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최근 행정 예고한 ‘종교지도자 양성 대학법인 지정 고시’ 개정안에 신학대학들이 명단에서 대거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교계는 이 개정안이 각 신학대가 가진 기독교 정체성 근간을 흔드는 사안이라며 비상 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28일 교육부가 행정 예고한 지정 고시 개정안에 따르면 기독교를 비롯해 각 종파의 종교지도자 양성 대학은 11곳에서 6곳으로, 대학원대학은 9곳에서 5곳으로 각각 줄어든다. 개정안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 전체 지정 학교법인은 21개에서 11개로 대폭 축소된다.
이번 개정안엔 장로회신학대학교, 총신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서울장신대학교, 영남신학대학교, 침례신학대학교, 한일장신대학교 등 주요 교단이 운영하는 신학대가 대거 제외 대상에 포함됐다. 대학원대학의 경우 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 순복음대학원대학교, 개신대학원대학교, 중앙신학대학원대학교 등이 제외 대상이다. 기존 신학대 중 제외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곳은 감리교신학대학교와 대전신학대학교 두 곳뿐이다.
교육부는 개정 이유에 대해 “2008년 최초 고시 이후 폐교나 학과 신설, 운영 목적 변경 등 현실적 변화를 반영한 조치”란 입장이다. ‘사립학교법’ 시행령에 따라 ‘순수 종교지도자 양성’ 목적을 가진 법인만 남기는 취지라는 설명이다.
현 시행령은 정관에 종교단체와의 관계 및 목적을 규정하고, 해당 단체의 의식·교육을 담당할 지도자 양성을 위해 설립된 경우만 종교지도자 양성 대학으로 지정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에 한국교육개발원(KEDI) 분류 기준에 의해 기독교교육학과, 교회음악학과, 사회복지학과 등 교육과정이 일반 계열로 분류된 학과가 있는 경우 이를 제외했다는 거다.
하지만 제외 대상에 포함된 신학대들은 교육부가 기독교교육학과와 교회음악학과를 사범계열·예체능계열로 분류해 ‘순수 종교지도자 양성’에서 배제한 것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종교교사 자격증을 수여하는 기독교교육학과나 예배 사역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교회음악학과 역시 교회 목회에 필수 분야인데도 이를 일반 학과로 분류해 제외한 것에 다른 의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종교지도자 양성 대학법인 지정 고시’는 지난 2008년 ‘사립학교법’ 개정 이후 당시 종교적 정체성을 가진 학교들의 특수성을 인정해 특정 종교 지도자 양성만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을 별도로 지정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 제도의 핵심은 사립학교법상 일반 대학 법인은 이사회 구성 시 일정 비율의 개방이사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규정한 것과 달리 ‘종교지도자 양성 대학법인’은 해당 종교단체가 개방이사 추천권 절반을 행사할 수 있도록 예외 규정을 뒀다.
당시 ‘개방이사’ 제도가 종교의 정체성을 훼손한다는 우려와 비판 여론에 교육부가 일종의 안전장치로 마련한 것이 바로 ‘종교지도자 양성 대학법인 지정 고시’라 할 수 있다. 그래놓고 이에 와서 신학대 등의 일부 학과를 지정 고시에서 제외하려는 건 이 안전장치마저 풀려는 의도가 뭐겠냐는 거다.
교계와 각 신학대는 이번 개정안이 일반 대학과 마찬가지로 ‘개방이사 제도’를 적용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하는 분위기다. 종교지도자 양성 대학으로 지정된 경우 개방이사 추천위원회에서 해당 종교단체(총회)가 이사의 절반을 추천할 수 있었으나 지정에서 제외되면 교단의 독립적인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게 된다.
하지만 교육부는 이러한 우려에 대해 해당 명단이 실제 행정이나 재정지원 판단에 사용된 적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이번 개정이 법적 효력을 현실에 맞게 정리하는 차원일 뿐 장학금, 학자금 대출, 재정지원 등도 이 명단과 무관해 신학계 일각에서 우려하는 불이익은 없을 것이란 입장이다.
교육부의 해명에도 교계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가장 걱정하는 건 이번 개정안이 정부가 종교 지도자 양성에 까지 직간접적인 개입을 확대하려는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미 여러 차례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교원 임용과 학내 운영 자율성이 약화된 상황에서 ‘개방이사’ 제도까지 현실화되면 각 신학대가 유지해 온 기독교 정체성 근간이 완전히 허물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번 교육부의 최종고시는 9월 5일까지 의견수렴을 가진 뒤 발령돼 공포 후 6개월이 지나 시행된다. 각 교단과 신학계는 이번 조치가 당장 재정 지원이나 운영 자격에 직접 영향을 주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종교사학의 정체성과 독립성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에 부심하는 모습이다.
교계는 정부가 여러 차례 ‘사립학교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사학의 건학이념과 자율성이 야금야금 침식당해 온 것이 사학의 건전한 발전에 저해요소로 작용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에 우려하는 것도 그나마 남은 자율성마저 해치지 않을까 해서다. 교육부는 행정 간섭이나 통제 차원이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으나 신학대의 정상적인 학과 운영을 문제 삼아 법인지정 고시에서 제외한다는 자체가 심각한 자율성 침해 행정이 될 소지가 있다.
예장 통합의 경우 교단 산하 7개 신학교 가운데 대전신학대만 남고 장로회신학대학 등 4개 신학대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따라서 9월 총회에서 뜨거운 논쟁이 불가피해 보인다. 문제가 된 신학대들은 사학법인미션네트워크, 한교총 등과 연대해 대책을 마련할 것으로 보이나 마땅한 대안이 마련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미국, 유럽의 명문 신학대들이 종교법인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발전해온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하물며 기독교 인구가 전체 인구의 1% 미만인 일본의 도쿄신학대학도 정부가 교단 중심의 운영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데 전체 국민의 4분의 1이 기독교인인 나라에서 교단이 운영하는 신학대마저 정부가 통제 아래 두려는 발상 자체가 국제적인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일침을 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