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태극기’ 대신 ‘인공기’, 차마 목사의 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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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개혁을 부르짖어온 원로급 목사가 교회에 ‘태극기’ 대신 북한 ‘인공기’(人共旗)를 달라고 주장해 교계가 온통 시끄럽다. 지난달 24일 고신 미래교회포럼의 발제자로 강단에 선 오세택 목사가 일부 교회 강단에 ‘태극기’를 붙이는 걸 비판하며 한 말인데 진의가 무엇이건 간에 부적절한 표현이란 비판이 쏟아졌다.

해당 발언은 ‘설교와 정치참여: 손현보 목사 설교 논쟁과 관련하여’를 주제로 한 포럼 석상에서 나왔다. 발제자인 오세택 목사는 사랑의교회 강단에 ‘태극기’가 내걸린 걸 언급하며 “개혁주의 입장에서 교단 정신으로 보면 그게 정당한가? 민족주의인가, 국수주의인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하나님 나라는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것이다. 모든 지상의 국가를 섬기고 복음을 전하고 구원한다는 의미에서, (국기를) 달려면 만국기를 붙여야 할 것 아닌가?”라고 반문한 뒤 “하나님 나라를 지향한다는 상징으로 붙일 한 국가 깃발이 있다. 붙이려면 북한 ‘인공기’를 붙여야 한다”라고 했다.

교회 강단에 북한의 국기인 ‘인공기’를 붙이라는 취지의 발언에 현장에선 반발과 항의가 이어졌다. 하지만 오 목사는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고, 제발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며 “사상과 이념을 넘어 사회주의·공산주의·자본주의·민주주의를 넘어 우주적 관점으로 사랑하자는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라고 일축했다.

오 목사가 주장하는 논점은 기독교가 사상과 이념을 넘어서야 한다는 데 강조점이 있어 보인다. 그걸 “사회주의·공산주의·자본주의·민주주의를 넘어 우주적 관점으로 이해해야 한다”라고 표현했을 거다. “복음은 좌우를 넘어, 위에서 내려다봐야 한다”고 말한 것도 그런 차원으로 이해하고 싶다.

하지만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기독교적 관점에서 가슴으로 포용하는 건 엄연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오 목사는 이걸 “하나님의 나라는 민족을 초월한다”라고 포장하고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에 내포된 초월성은 그런 개념이 아니다. 악을 선으로 위장하는 초월이 아니라 악과 선을 분명히 구분하는 의미의 초월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 목사가 교회에 ‘태극기’를 단 걸 문제 삼으며 다른 선택으로 북한 ‘인공기’를 언급한 것 자체가 복음적이지 않다. 인공기는 북한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깃발이고 그건 곧 반(反) 기독교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언론회는 오 목사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언론회는 최근 논평에서 “공산주의는 철저하게 무신론 유물론 계급 투쟁, 하나님 대신 인간을 신(神)으로 만드는 이념적 종교”라며 “왜 하필, 이 지구상에서 공산주의 가운데에서도 가장 악독한 조선민주주의공화국의 깃발을 교회에 매달아야 하나. 이런 발상과 표현을 한 목회자가 ‘하나님의 종’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라고 했다.

고신애국지도자연합 소속의 고영길 목사도 코람데오닷컴에 쓴 기고문에서 오 목사의 인공기 발언을 “단순한 비유의 실패가 아니라, 신학·역사·국가관·개혁주의 전통을 통째로 왜곡한 심각한 수준의 사상적 반역”이라고 지적했다. 고 목사는 “어떻게 목사가 태극기는 ‘우상숭배’라고 보고 인공기를 ‘하나님 나라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며 “이는 민족주의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한 것”이라고 힐난했다. 오 목사는 예장 고신측 두레교회에서 25년간 시무하고 지난 2022년 조기 은퇴한 후 현재는 원주 가나안농군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또 교회개혁실천연대,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하는 등 교계에선 개혁적인 인사로 알려져 있다.

오 목사의 인공기 발언 이후 교계에 비판이 쏟아지자 한 좌편향 매체가 거들고 나선 걸 보면 그의 정치적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매체가 ‘(오 목사가) 보수 개신교 진영으로부터 융단 폭격을 받고 있다’. ‘발언 취지는 외면한 채 특정 문장만 부각해 공격하는 의도적 프레임 씌우기’라며 오 목사 엄호에 나선 건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그 배경에 이념·정치 진영 간 대결로 끌고 가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이건 이념의 문제도, 진영의 문제도 아니다. 더구나 내편 네편의 문제로 비치게 하는 건 문제의 본질을 흐리려는 거다. 목사가 ’태극기‘는 ‘우상숭배’라고 하면서 ‘인공기’를 ‘하나님 나라의 상징’이라고 주장하는 걸 단순히 진영·이념의 문제로 정리할 순 없다. 평생을, 그것도 한국교회 교단 가운데 보수 중 보수라는 고신 교단에서 목회한 사람이 인민의 자유를 박탈하고 노예로 부리는 최악의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깃발을 교회에 걸라고 말하는 건 하나님 말씀에 대한 자기 부정이자 심대한 왜곡이다.

교회에 ‘태극기’를 거는 것에 대해선 얼마든지 비판적인 시각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 나라를 ‘국가주의’라는 틀 안에 가두는 거라며 그걸 치워야 한다고 말했다면 교계 안에서도 동의하는 이들이 많았을 거다.

문제는 ‘태극기’를 ‘인공기’로 대체하라는 데 있다. 이건 좌우를 초월하자는 개념이 아니라 공산주의를 대놓고 고무 찬양하라고 등 떠미는 거나 다름없다.

목사의 발언은 깃털처럼 가벼워선 안 된다. 오 목사의 인공기 발언이 깃털처럼 가볍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관념을 지배하는 무언가가 그를 돌덩이처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것이 기독교는 민족주의, 국수주의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에 시달리게 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최종 결론이 인공기도, 북한식 공산주의여서도 안 된다. 목사라면 하나님의 나라에서 국수주의를 쫓아내고 대신 공산주의를 들어 앉히라는 투의 요설을 가벼운 농담조든 진담이든 절대로 입 밖에 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