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새벽에 절친인 후배 목사한테서 전화가 와서 길게 통화한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일로 전화를 하다가 끊기 직전에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형님의 글을 가끔씩 읽어보는데, 너무도 탁월해서 도무지 흉내 내기가 힘이 들더라고요. 그것도 매일 하나씩 양질의 글을 올린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일인데,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그 글솜씨는 타고난 것인지요, 아니면 많은 독서량과 독서력의 결과인지요?”
별것 아닌 내 글에 감동을 받아서 던진 질문이었다. 둘 다를 갖추면 좋은 글을 쓰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되질 않겠냐고 답했다. 물론 아버지께서 국문학을 전공하셨고, 수필집을 여러 권 출간한 수필가란 얘기도 해주었다. 그랬더니 “그러면 그렇지!”라는 말을 했다. 아버지의 필력이 자식에게 유전되는 걸 부정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내 동생들이 다 글을 잘 쓰는 건 아니란 점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후천적으로 양서를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써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상상력’과 ‘창의력’이 독창적인 글 쓰기에 필수적이란 사실을 몸소 체험해 왔다. 의미심장한 짧은 문장이나 한 문장을 가지고도 몇 페이지가 넘는 글을 쉽게 써내려 가는 능력이 절실하다. 그래서 우선은 글의 소재가 될 만한 글감이 있어야 한다. 밑바탕이 될 만한 탁월한 한 문장이나 짧은 문장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황금같이 귀중한 내용들이 제 발로 자기에게 걸어오기를 기다리고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 불꽃 같은 눈으로 여기저기 사방을 찾고 또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많은 책들을 읽어야 하고, SNS 상에 올라오는 좋은 글귀들을 포착하기 위해 계속 찾아 헤매야 한다. 어렵사리 발견한 문장 하나가 눈에 들어오면 평생 가슴에 착 달라붙어서 계속 영향을 끼치는 명문장이 된다. 그때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오래전에 교보문고에서 기막힌 문장 하나를 발견했다. 마크 트웨인(Mark Twain)이 한 말인데, 배려에 대한 정의였다.
“배려란 제비꽃이 자기를 밟고 지나가는 발뒤꿈치에다 향기를 남기는 것이다.” 읽는 순간 내 가슴에 팍 꽂혀버렸다. ‘배려’에 대해서 그렇게 수준 높고 간결하고 의미심장하게 표현한 말은 처음 보기 때문이었다. 이후로 내 책이나 강의를 통해 많이 소개하는 명문장이 되었다.
이번엔 어떤 주제로 어떤 내용의 글을 쓸까 곰곰이 생각하면서 뒤지다가 기막힌 짧은 한 문장을 드디어 찾아냈다. 그 하나의 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시작해서 금세 유익한 내용의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그 하나의 재료를 여기 소개해 본다.
<평온을 비는 기도>
“주여, 우리에게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내용이 너무 좋아 여러 번에 걸쳐 읽어보았는데, 정말 맘에 쏙 드는 문장이었다. 누가 쓴 글일까 봤더니 아주 유명한 이가 쓴 내용이다. 누구일까? 20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신학자이자 윤리학자이며, 기독교 사회윤리 분야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인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였다. 위 내용은 그의 기도문으로 잘 알려진 글이었다. 오늘날 알코올 중독자 모임(AA) 등에서 널리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두 가지 현실 사이에서 씨름하고 있다. 하나는 우리 힘으로는 도무지 바꿀 수 없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의지와 용기를 통해 충분히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두 가지를 혼동한다는 데 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 우리의 과거, 우리의 태생,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적 환경은 우리의 능력 밖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괴로워하고 좌절한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상처를 붙잡고 후회하거나, 주어진 현실을 원망하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히 받아들인다. 그것은 체념이 아니라, '현실을 인정하는 성숙함'이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려 애쓰기보다, 강물의 흐름을 타고 나아가는 사람이 더 멀리 감을 안다.
반대로 우리가 반드시 붙잡아야 할 것도 있다. 불의 앞에서 침묵하는 태도는 지혜가 아니라 비겁함이다. 사회 속에서, 가정 속에서, 나 자신 속에서 잘못된 것을 고치려는 용기가 없다면 삶은 결코 성장하지 못한다. 죄를 버리고, 습관을 다스리고, 불의를 거슬러 싸우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고귀한 책임이다. 변화는 언제나 용기 있는 자를 통해 시작된다. 역사의 흐름을 바꿔온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 이 용기를 가졌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는 ‘분별력’이다. 지혜 없는 열정은 무모함이 되고, 용기 없는 평온은 무기력함이 된다. 분별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다. 깊은 반성과 묵상과 기도의 자리에서 얻어지는 하늘의 선물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있을 때, 우리는 억울한 상황 속에서도 평온을 누리고, 필요한 자리에서는 담대히 일어서며, 두 가지를 혼동하지 않고 걸어갈 수 있다.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은 짧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받아들여야 할 것은 담담히 받아들이고, 바꿔야 할 것은 용기 있게 바꾸며, 그 사이에서 지혜롭게 분별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성숙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주여, 우리에게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아멘!"
#신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