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으로 온 나라에 갈등과 분열이 심화하는 가운데 교계 안에선 나라를 구하는 일념으로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와 시류에 휘말리지 말고 잠잠히 기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각기 상존한다. 하지만 이런 상반된 목소리가 교회와 성도들 사이에서 의견 대립과 반목으로 번지고 있는 점은 우려스럽다.
지난 주말 전국에선 세이브 코리아가 주관하는 ‘비상구국 기도회’가 열렸다. 지난 1일 부산역 광장 일대는 겨울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비상기도회에 참석한 수만 명의 시민이 내는 ‘대통령 탄핵 반대’ 함성과 뜨거운 기도 소리로 뒤덮였다. 같은 날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선 김진홍 목사를 비롯해 교계 원로 중진들이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한국교회 비상시국 연합기도회’가 열려 한국교회가 한데 뭉쳐 현 시국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호소했다.
탄핵정국에 교계가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뿐만 아니라 수만 명이 도심에 모여 비상기도회를 여는 건 지금의 시국이 매우 위태롭다는 판단에서다. 현직 대통령이 공수처에 의해 체포되는 초유의 사태에 이어 검찰에 의해 구속 수감되는 상황에 이르면서 이대로 가다간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 체제가 일시에 붕괴될 수 있을 것이란 위기감이 교계에 더욱 확산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런 긴박한 상황일수록 한국교회가 섣불리 나서기보다 기도와 묵상에 전념하는 자세를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교계 안에 있다. 특히 목회자들이 주일 강단에서 설교하는 중에 현 시국에 대해 어느 한쪽 편을 드는 발언을 할 경우 자칫 성도 간에 의견 대립을 초래해 커다란 갈등으로 번질 수 있어 신중론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분당 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는 얼마 전 교회 홈페이지에 ‘나라를 위한 기도’와 ‘나라를 위한 기도제목’을 게재했다. 국가적으로 혼란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만큼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시도록 함께 마음 모아 기도하자는 취지다.
이 기도문은 “국가적 혼란과 위기 상황 속에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탄식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나아갑니다”라며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부어주시옵소서. 현 시국의 모든 과정과 결과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온전히 드러나고 어떠한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게 하옵소서”라고 했다. 또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여 주시고 각자의 소견대로의 정의가 아닌,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구현되고 해달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기도문을 게시한 후 지난달 26일 주일 강단에 선 이 목사가 이 문제를 다시 거론했다. 자신이 (나라를 위해) 판단을 유보하고 기도하자고 한 것에 대해 일각에서 곡해하는 분위기가 있자 이를 “신앙의 언어이지 정치적 언어가 아니”라고 적극 해명하고 나선 것이다.
이 목사는 이 문제와 관련해 지난 1월 19일과 26일, 두 차례 주일예배에서 교회와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할 때임을 말씀드렸다고 전제한 후 “기도하되,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하는 판단을 유보하고 기도하자’는 부탁의 말씀을 드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성도들에게 그런 부탁을 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이 목사는 “지금 교회들마다 각기 견해가 다른 두 그룹의 성도님 사이에 격렬한 논쟁으로 서로 간에 상처를 주고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며 “어떤 교회는 시국과 관련한 성도들 간의 첨예한 대립과 분열이 심해져 설교를 진행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에 놓인 교회도 있다”라고 했다.
성도에게 있어 목회자의 설교는 영의 양식과 같은 기능을 한다. 특히 주일 예배시 강단에서 나오는 메시지는 성도들이 세상에 나가 살아야 할 복음의 가치와 기준을 명확히 설정하는 역할을 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현 시국에 대한 목회자의 말 한마디가 한국교회와 개별 성도들에게 해결의 열쇠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혼란을 부추길 수도 있다. 그렇다고 현 시국에 대해 일절 침묵하고 외면하는 것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당장 직장과 일터에 나가서 마주 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주제를 피해 대화하기란 쉽지 않다. 각종 유튜브 채널과 SNS 등을 통해 나오는 다양한 정치 해석과 성향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성도들의 혼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에서 목회자가 성도들을 향해 “기도하라”고 하면 자칫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보신주의’로 비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혼란한 시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교회 안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질 수 있다.
하지만 기도하자는 것은 시류를 살피며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의미가 아니다. 몸을 사리는 ‘보신주의’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끝없는 분열 가운데서 이쪽 저편에 휩쓸리기보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자는 건데 이를 무기력한 모습으로 해석해선 곤란하다.
이찬수 목사도 이 부분에 대해 “각자의 생각과 정치적·법적 판단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교회 안에서 성도들끼리 극심한 대립으로 갈등과 상처가 양산되는 현실이기에, 서로 간에 분노와 혐오를 쏟는 일을 잠시 내려놓고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자는 호소를 드린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교회는 다양한 생각과 삶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다 보니 정치적으로 어느 한쪽으로 기울게 되면 반드시 다툼이 있게 된다.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하지 않고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상태로 논쟁이 격화되면 편 가르기가 일상화되고 그런 교회는 분열과 분쟁을 막을 수 없게 된다.
기도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손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이 시국에 열리는 비상기도회와 각종 시국 관련 집회에 나가는 문제 또한 목회자의 의지가 아닌 성도 본인이 판단해 결정할 문제일 것이다. 혹여라도 이 문제로 한국교회가 딜레마에 빠지거나 정치적으로 비화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