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상업용 원전인 고리 1호기가 가동을 멈춘 지 8년 만에 해체 절차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오는 26일 열리는 원자력안전위원회 회의에서 고리 1호기 해체 승인 안건이 심의될 예정으로, 국내 원전 해체 산업이 본격적으로 출범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제216회 원안위 회의에 '고리 1호기 해체 승인 안건'이 상정됐다. 이 안건이 통과될 경우, 한수원은 본격적인 해체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고리 1호기는 1977년 6월 19일 최초 임계에 도달한 뒤, 2007년 12월 계속 운전 허가를 받아 추가로 10년간 운영됐다. 이후 2017년 6월 18일, 40년간의 운전을 마치고 영구 정지됐다. 건설부터 정지까지 한 시대를 상징한 고리 1호기는 국내 원자력 발전의 상징적인 출발점이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2024년 6월 기준, 전 세계 22개국에서 총 215기의 원전이 영구 정지됐다. 미국이 41기로 가장 많고, 영국 36기, 독일 33기, 일본 27기, 프랑스 14기, 러시아 11기가 뒤를 이었다. 한국은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 등 2기의 원전이 정지된 상태다.
초기에는 연구용 원자로나 소형 원전 중심의 정지 사례가 주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고리 1호기처럼 대형 상업용 원전의 정지 사례가 늘고 있다. 정지된 전 세계 원전의 총 설비 용량은 109.369GW로, 한국형 원전 APR1400 약 78기의 용량에 해당한다.
해체까지 완료된 사례는 아직 드물다. 현재까지 인류가 해체를 완료한 원전은 단 25기로, 이 중 20기는 미국에서, 나머지는 독일(3기), 일본(1기), 스위스(1기)에서 해체됐다. 이 중 상업 운전 경험이 있는 원전을 해체한 국가는 사실상 미국이 유일하다.
한수원은 해체 승인에 대비해 이미 사전 준비에 들어갔다. 2023년부터 제염 작업을 시작해 방사성 물질을 화학 약품, 고온·고압 방식으로 제거하고 있으며, 원안위에 최종 해체 계획서도 제출한 상태다.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해체 절차에 대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양기욱 산업부 원전전략기획관은 최근 한국원자력환경복원연구원을 찾아 해체 승인 이후의 세부 추진 계획과 관련 연구개발(R\&D) 진행 상황을 직접 점검했다.
원전 업계에서는 고리 1호기 해체가 현실화되면 국내 원전 기업들이 실제 해체 기술과 현장 경험을 확보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글로벌 원전 해체 시장 진출 기반을 마련하고, 새로운 수출 산업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체코 신규 원전 수주에 성공하면서 'K-원전' 브랜드가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가운데, 해체 기술 확보까지 이어진다면 한국은 건설-운영-해체에 이르는 원전 전주기 기술을 보유한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한수원 관계자는 "고리 1호기 해체가 본격화되면, 우리나라는 원전의 전 과정을 아우르는 기술을 갖추게 된다"며 "해체 경험은 건설 기술 고도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