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투자에 과도하게 의존한 경기 부양은 일시적인 성장 효과에 그치고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은행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중국의 부동산 침체를 사례로 들며, 우리나라 역시 같은 길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한국은행은 26일 ‘일본과 중국의 건설투자 장기부진의 경험과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최근 4년 연속 역성장을 기록 중인 국내 건설투자 상황을 일본과 중국의 사례와 비교해 평가했다. 보고서는 한은 조사국 김보희 차장을 비롯해 이준호·선진산 과장, 안선균·이상헌·유건후·안지민 조사역이 공동 집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1980년대 후반 버블경제 시기에 건설투자가 급증한 뒤, 버블 붕괴 이후에도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건설투자를 지속했다. 하지만 그 결과 정부와 가계의 부채가 급격히 늘었고, 재정 악화와 소비 위축으로 인해 경기 부진이 장기화됐다. 일본의 경우 단기 부양 효과가 끝난 뒤 남은 것은 부채와 구조적 불황이었다는 평가다.
중국도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시행하며 건설투자를 급격히 늘렸고, 2016년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건설투자 비중이 33%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2020년부터 부동산 과열을 억제하기 위해 규제를 강화하고 디레버리징(부채 축소) 정책을 추진하면서 부동산 경기가 급속히 식었다. 그 여파로 건설 경기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두 나라의 경험에서 보듯, 건설 중심의 경기 부양은 단기적으로 성장률을 높이는 효과가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부채 누적과 소비 위축을 초래해 경기 회복력을 떨어뜨린다”고 분석했다. 특히 건설 자산은 수명이 길어 공급 과잉이 발생하면 조정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의 GDP 대비 건설투자 비중은 고점에서 저점까지 평균 27.2년의 조정 기간을 거쳤다. 고점의 평균은 18.3%, 저점은 8.3%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1991년 21.8%로 정점을 찍은 후 2012년 13.9%까지 하락했지만, 이후 다시 반등했다. 조정 기간은 21년으로 OECD 평균보다 짧았으며, 하락 폭도 7.9%포인트에 그쳤다.
반면 일본은 1980년 건설투자 비중이 22.1%였으나, 이후 30년 동안 지속적으로 하락해 2010년에는 10.2%로 떨어졌다. 한은은 이 점을 근거로 우리나라의 건설투자 비중도 향후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김보희 한은 조사국 차장은 “우리나라의 건설투자 비중이 앞으로 더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며 “경제가 성숙 단계에 접어들고 인구 고령화로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단기적 부양 목적의 건설투자보다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강화하는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경기 대응 수단으로 건설투자에 과도하게 의존하기보다 인적 자본과 첨단 산업, 기술 혁신 기반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며 “일본처럼 부채 의존형 건설투자가 장기 침체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한국은행은 이번 보고서를 통해 “단기 경기 부양을 위한 건설투자는 구조적 취약성을 키울 수 있다”며 “향후 정책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목표로 균형 잡힌 투자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