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당시 정부는 공공 시스템은 실시간 백업 체계를 갖춰 “3시간 이내 복구가 가능하다”고 강조했었다. 그러나 지난 26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대전 본원에서 발생한 배터리 화재로 647개 정부 전산 시스템이 중단되면서 이 같은 장담은 무너졌다. 나흘이 지난 현재까지도 주요 서비스는 정상화되지 못한 상태다.
이번 사고는 데이터센터 배터리실의 안전 설계와 관리 부재, 실시간 백업 및 이중화 미흡 등 3년 전 카카오 ‘먹통 사태’ 때 지적됐던 문제들이 반복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자원 측은 카카오 사태 이후 리튬이온 배터리를 서버와 분리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정부는 피해를 입은 96개 시스템을 제외한 나머지 551개 서비스를 순차 복구 중이라고 밝혔지만, 정부24, 국민신문고, 인터넷우체국, 마이데이터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된 서비스는 여전히 마비 상태다. 이는 2022년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톡, 카카오택시, 카카오맵 등이 중단됐던 상황과 닮아 있다.
특히 이번 사고는 공공 IT 자원의 재해복구(DR) 체계가 민간보다 안전하다는 정부의 주장을 뒤집었다. 국정자원에는 서버 DR만 존재했을 뿐, 민간 기업들에 강조했던 클라우드 DR은 마련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대체 데이터센터를 통한 신속한 서비스 전환이 불가능했다.
정부는 대전·광주·대구 3개 센터 간 DR 체계가 있긴 하지만 규모가 작고 일부만 백업 수준에 그쳐 ‘3시간 복구’는 애초에 불가능했다고 시인했다. 이는 민간 기업에 강력한 재난대응 의무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정부는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지 않았다는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2022년 카카오 사태 당시 정부는 네이버, 카카오 등 민간 부가통신사업자에까지 통신 재난 대응 의무를 확대했지만, 정부 시스템은 예산 부족과 부처 간 이해관계로 이중화 작업이 늦어졌다. 카카오가 사고 직후 삼중화 DR 체계 구축을 발표하며 신뢰 회복에 나선 것과는 대조적이다.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부가 넷플릭스, 쿠팡플레이 등 국민 안전과 직접 연관이 낮은 기업에까지 재난관리 의무를 부과하면서 공공기관은 예외로 둔 것은 내로남불”이라고 지적했다. 염흥열 순천향대 명예교수 역시 “카카오 사태의 교훈은 이중화였는데, 정부도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며 “방향은 맞지만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는 공공 IT 인프라가 여전히 취약한 사각지대에 있음을 드러냈으며, 정부의 재난 대응 신뢰성에도 큰 의문을 남겼다. 앞으로 이어질 복구 작업과 대책 마련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