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론적 관점에서 보는 천년왕국론과 기존 4학설에 대한 검토(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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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기자
jykim@cdaily.co.kr
허정윤 박사(알파와오메가창조론연구소 대표, 창조론오픈포럼 공동대표)

2. 무천년설 천년왕국론(Amillennialism)

1) 무천년설 개요

허정윤 박사

초기 교회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에 대해 간절한 소망을 품고 있었고, 그것이 로마제국의 혹독한 박해를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이 되었다. 그런 흐름 속에서 313년 어느 날, 황제의 권좌에 오른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공인한다는 칙령을 내렸다. 콘스탄틴 황제는 즉위 전에 벌어진 황제의 보위 쟁탈전에서 꿈속에서 본 헬라어 알파벳 Χ(키)와 Ρ(로)의 문양을 붙인 방패를 들고 나가 승리하였고, ‘키로’ 문양이 상징하는 기독교를 믿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초기 교회에서 박해가 사라지자, 그때까지 신자들이 온갖 환난과 죽임을 당하는 핍박 속에서도 굳게 지켜냈던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에 대한 기대 역시 함께 희미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4세기가 다 가기 전에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380). 그때부터 로마제국과 그 속주에서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급증했고, 성직자들은 어느 사이에 점차 권력자로 변모했으며, 교회는 헌금이 과도하게 유입되어 재정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시기에 북아프리카의 신학자 티코니우스(Tyconius)는 “임박한” 재림론과 문자적 해석에 의한 전천년설에 의문을 제기하며, 상징적 해석 방법으로 전환을 시도하는 선구자가 되었다. 그는 어거스틴에게 영향을 미쳐 상징적 해석의 길로 안내했다.

5세기로 접어드는 410년, 번영과 평화를 누리고 있던 로마제국과 교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게르만족의 일파인 서고트족의 알라리크 1세(Alaric I, c.370-410 / 재위 395-410)가 로마제국에 침략하여 약탈하는 사건이었다. 서고트족이 휩쓸고 지나간 후에 그동안 기독교의 국교화에 불만을 품고 있던 토속 종교세력들이 그 사건의 원인을 국교인 기독교에 돌리고, 항의에 나섰다. 예를 들자면, ‘재림하신다는 그리스도는 어디에 있느냐’, ‘나라를 지킬 힘도 없는 것 같으니, 국교에서 폐지하라’는 식의 요구와 비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변증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라틴 교부 어거스틴(Augustine)이 앞장서서 기독교를 변증했다. 그는 당시의 기독교 변증을 위하여 『하나님의 도성』을 저술하였다.

(1) 신학적 관점의 전환: 이 책에서 어거스틴은 당시까지 주류였던 전천년설 천년왕국론의 “임박한” 재림론에 반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는 전천년설이 사용한 문자적 해석 방법 대신에 상징적 해석 방법을 채택하여 “천 년 동안”의 ‘상징적’ 기한이 충만해질 때, 비로소 그리스도가 재림하신다는 ‘천년왕국 후 재림론’으로 전환했다.

① 이 책은 22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반부는 사람들이 만든 헬라의 세상 철학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기독교 신학이 우월하다는 변증론이고, 후반부는 상징적인 두 도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② 두 도성은 ‘하나님의 도성’과 ‘세상의 도성’이며, 어거스틴은 천지창조부터 그가 생존했던 5세기까지 두 도성의 역사를 서술하고, 끝으로 가면서 두 도성에 대한 논의를 미래의 하나님 나라에까지 확장하는 종말론을 전개했다.

③ 20권부터 어거스틴은 그리스도가 재림 후 악의 무리를 모두 제거하는 최후의 심판을 진행하시고, 하나님의 도성에는 선택된 백성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고 서술했다.

(2) 상징적 천년왕국: 어거스틴은 땅에 문자적 천년왕국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시대라는 상징적 천년왕국이 있다고 보았다.

① 상징적 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을 상징하는 “천 년 동안”에 구약과 신약에서 예언된 사건들이 역사적으로 실현되는 땅에서의 교회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② 어거스틴은 하늘에서 그리스도가 교회 시대라는 상징적 천년왕국에 대해 영적 통치를 하신다고 보았다. 그의 견해는 초기 교회가 천년왕국을 재림하시는 그리스도가 직접 통치하신다는 전천년설의 견해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③ 어거스틴은 계 20장의 “천 년 동안”을 물리적 기간이 아니라, 미확정된 상징적 기간으로 보았다. 그는 상징적 “천 년 동안”의 기한이 충만할 때 그리스도가 재림하신다고 보았다.

