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목사 ‘40억 요구 논란’ 속, 원로·후임 모범 사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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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형구 기자
hgroh@cdaily.co.kr
한경직·이재철·장상래 목사 사례 눈길
(왼쪽부터) 한경직·이재철·장상래 원로목사 모습. ©기독일보DB, 유튜브 캡쳐

최근 남포교회에서 불거진 박영선 원로목사의 ‘분립 개척 자금 40억 요구설’ 논란은 한국교회에 적잖은 충격을 던졌다. 은퇴 이후에도 원로목사가 교회 재정과 의사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의혹은, 원로목사와 후임목사 간 건강한 리더십 교체가 무너질 경우 교회 공동체가 얼마나 심각한 갈등에 빠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와 대비되듯, 한국교회에는 원로목사가 떠남으로써 교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 모범적 사례가 분명히 존재한다.

■ 한경직 목사 “마지막까지 돈의 종이 되지 않기 위해”

고(故) 한경직 목사는 1972년 영락교회 담임목사직 은퇴를 앞두고 교회 장로들로부터 노후를 위한 주택과 차량 제공을 여러 차례 제안받았지만, 끝내 이를 모두 사양했다. 서울에 거처와 이동 수단이 있었다면 더 많은 설교와 사역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권유에도 그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 목사는 결국 남한산성 인근으로 홀로 들어가 칩거하며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이는 사역의 의욕이나 능력이 쇠해졌기 때문이 아닌, “일만 악의 뿌리인 돈의 종이 되지 않겠다”는 신앙적 결단을 삶으로 증언한 선택으로 평가된다. 교회 재정과 목회자의 노후 보장이 결코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남긴 것이다.

■ 이재철 목사 “원로목사가 영행력 행사한다면, 그것은 주님의 교회 아냐”

한국기독교선교 100주년기념교회에서 13년간 사역을 마치고 2018년 11월 은퇴한 이재철 목사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다. 다수의 장로와 교인들이 연임을 간곡히 요청했지만, 그는 이를 거절하고 서울을 떠나 경상남도 거창으로 내려갔다. 그는 퇴임하던 당시 마지막 주일 설교에서 “여러분은 지금부터 이재철을 거침없이 버리셔야 한다...적당히가 아니라 철저하게 버리셔야 한다”며 “이재철을 크게 버리면 크게 버릴수록, 후임 공동 담임목사님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거침없이 내려주실 새로운 차원의 은혜를 더 크게 누리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당시 100주년기념교회의 신자 수는 1만 3000명에 육박했다.

이 목사는 은퇴 과정에서 대형 교회 담임목사들이 관행처럼 받는 수억, 많게는 수십억 원대의 전별금도 일절 받지 않았다. 이후 그는 경남 거창군 웅양면 산촌으로 거처를 옮겼다. 평당 10만 원가량의 땅을 구입해 컨테이너 주거까지 고려할 만큼 생활 여건을 최소화했다. 그러자 이 목사 부부의 건강을 염려한 100주년기념교회 신자 한 사람이 주택 설계를 도왔고, 시공 비용은 모두 부부가 부담했다. 이 과정에서 이 목사 부부는 대출을 받았고, 남은 대출금은 사모가 출판사에서 받은 급여로 상환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재철 목사는 지난 2023년 뉴저지갈보리교회 사경회에 초청돼 전한 설교에서 “원로목사가 교회를 떠나도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그것은 주님의 교회가 아니다. 목사의 교회인 것”이라며 “교회는 제도나 건물이 아니라 주님을 주인으로 삼은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이 목사의 행보는 신자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목회자를 우상화하는 신앙의 왜곡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는 교회 재정이 자신의 안락과 편의를 위해 사용되는 것을 철저히 경계했고, ‘복음을 위하여 자기를 비우는 길’을 택했다고 평가된다.

■ 장상래 목사 “여보, 후임 담임목사님 초청해 가정 심방 대접합시다”

최근 논란이 불거진 박영선 목사와 같은 예장합신 교단에 속한 장상래 원로목사 사례는 원로·후임 목사 관계의 교과서로 꼽힌다. 장 목사는 2017년 은평교회 담임직 은퇴와 동시에 영향력을 내려놓는 선택을 통해, 교회 공동체의 안정과 후임 담임목사의 자율적 목회를 가능하게 했다고 평가된다. 장 목사는 은퇴 직후 서울을 떠나 충주로 거처를 옮겼다. 이후 약 2년간 본 교회에 일절 출석하지 않았다. 교회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결정이 아닌, 젊은 후임 담임목사가 원로목사의 존재로 인해 느낄 수 있는 심리적·구조적 부담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은퇴를 앞두고 장 목사는 사모와 함께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분명한 원칙을 세웠다. 교회나 당회에 어떤 형태의 요구도 하지 않으며, 은퇴 후 생활 전반에 대해서도 당회의 결정을 전적으로 따르기로 한 것. 장 목사는 사모에게 “당회에 대우나 조건을 요구하지 말고, 혹여 부족하더라도 그 상태를 받아들이자”며 “모든 것이 다하면 하나님 나라에 먼저 가면 된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사모 역시 이에 동의했다.

이 같은 원칙은 은퇴 이후에도 그대로 지켜졌다. 장 목사는 교회 재정이나 운영에 관해 어떤 의견도 개진하지 않았고, 교회의 요청이 있을 때에만 절기 설교를 맡는 정도로 관계를 유지했다. 교회 내 의사 결정과 목회 방향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후임 담임목사의 권한임을 분명히 했다.

장상래 목사 은퇴 이후 2년이 지났을 때, 후임 박지현 담임목사가 원로목사 부부에게 식사 자리를 제안한 일이 있었다. 이때 장 목사는 외부 식당이 아닌 자택을 만남의 장소로 제안했다. 사모와의 상의 끝에, 후임 담임목사를 자신의 집으로 초청해 직접 식사를 대접하기로 한 것이다. 장 목사는 아내에게 “여보, 여태껏 우리가 교우들 집에 심방 가서 늘 대접만 받지 않았소. 그러니 이제는, 우리가 후임 담임목사님이 우리 집에 심방을 오시게 해서 우리가 한번 대접하도록 합시다”라며 “이제 박지현 목사님이 우리 부부의 담임목사”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일화는 지난해 초 예장합신 동서울노회가 주최해 목사와 장로 20~30명이 참석한 공식 모임에서 장 목사 본인이 직접 소개한 내용이다. 당시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말이 아닌 삶으로 후임을 세운 보기 드문 사례” “권한 이양 이후 원로목사의 태도에 따라 교회의 평안과 갈등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 시간이었다” 등의 소감도 나오기도 했다.

■ “교회 살리는 리더십, 떠날 줄 아는 결단서 비롯돼”

한 교계 관계자는 “앞선 사례들은 원로목사가 교회 안에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후임에게는 압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깊이 고려한 선택”이라며 “원로목사의 역할은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있지 않고, 후임이 온전히 설 수 있도록 공간을 비워주는 데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줬다”고 했다.

이어 “원로목사는 사라짐으로 교회를 살렸고, 후임목사는 존중 속에서 온전히 리더십을 세울 수 있었다”며 “이는 원로목사가 교회를 ‘자기 성취의 연장선’이 아닌 ‘하나님의 공동체’로 이해할 때 가능한 선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장상래 목사의 사례는 원로목사와 후임목사 간 권한 이양이 단순한 제도나 절차로 완성되지 않음을 시사한다. 결국 교회를 살리는 리더십은 자리를 지키는 힘이 아니라, 떠날 줄 아는 결단에서 비롯된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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