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신학에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가난한 자이든 부한 자이든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떠난 자들로서 죄인들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받을 때에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소망이 있음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사람을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로 나누어서 생각하며 그 나눔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놓여 있었다. 즉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구원받은 자와 구원을 받지 못한 자가 분리되었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는 구원받은 자들을 위한 그리스도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견해와 달리 에큐메니칼 신학에서는 세상을 가난한 자와 부한 자, 억압받는 자와 억압하는 자, 착취를 당하는 자와 착취하는 자 등으로 구분하고 그리스도는 전자에 속하는 그룹의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시는 분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스도가 자신을 동일시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사회에서 소외되어 모든 적극적인 참여가 금지된 무력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다. 한편 이들을 억압하는 부한 사람들은 돈, 인종, 자기 이익에 집착하여 우상숭배와 같은 죄를 지은 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를 억압하는 악마적 세력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스스로 허용했기 때문에 죄인들로 간주되며, 해방자 예수는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서 이러한 사탄의 도구들과 투쟁하는 분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이해는 산안토니오와 나이로비의 다음 글들에 잘 나타난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더욱 분명한 사실을 발견한다. 즉, 그 분은 그 자신의 생애보다도 이웃의 삶에 우선순위를 두셨다. 무엇보다도 그는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어린이들, 병자들, 공개된 죄인들 및 힘없는 사람들에게 우선순위를 부여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방법에 따른 선교란 항상 기성 사회 중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로부터 출발하여 권세있는 상부구조로 상향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출발점으로 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엮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이란 죄와 다른 세력 밑에 눌려서 고통당하는 인류와 자신을 동일화하신 하나님에 관한 메시지이다. 하나님께서 인류와 연대성(solidarity)을 가지셨음은 종이신 그리스도의 현실에 의하여 표현되었다. 이 그리스도는 자신을 낮추사 인간의 형체를 입으셨고, 가난 속에 탄생하셨으며, 버림받음의 길을 수용하셨고, 끝내는 십자가의 죽음을 대면하셨다. 이 그리스도의 대리적 고난은 하나님의 사랑의 최고의 현현이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은 인간의 죄와 연약성의 모든 짐을 홀로 걸머지셨다.
가난한 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신 그리스도는 곧 그들을 그 가난, 억압, 착취, 그리고 소외로부터 해방하시는 분으로 이해된다. 물론 전통적인 신학에도 해방자로서의 그리스도 이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통적인 신학에서는 예수의 해방자됨이 주로 영적인 차원에서 이해되었다. 즉 죄의 노예되고 사탄의 노예된 상태에서 예수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해방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죄와 사탄의 노예로부터 해방될 때 다른 현실적인 차원의 노예됨 으로부터도 해방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즉 그리스도가 가져다주시는 해방을 우선적인 차원과 부차적인 차원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경향을 지녔다. 이에 반하여 에큐메니칼에서 이해하는 그리스도는 영적인 차원과 육적인 차원의 해방을 모두 함께 포괄적으로 가져다 주시는 분으로 이해된다.
※ 좀 더 자세한 내용과 각주 등은 아래의 책에 나와 있다.
안승오 교수(영남신대)
성결대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M.Div)에서 수학한 후,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으로 신학석사(Th.M) 학위와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총회 파송으로 필리핀에서 선교 사역을 했으며, 풀러신학대학원 객원교수, Journal of Asian Mission 편집위원, 한국로잔 연구교수회장, 영남신학대학교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선교와 신학』 및 『복음과 선교』 편집위원, 지구촌선교연구원 원장, 영남신학대학교 선교신학 교수 등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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