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등이 제22대 국회에 발의한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생활동반자법)’에 반대하는 국민청원이 30일 안에 5만 명의 동의를 얻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이 법안에 반대하는 국민청원이 국회 법사위 상임위원회에 정식으로 회부됐다는 건 해당 법안 처리에 일단 제동이 걸렸다는 뜻이다.
‘생활동반자법’에 반대하는 국민청원이 제도적 요건을 갖춘 이상 국회 법사위 상임위는 회부된지 9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게 된다.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심의 결과를 본회의에 부의하거나 또는 폐기를 판단하게 될 것이다.
국민청원 5만명 동의는 제도상 청원이 성립했다는 의미일 뿐 그 자체로 법안의 제정이나 개정, 또는 행정조치가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번의 경우 ‘생활동반자법’ 발의에 반대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국회 법사위에 직접 전달됨으로써 해당 법안에 대한 신중한 처리 절차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교계는 ‘생활동반자법’에 반대하는 국민청원 동의가 5만 명을 돌파해 국회 법사위로 회부된 것에 고무된 모습이다. 동반연과 진평연 등 교계 단체들은 최근 국민청원 5만 돌파를 환영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생활동반자법안’ 철회를 재차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생활동반자법’이 혼인제도를 약화시키고 동성결합에 법적 지위를 부여하려는 위험한 시도라며 앞서 이 법을 도입한 서구사회에서 나타나는 폐해를 재차 지적했다. ‘생활동반자법’을 시행하는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는 가장 심각한 현상이 혼인율의 급격한 하락과 혼외 출산율, 가정 해체의 급증이다. 실제 이 법이 시행된 프랑스 등에선 평균 18개월 남짓 지속된 동거 관계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혼인 가정 출생아에 비해 육체적·정신적 학대, 우울증, 학교 중퇴 등의 위험이 4배 이상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충격을 안겨줬다.
지난 9월 3일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대표 발의한 ‘생활동반자법’은 혼인이나 혈연이 아닌 관계로 이뤄진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고 법적 보호를 받도록 한 게 골자다. 지난 21대 국회에 이어 2회기 연속 같은 법안을 대표 발의한 용 의원은 자신의 SNS에 “이재명 정부의 1호 가족정책은 생활동반자법 제정이어야 한다. 22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제정하자”라는 글을 올리며 연일 법안 통과를 위해 군불을 때고 있다.
‘생활동반자’법안 발의 취지는 우리 사회에서 가족의 형태와 의미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니 현실에 걸맞은 새로운 가족 정책이 필요하다는 데 있다. 혼인 관계가 아닌 연인, 친구, 동료 관계도 새로운 가족 범주에 넣어 법적으로 보호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용 의원을 비롯, 법 제정에 찬성하는 측은 혼인 관계 만을 보호하는 현행의 법이 사각지대를 방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혼인이 아닌 가족도 가족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인데 문제는 이런 시도가 전통적인 가족관계뿐 아니라 헌법이 정한 가족의 개념을 무너뜨릴 매우 위험한 발상이란 거다.
현행 법제는 이미 사실혼 제도를 통해 혼인에 준하는 보호를 제공하고 있다. 이밖에 1인 가구·한부모가족·입양가족 등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해서도 개별 법률에 따라 충분한 지원이 이루어지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혼인 관계 외에 모든 가족관계를 보호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하는 건 현실과 큰 괴리감이 있다.
‘생활동반자법’은 성년인 두 사람이 상호 합의에 따라 생활을 공유하고 서로 돌보는 관계를 ‘생활동반자 관계’로 규정하고, 혼인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법이다. 생활동반자 관계 역시 기존의 가족관계와 같이 사회 전 영역에서 법적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민법을 비롯하여 총 25개의 법을 개정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교계가 반대 목소리를 내는 건 다름 아닌 법안에 담긴 숨은 의도 때문이다. ‘성년인 두 사람이 상호 합의에 따라 생활을 공유하고 서로 돌보는 관계를 ‘생활동반자 관계’로 규정하고, 혼인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한다’는 건데 사실상 동성 간의 결합을 법적으로 인정하겠다는 거나 다름없다. 겉으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떠들지만 실은 동성 간의 결합을 제도화하려는 위장 입법의 냄새가 짙게 풍긴다는 게 교계의 시각이다.
현행 법은 모든 ‘생활동반자 관계’를 사실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사실혼은 혼인이 아닌 남녀 부부를 대상으로 하지만 ‘생활동반자’는 남녀뿐 아니라 남남 또는 여여 등 동성 관계도 포함되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헌법과 충돌한다.
이 법안이 지난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후 법사위에서 폐기된 건 헌법에 저촉될 뿐 아니라 혼인률 감소와 가족해체 등 갖가지 사회문제가 발생할 것이란 국민적 우려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이 법안과 가장 유사한 프랑스의 PACS의 경우 법적 권리는 혼인과 유사하면서 계약 및 계약의 해지에 드는 비용이 혼인보다 훨씬 저렴해 이성 커플 사이에서 대중적인 제도로 자리잡았으나 결과적으로 혼인제도 자체를 붕괴시킨 요인이란 비판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도 22대에 와서 재차 같은 법안을 대표 발의한 용 의원은 최근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특정한 가족만을 가족으로 인정하고 ‘건강 가정’이라는 틀에 맞춰 가족의 역할을 규정하고 있는 현재의 낡은 법과 제도는 많은 국민과 가족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며 ‘생활동반자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가 토론회에서 거론한 ‘특정한 가족’이란 혼인 가정을 지칭한다. 그 혼인 가정을 인정하는 법까지 낡은 법과 제도라는 게 용 의원의 주장이다. 그렇게 말하는 자신은 혼인이 아닌 어떤 관계에서 태어난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혼인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성장해 결혼해 자녀를 낳고 국회의원까지 된 분이 본인의 태생조차 부정하는 듯한 논리로 어떻게 헌법과 국민 대다수와 싸워 이기려는 건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