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권재판소(ECHR)가 법정과 기타 공공건물 내 종교적 상징물의 게시 허용 여부를 가를 수 있는 사건을 심리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법정에 설치된 기독교 성상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그리스 무신론자들의 청원에서 비롯됐다.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에 따르면, 문제의 소송은 2018년과 2019년 그리스 최고행정법원에서 열린 두 차례의 재판과 관련돼 있다.
신청인들은 법정에 설치된 그리스정교회 예수 그리스도 성상이 유럽인권협약 제6조(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제9조(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철거를 요청했다고 국제 법률 옹호 단체 자유수호연맹(ADF) 인터내셔널이 전했다.
그러나 그리스 법원은 두 사건 모두에서 해당 요청을 기각하고 종교적 상징물의 존치를 허용했다. 유럽인권재판소가 공개한 사건 개요에 따르면, 법원은 성상 게시가 재판의 공정성을 해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2018년 사건은 종교 교육과 관련된 장관 결정에 대해 무신론자 연합이 제기한 소송이었다. 이 단체는 같은 해 9월 21일 열린 심리에서 그리스정교회 등 정교회 측이 참가한 상황에서 법정에 성상이 설치된 점이 법원의 객관성을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2019년 10월 11일, 성상 철거 요청은 부적법하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 번째 사건은 2019년 5월 심리된 사안으로, 학교 문서에 종교 소속을 기재하는 것에 반대한 두 명의 개인이 제기했다. 이들 역시 법정 내 성상 철거를 요구했으나, 법원은 장관 명령 자체는 취소하면서도 성상 관련 주장은 근거가 없다며 기각했다. 법원은 그 근거로 그리스 정교회 전통과 오랜 관행을 들었다.
신청인들은 이러한 판단이 비종교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법원이 요구되는 중립성을 지키지 못했고 사법 공간에서 종교 상징을 허용할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유럽평의회 회원국 다수는 법정 내 종교적 상징물 게시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유럽인권재판소는 그리스 정부에 세 가지 쟁점에 대한 공식 입장을 요구했다. 종교적 상징물의 존재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했는지, 종교의 자유를 제한했는지, 그리고 유럽인권협약 제14조가 규정한 차별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ADF 인터내셔널은 그리스 정부를 지지하는 제3자 의견서를 제출했다. ADF는 종교적 상징물 제거 요구가 인권법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 근거하고 있으며, 유럽인권재판소는 일관되게 국가가 공적 공간에서 문화적·종교적 유산을 반영할 권리를 인정해 왔다고 주장했다.
ADF 수석 법률고문 아디나 포르타루는 “공공장소에 종교적 상징을 전시하는 것은 인권법과 전혀 양립 불가능하지 않다”며 “다원주의를 이유로 십자가나 성상, 기타 종교적·문화적·역사적 의미를 지닌 상징을 제거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ADF는 의견서에서 종교적 이미지로 인해 불쾌감을 느끼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단순한 상징물 자체가 신념의 자유나 재판의 공정성을 침해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한 2011년 ‘라우치 대 이탈리아’ 판결을 언급하며, 교실 내 십자가 설치가 인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된 바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ADF는 유럽 각국에서 종교적 상징물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며, 이탈리아 국가기관의 십자가,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의 법원 건물 내 종교 미술품, 바이에른 주 정부 청사의 십자가 등을 사례로 들었다. 프랑스 역시 문화적·역사적 가치가 있는 경우 종교적 이미지를 허용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