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생포된 북한군이 한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으로 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두 북한군 병사의 국내 송환이 실제로 성사될 수 있을지, 성사된다면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터에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북한 김정은이 파병한 북한군 병사가 우크라이나 군에 포로로 잡힌 후 스스로 한국행 귀순을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또 만약 우크라이나 당국이 이 두 포로의 신병을 해당 병사의 의사대로 처리할 경우 북한군인이 제3국 전쟁에 참전해 한국으로 귀순한 첫 사례가 된다.
두 북한 군 병사는 인터뷰에서 지난해 10월 초 북한을 떠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훈련하다 12월 중순 쿠르스크 전장으로 이송된 사실을 털어놨다. 이들은 러시아에 오기 3개월 전부터 집에 일체의 연락을 할 수 없어 자신이 러시아 전쟁터에 보내진 사실을 부모님이 모른다고 했다.
한 북한군 병사는 무인기와 포 사격에 의해 자신의 부대가 전멸했다면서 “나 하나 살아남았다. 인민군대 안에서 포로는 변절이나 같기 때문에 수류탄이 있었으면 자폭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제대하면 대학에 진학해 공부하는 것이 꿈이었다”라며 “난민 신청을 해가지고 대한민국에 가고 싶다”고 했다.
20대 초반의 북한군 병사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당히 한국으로의 귀순을 희망하자 정부는 이들을 전원 수용한다는 기본 원칙을 재확인했다. 외교부와 국가정보원은 각기 북한군 포로 신병처리와 관련해 북한군도 헌법에 의해 우리 국민인 만큼 귀순을 요청할 시 우크라이나와 협의할 계획이라고 이미 밝힌 바 있다. 다만 귀순 의사가 언론 인터뷰 과정에서 나온 것이어서 직접 진의를 확인한 뒤에 우크라이나 측과 협의에 나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들의 한국행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다. 현 시점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제네바 협정’이다. 교전 중 붙잡힌 포로는 전쟁이 끝나면 지체 없이 석방해 본국으로 송환해야 한다고 명시한 규정 때문이다. 또 러시아와 북한 모두 파병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들에게 전쟁 포로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이들 북한군 병사는 지금 법적 지위가 국제법상의 전쟁 포로로 완전히 인정된 게 아니다. 또 인정된다고 해도 송환 절차가 간단치 않다.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과 국제법상 포로로 인정되기 위해선 북한이 전쟁 당사국이 돼야 한다. 전쟁 당사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참전을 공식화해야 가능한데 북한은 러시아에 북한군 파병 사실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북한이 끝까지 참전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러시아가 포로의 송환을 요구하는 변수가 생길 수 있다. 북한병사를 러시아가 자국 군인이라고 주장하고 나설 가능성이다. 그렇게 되면 이들 병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러시아로 보내져 러시아가 이들을 다시 북한으로 보내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본인의 의사일 것이다. 본인이 한국행을 강력히 원하는데 법적 지위를 따지다가 본인의 의사와 상반된 결정이 내려진다면 비인도적이란 비난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한국으로 가고 싶다고 한 사실이 국내 언론 보도로 국제사회에까지 알려진 이상 여론의 방향이 ‘제네바 협약’보다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는 기류가 형성될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뛰어든 북한 군인은 엄밀히 말해 전쟁 당사자가 아닌 제3자 신분이다. 북한군의 법적 지위와 포로 대우 등을 둘러싸고 여러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이들이 한국으로의 귀순을 희망한 이상 국제사회가 이들을 인도적인 차원에서 지원하는 게 마땅하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행을 원하는 북한군 병사를 ‘제네바 제3협약에 관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주석서’의 적용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주석서에는 포로가 본국에 의해 기본권이 침해될 위협이 있는 경우 송환 의무의 예외에 해당한다는 규정이 있다.
정부도 “북한군인도 헌법상 우리 국민”이라는 기초적인 말만 되뇔 게 아니라 우크라이나 당국과의 협상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 포로 송환과 관련해 개인의 자유의사 존중이 국제법과 관행에 부합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박해 받을 위협이 있는 곳으로 송환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게 중요하다.
인터뷰에 응한 북한 병사는 함께 파병된 북한군 태반이 이미 전사했거나 불구가 됐다고 했다. 20대 초중반의 젊은이들을 가족도 모르게 남의 나라 전쟁터에 끌고 와 개죽음을 당하게 만든 자가 누군가.
북한군의 참혹한 참전 현실은 북한 주민들이 지금 어떤 고통 속에 신음하며 살고 있는지를 새삼 보여준다. 러시아로부터 받을 몸값을 계산해 젊은이들을 이역만리 사지로 내몬 게 김정은 체제가 아니면 꿈에라도 가능한 일인가.
북한군 병사들이 한국행을 원한다는 건 한국이 ‘자유 민주주의’ 체제로 안정된 경제부국을 이뤘다는 사실을 북한의 젊은이들이 이미 알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북으로 돌아갈 경우 참혹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다는 두려움과 공포 때문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 당시 외교 안보라인 고위층 인사들이 자유를 찾아 귀순한 탈북 어민들을 강제 북송해 모두 북에서 참형을 당하게 만든 일이 있다. 이런 잔혹사가 또다시 반복되지 않으려면 정부가 북한군 병사들이 반드시 무사히 국내에 들어올 수 있도록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