 책을 집필했다. 교회를 위한 신학이 아니면 신학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었기에 교계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나는 바로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하였다.” (p. 196, 서평자도 똑 같은 생각이다. 모든 신학공부- 석.박사 학위논문은 반드시 교회와 선교발전에 이바지하는 공부여야 한다!!)
권성수 교수는 서평자의 은사이기도 하다. 매 수업시간마다 학생들을 한눈을 팔 수가 없었다. 꽉 찬 수업내용과 열정이 대단하였다. 특히 채플시간은 영성이 실린 그의 설교는 압권.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불평이 많았던 것을 생생히 기억한다. 웨스트민스터의 짜게 메기는 방침(low grading policy)에 따라 A학점을 따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서평자는 솔직히 좋은 점수는 못 받았으나, 불만은커녕 오히려 더 감사가 넘쳤다. 신학교 교수들은 마땅히 그렇게 치열하게 가르치고, 채플의 모든 설교는 영성이 넘쳐야 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짜게 성적을 받은 것에 대해 오히려 더 감사하는 마음이 많았다.

“나는 신학을 시작할 때부터 ‘균형’이란 말이 정말 좋았다. 내가 총신 신대원(당시 총회신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을 때 김명혁 교수님이 교회사 강의를 하셨는데 나는 교수님의 신학적인 ‘균형’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평생 교회를 위한 신학을 하되 균형 잡힌 신학을 하겠다는 생각을 그때 굳혔다” (p. 198, 서평도 권교수의 이런 ‘균형신학론’ 완전 매료 되었다)
모든 신학은 ‘균형신학’으로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신학이어야 한다. 좌나 우로 치우치지 않은 신학적 밸런스의 자세가 중요하다. 서평자는 권성수 교수님의 탁월한 강의·통역도 좋아하지만, 신학과 목회현장에서 초지일관 그의 ‘균형 신학’을 가장 높이 평가하고 싶다.
“나는 신학의 ‘균형’을 중시했지만 동시에 성경대로 믿는 올바른 신학을 지키고 발전시키려는 열망이 있었다. 나는 동료 교수님들을 마녀 사냥하듯 잡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모든 교수님이 바른 신학을 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p. 202, 아멘 아멘!)

‘관계의 고통을 통한 관계의 성숙’…인간관계의 성숙을 배우다.

“총신 교수로서 활동하던 14년을 회고해 보니 육체적인 고통보다는 주로 관계적인 고통을 많이 당했던 것 같다. 사람들에게 이용 협박 오해 배신 시기 질투 미움 질타 등을 당하는 고통이 많았다. 직무와 관련해서는 확인하지 않아서 겪는 고통이 가장 뼈아팠다.” (p. 209)
“나는 옳지 않은 일이나 그룹에는 아무리 가까워도 서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게 되었다.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구가 되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된다는 것도 배웠다. (중략) 나는 아픔과 함께 대인관계의 많은 교훈을 배우면서 인간관계의 성숙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p. 210, 서평자도 공기업과 대기업에서 15년 근무하며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경험하였다)
“번역과 집필도 많이 할 수 있게 하셨다. 신학의 균형을 잡고, 정통을 지키게 하셨다. 정통을 지킬 때는 확실하게 드러나서 모든 목회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노출된 문제가 아니면, 공개적으로 다루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도 받게 하셨다.” (p. 210)

2. 대구, 동신교회에서 목회 생활: ‘그리스도 안에서의 감격과 감사와 환희의 단계’

“나는 신학교 1학년 때 김명혁 교수님의 강의를 통해 신학의 균형감각을 배웠고, 후에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와 목회를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신학적 균형 감각을 가지고 옥한흠 목사님의 훈련목회를 기본으로 삼고 목회를 전개하면 일단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회의 신학적 균형 중,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과 성령의 균형이다.” (p. 216, 이런 ‘균형’이 진정한 제자도 길이며 배움의 기초라고 서평자도 100% 동의한다)
“성경과 성령을 함께 강조하면서 목회에 있어서 성경과 성령의 두 기둥을 제대로 세운다는 차원에서 나는 나의 목회의 기저에 BEST를 단단히 다져야 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BEST의 B는 성경(Bible), E는 강해(Exposition), S는 성령(Spirit), T는 변화(Transformation)라는 뜻으로, BEST는 성경을 풀어서 성령으로 변화시킨다는 뜻이다.” (p. 218)
“성경과 성령의 두 기둥을 바로 세우는 작업을 구체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나는 주일과 수요일에는 설교와 순장교육을 통해 이 작업을 한다. 성경을 설교하고 가르칠 때도 물론 항상 “능력과 성경과 큰 확신”으로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p. 218)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생명사역’: 생명사역(컨퍼런스)는 계속 되어야 한다.

“내가 체험한 것은 목회현장에 고난이 있었으나 고난보다 은혜가 더 컸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천국복음으로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사역을 하실 때에 고생하며 유리하는 사람들을 보시고 멸시하거나 대적하신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셨다.” (p. 223)

권 목사는 ‘예수님의 3대 사역,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치료하셨다’(마4:23)는 것을 보다 쉽게 이해하고 기억하도록 천국복음으로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사역’이라는 용어로 바꾸었다.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처럼 고생하며 유리하는 사람들을 보시며 민망히 여기셨다(마9:36) 주님의 자비와 긍휼의 측은지심! 모든 선교사(목회자/교수)사역자들의 마음이다.
서평자는 이즘에 큰 나무 십자가를 들고 거리(노방)전도를 하면서 예수님의 이 측은지심, 민망히 여기는 마음이 느껴져서 눈물이 저절로 줄줄 흐르는 것을 거의 매일 체험하고 있다.

