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최근 미국산 대두(콩) 수입을 사실상 중단하면서 한미 간 통상 협상 테이블에 ‘대두 수입 확대’ 문제가 새롭게 부상했다. 미국은 과잉 생산된 대두의 판로 확보를 위해 한국에 수입 확대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우리 정부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분명히 선을 그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농민층의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 농산물 수출 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을 향한 통상 압박이 강화되는 가운데, 국내 두부업계의 원료난이 겹치며 ‘농산물 개방 압박을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가 정부의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전문가들은 “한국 시장은 규모가 작아 미국의 실익은 거의 없으며, 이번 요구는 자국 농민층을 의식한 정치적 제스처에 가깝다”며 “국익 중심으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6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최근 한미 통상 협상에서 미국은 한국에 자국산 대두 수입 확대를 공식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성락 대통령실 안보실장은 지난 17일 브리핑에서 “농산물 중 새롭게 협상된 것은 없지만, 유일하게 들은 것은 대두”라고 밝혔다. 이는 미국이 후속 관세 협상 과정에서 ‘콩 시장 개방’을 새로운 협상 카드로 꺼내들었음을 의미한다.
미국이 대두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린 배경에는 중국의 수입 중단이 있다. 미중 갈등이 재점화되면서 중국은 지난 3월 미국산 대두 수입을 제한하는 강경 조치를 내놨다. 중국 정부는 미국 기업 3곳의 대두 수입 라이선스를 정지하고, 미국산 농축산물 전반에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매년 약 3,000만t을 수입하던 중국의 미국산 대두 물량이 사실상 ‘증발’하면서 미국 농가의 피해가 본격화됐다.
미국농민협회(AFP)에 따르면 올해 1~8월 중국으로 수출된 미국산 대두는 약 540만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700만t) 대비 80% 가까이 급감했다. 미국 내에서는 옥수수와 대두의 공급 과잉이 심화되는 가운데 농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으며, 일부 단체는 백악관에 직접 서한을 보내 대책 마련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국내 두부업계도 원료난에 직면해 있다. 올해 수입 콩 공급량은 27만t으로 전년(28만6,000t) 대비 5.6% 감소했다. 정부가 국산 콩 사용 확대를 추진하면서 수입 물량이 줄었지만, 국산 콩의 가격은 수입산보다 3~4배 비싸고 생산량도 기후 변수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현재 국내 두부의 약 80%가 수입 콩으로 생산되는 만큼, 수입 감소에 따른 원료난이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두부 제조업계 관계자는 “콩이 부족해 대두분이라도 확보하려는 업체들이 많다”며 “품질이 낮은 제품이 유통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부는 미국산 대두 수입 확대는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국산 콩이 남는 상황에서 값싼 수입콩을 더 들여올 이유가 없다”며 “미국산 콩 수입은 예산 부담만 키우고 실익이 없다”고 말했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도 지난 22일 MBN ‘프레스룸 라이브’에서 “미국산 대두 수입 카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쌀 대신 콩 재배가 늘어나고 있고, 현재는 오히려 국산 콩이 남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미국이 콩 수입 확대를 요구할 경우 수용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그런 논의는 전혀 없다”며 “농업의 민감성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향후 미국산 대두 수입이 협상 카드로 부상하더라도, 전체 수입 규모를 늘리지 않고 기존 수입쿼터(TRQ) 내에서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는 미국산 비중을 소폭 늘리더라도 다른 국가 물량을 줄여 국산 콩 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뜻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총량을 늘리면 국산 콩 소비가 위축되고 정부의 비축 부담이 커진다”며 “협상 과정에서 미국산 비중을 일부 조정하더라도 국산 산업에 피해가 없도록 관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을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농민층을 달래기 위한 정치적 행보”로 분석하며, 한국이 실익 없는 농산물 개방 압력에 휘둘려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이 미국산 대두 수입을 확대해도 실질적 효과는 미미하다”며 “이는 미국의 정치적 상징 조치에 불과하며, 문제의 본질은 중국의 수입 재개 여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