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눅 16:1-13절에 나오는 ‘불의한 청지기’로 알려진 본문을 묵상하며 성경 공부 교재와 설교문을 만들고 있다. 오늘 새벽 일찍 일어나 다시 묵상을 해보았다. 어제까지 더는 본문에서 캐낼 보화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깊이 파헤쳤다. 하지만 오늘 다시 파헤쳐 보니 미처 캐내지 못한 보화가 더 숨어 있음을 발견한다. 역시 성경은 파고 또 파고 묵상하고 또 묵상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 파헤치면 파헤치는 만큼 보상을 해주는 책이 성경이다. 물론 잘 파헤쳐야 한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는 신약 성경 내용 가운데 최대의 난제에 해당하는 본문이다. 모르면 난제고, 알면 난제가 아니다. 이 본문이 어려운 이유를 ‘주인의 재물을 자신의 것처럼 맘대로 써버린 것도 모자라 자기에게 빚진 자들의 빚을 주인 몰래 자기 맘대로 탕감해 준 죄를 저지른 악한 청지기를 주인이 지혜롭다고 칭찬했다’라는 점으로 들고 있다.
이처럼 이중으로 주인의 재산을 손해 보인 청지기에게는 감옥행이 마땅한 것 아닌가? 그럼에도 예수님은 본문의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를 지혜롭다고 칭찬하는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들려주시면서, 어째서 너희는 그 불의한 세상 청지기보다 더 지혜롭지 못하냐고 책망하셨냐는 것이다.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학자들이 몇 가지 견해를 밝힌 바가 있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다.
첫째는, 주인이 고리대금업자여서 빚진 자들에게 원망을 사고 있는 것을 청지기가 빚을 탕감해 줌으로써 주인을 관대한 사람으로 비치도록 했다는 해석이 있다. 하지만 이 해석은 본문의 내용으로 볼 때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청지기의 탕감이 주인의 이미지를 좋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청지기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그리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청지기가 주인이 아닌 자기가 받아야 할 수수료를 깎아주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이 또한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인이 그를 ‘옳지 않은’ 청지기라고 묘사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주인이 그를 칭찬한 것은 그의 ‘도덕적 불의’가 아니라 ‘미래를 재빠르게 준비한 지혜’였음을 알아야 한다. 저자의 의도를 모르면 딴 소리를 하게 되는 법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난제가 등장한다. 그것은 9a절에 나오는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구절이다. ‘불의한 재물’은 무슨 뜻이고, ‘친구를 사귀라’는 무슨 의미일까?
관찰력을 가지고 보면 본문에 정답이 여러 개 등장함을 알 수 있다. 8-12절 사이에 보면 “‘언젠가는 없어질’, ‘지극히 작은’, ‘남의’ 것”이란 내용이 나온다. 이게 '불의한'의 유사어이다.
한 마디로, ‘불의한 재물’은 재물 자체가 불의하거나 악하다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내게 있지만 언젠가 내가 세상을 떠나는 날엔 함께 사라질 유한한 것들’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친구를 사귀라’는 무슨 뜻일까? ‘그 유한한 것들을 가지고 주위의 가난하고 헐벗은 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천국 백성으로 삼으라’라는 말이다. 이 땅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물은 세상을 떠날 때 갖고 갈 수 없다. 하지만 땅의 것으로 영원한 처소인 천국 은행에 저축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 그런 방법이 있기만 하다면 누가 그것을 활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우리가 가진 물질이나 건강이나 생명이나 시간을 잘 활용해서 필요한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마 6:20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마 6:19-20).
은행에 강도가 들어서 고객들이 저축한 모든 돈을 다 강탈해 가는 경우가 종종 뉴스에 나온다. 하지만 천국에는 그런 강도나 도둑이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안전하고 영구히 저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이 땅에서 우리가 가진 것으로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는 것이다.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라고 9b절이 말씀한다. 이 또한 어려운 내용 중 하나다. 여기서 “그들이”는 “이 땅에서 우리가 도와줘서 친구 삼은 이들”을 말한다.
우리가 이 땅에서 재물을 사용해 복음을 전하고, 섬기고 가난한 자를 도울 때, 그 사랑의 열매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게 된 이들이 언젠가 영원한 나라에서 우리를 맞이하고 환영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라는 것이다.
이 본문으로 만든 내 설교의 제목은 ‘의로운 청지기의 삶’이다. 이런 제목으로 설교하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가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라는 제목을 붙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은 불의한 세상 청지기도 자기가 쫓겨난 이후 미래의 삶을 지혜롭게 재빠르게 준비하는데, 의로운 당신의 제자들은 그보다 더 지혜롭고 재빠르게 영원한 미래를 준비해야 하지 않느냐고 책망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때문에 오늘의 청중들에게 적용할 때는 ‘의로운 청지기의 삶’이라는 제목이 붙어야 정상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이 주는 원포인트의 핵심 메시지는 무엇일까? 이는 매일 매 순간 우리가 기억하고 살아야 할 내용이다.
“재물은 하나님께 맡겨진 청지기적 도구일 뿐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통해 영원을 준비해야 하고, 결국 하나님과 재물 중 누구를 주인으로 섬길지 선택해야 한다.” 아멘!
#신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