“천국복음으로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친다’는 사역을 나는 생명사역으로 부르고 싶다. 목회자는 생명사역자다. 예수님이 목회자에게 맡기신 사역은 천국복음으로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생명사역이다. 목회자가 생명사역을 제쳐 두고 다른 일에 몰두하면 목회에 실패한다.” (p. 225, 선교현장의 선교사도 이 ‘생명사역’에 올인하여야 한다)
선교사역 또한 그 본질은 생명사역이다. 생명사역을 제쳐 두고 교회당 건축 등 프로젝트 몰두한다면 결국 실패한 선교사가 될 것이다. 대개 목회와 선교현장에서 행사위주 사역에만 동분서주(東奔西走)하는 목사/선교사!!. 바쁜 선교사·목사는 나쁜 목사·선교사이다.

‘선교하면 복 받는다’ - 부분적 신화일 뿐이다.
대구 동신교회 교회 설립할 때부터 선교하는 교회로 유명하였다. 교회의 사역 중에 선교가 지나치게 비대하고 다른 부분이 약하다는 사실을 권 목사는 간파하였다. 그래서 그는 선교(전도), 예배, 교제, 훈련, 봉사(사역) 등 교회의 5대 사역을 제시하며 ‘5대 생명사역’이 균형을 잡도록 하였다.
“요즈음 교계의 유행어 중에 “선교하면 복 받는다.” 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유행어가 부분적으로는 진리라고 생각하지만, 부분적으로는 신화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역과 조화와 균형을 이루면서 바른 동기와 바른 자세로 선교하는 교회가 복 받는 것은 사실적 진리다. 다른 사역을 거의 무시하면서 선교에 편중하되 다른 교회들과 선교 실적을 경쟁하듯이, 선교를 많이 했다는 자부심과 자만심을 키우면서 선교하는 교회가 복 받는다는 것은 허구적 신화다. 초대형교회가 “금년에는 단기 선교사 3,000명을 파송했다”를 경쟁하고 홍보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풍조이다.” (pp. 227-28, 솔직히 이런 ‘실적선교/경쟁선교’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 나가기(결론)
결론은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생명사역’은 계속되어야 한다.

“나는 처음부터 4대 후손을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자녀와 후손교육을 성경적으로 강조했다. 자녀들을 21세기 지구촌의 지도자들로 키우자는 목회 방침에 따라, 지금 자녀들을 국제적인 인물로 키우는 가장도 상당수 있다. 나는 금요일 기도폭풍집회에서 이런 기도를 자주한다. “복음으로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생명사역을 하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노력하게 해 주시옵소서. 나와 가족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으로 일하게 해 주시옵소서.” (pp. 252-53, 아멘 아멘)

“하나님은 항상 신실하시다. 하나님은 항상 선하시다. 하나님은 항상 전지하시고, 전능하시다. 사람들은 고통을 당할 때는 하나님이 야속하고, 잔혹하신 것으로 착각한다. 나는 고통 중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수용하지 못해서 하나님과 싸웠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으로 계신 것이 편하다. 나는 몰라도 하나님은 아신다. 나는 표면만 보지만, 하나님은 이면까지 보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연단하셔서 하나님의 때에 최상의 작품을 만들어 내신다.” (p. 261-62, 저자의 이런 신앙고백은 서평자의 진솔한 신앙고백이다)

‘독수리 5형제’(목사·박사·교수): 권성묵/권성수/권성호/권성대/권성달
“하나님은 나를 변화시키셨을 뿐 아니라, 우리 다섯 형제를 다 변화시키셨다. 우리 아버지께서 그렇게 가난하게 목회하시면서도 아들 다섯을 다 목회자로 바치겠다고 서원하시고 꾸준하게 기도하신 것이 이제는 모두 응답이 되었다. (중략) 하나님은 또 우리 오 형제 모두를 박사로 만들어 주셨다. 셋은 이론 박사이고, 둘은 실천 박사이다. 숙대 옆 청암교회에서 목회하는 형님 권성묵 목사님은 전도를 전공한 총신-리폼드 목회학 박사이다. 평내교회에서 목회하는 셋째 권성호 목사는 교육을 전공한 총신-리폼드 목회학 박사이다. 안양 늘사랑교회에서 목회하는 넷째 권성대 목사는 아테네 국립대학 헬라어 박사이다. 다섯째 권성달 목사는 예루살렘 히브리대학 히브리어 박사이다. 나는 둘째로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성경해석학 박사이다.” (pp. 262-63)

◈ 서평 후기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제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대상29:12)

다윗의 이 고백은 권성수 목사님 인생의 힘든 고비 때마다 붙든 말씀이다. 가난한 농부의 가정에서 장남으로 성장했던 서평자는 총신 신대원 1학년 때 권성수 교수님을 만났다. 체험신앙, 영성의 결이 권 목사님과 비슷한 서평자는 30여년 이상 사제지간 그 이상으로 가까이서 교제하고 있다. 이 서평을 끝까지 읽은 모든 독자들에게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이 말씀을 선물로 드리고 싶다. 권 목사님은 22년간(2001-2022) ‘생명사역’ 목회철학으로 10배 이상 교회를 부흥시켰다. “하나님이 앞서 인도하시고, 안고 인도하신 은혜”였다고 고별 설교하였다. 은퇴이후 그는 웨스트민스터신학교, 백석대학교 등에서 강의·교수사역을 지금도 역동적으로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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