④ 그는 재림하시는 그리스도가 최후의 심판을 진행하시면서 인간의 사랑(amor sui)으로 불의와 탐욕이 가득했던 세속의 도성과 사탄의 무리를 멸망하신다고 보았다. 그리고 택하신 신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사랑(amor Dei)으로 세워질 하나님의 도성 곧 새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여 영원한 복락을 누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3) 자유의지론과 역사 해석: 어거스틴은 하나님이 이 세상 모든 일에 개입하시는 분이시면서도, 사람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고 주장했다.

① 그는 자유의지론을 바탕으로 서고트족의 침략을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 벌어진 일로 돌려놓았다.

② 그러나 어거스틴의 관점에서 더 크게 보면, 그것은 세속의 도성에서 하나님의 도성을 향하여 가는 역사적 과정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적 섭리이다.

(4) 나그네 교회와 신자의 여정: 어거스틴은 교회가 하나님의 도성을 향해 가는 신자들의 여정에 동행하는 나그네 교회(pilgrim church)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① 신자들은 하나님의 도성 곧 새 예루살렘의 시민권을 얻으러 가는 나그네이다.

② 신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하나님의 도성을 향해 스스로 가야 한다.

③ 교회는 하나님의 도성을 향해 가는 신자들과 동행하여 언제나 인도자 역할을 해야 한다.

(5) ‘Amillennialism’(무천년설) 용어 사용의 역사적 논의: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도성』에서 ‘천년왕국론’을 서술했지만, ‘무천년’이나 ‘무천년설’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① 당시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어거스틴의 견해를 천년왕국론 교리로 채택하고 가르쳤지만, ‘무천년설’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다.

② 종교개혁자들도 어거스틴의 견해를 로마가톨릭 교리를 통해 수용했지만, ‘무천년설’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다. 종교개혁자들은 대개 천년왕국론에 대해 어느 정도 회의적이었다. 그들의 영향은 개혁교회 일부에서 요한계시록에 대해 무관심 또는 성경이 아닌 것처럼 소홀히 대하는 경향성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③ ‘Amillennialism’이라는 말이 기독교 신학에 등장한 것은 윌리암 럿거스(William H. Rutgers, 1898-1980)가 Premillennialism in America(1930)에서 처음 쓴 것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당시 세계 대공황(1929) 시기에 미국에서 세대주의자들과 개혁주의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천년왕국 논쟁을 주제로 다루면서 전천년설, 후천년설, 그리고 ‘Amillennialism’이라는 3학설로 분류했다. 이때는 아직 전천년설 앞에 ‘역사적’ 또는 ‘세대주의’라는 말을 붙여 구분하지 않았다.

④ 럿거스가 굳이 천년왕국 앞에 접두어 ‘A-’를 붙여 ‘Amillennialism’이라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 쓴 의도는 그가 지지하는 어거스틴의 견해가 역사적 전천년설은 물론, 당시에 새로 등장한 세대주의 전천년설에도 반대하는 것이며, 동시에 청교도 계열에서 주장하던 후천년설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표현하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The OWL Dictionary]는 접두어 “A-”에 대해서 “없음” 또는 “부재”를 의미하거나, “~위의” 또는 “~의 상태의(on)”를 의미한다고 해설한다.

⑤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 1873-1957)는 그의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 1932)에서 럿거스와 같은 취지로 주장했고,

⑥ 안토니 후크마(Anthony Andrew Hoekema, 1913-1988)는 특히 『천년왕국 논쟁』(The Meaning of The Millennium: Four Views)에서 ‘Amillennialism’이라는 말을 옹호했다.

⑦ 국내에서는 ‘Amillennialism’을 번역하면서 초기에는 ‘비천년설’과 ‘무천년설’이라는 말이 혼용되다가 벌코프와 후크마의 책들이 번역-출판되면서 ‘무천년설’로 정착되었다.

⑧ 천년왕국론은 신학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 시기를 기준으로 천년왕국 전이냐, 후이냐에 따라서 전천년설과 후천년설의 두 가지로 대분류한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이 후천년설 관점으로 설명한 그의 견해에 ‘Amillennialism’이라는 분류 명칭을 붙인 것까지는 남이 한 일이라고 치더라도, 국내 신학계에서 이를 ‘무천년설’이라고 번역하여 사용하는 것은 이제 재고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본다. 차라리 ‘비천년설’이라는 말로 정리되었더라면, 어거스틴의 상징적 해석의 뜻이 거의 반영되었을 것이다. (계속)

#허정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