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가인권위, 차라리 없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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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인 올해 12월 10일은 1948년 유엔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된 지 75돌을 맞는 날이었다. 이 선언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건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기본권과 보편적 가치를 규정한 데 있다.

세계인권선언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전쟁과정에서 벌어진 만행이 세상에 알려지자 이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는 것을 막자는 의도에서 유엔이 제정했다. 수많은 소중한 생명이 참혹하게 죽은 끔찍한 전쟁을 치른 후 국적을 불문하고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할 하나의 윤리 기준이었던 셈이다.

우리나라는 김대중 정부 때 유엔의 권고를 받아들여 2001년 5월 국회가 ‘국가인권위원회법’을 제정했다. 그걸 근거로 같은 해 11월에 공식 출범한 것이 국가인권위원회다.

인권위는 그동안 인종 차별을 연상시키는 ‘살색 크레파스’ 명칭 변경부터 사형제 폐지 의견 표명까지 인권개선을 위한 다양한 권고를 냈다. 인권위의 권고가 국정 정책으로 수용돼 인권침해를 바로잡은 사례도 적지 않다.

하지만 세계인권선언 75돌을 즈음해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가 과연 이대로 좋은가 하는 논란으로 시끄럽다. 그건 인권위가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란 지적과 직결된다.

세계 인권의 날을 앞둔 지난 8일 자유인권실천국민행동 등 다수의 인권단체들이 성명을 발표하고 “국가인권위 해체”를 요구했다. 인권위가 보편인권을 외면하고 국민 다수의 인권을 역차별하며, 성혁명·젠더이데올로기 편향에 앞장서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 앞에서 가진 집회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인권위가 다수 국민의 인권을 억압하고 성소수자들 편에 선 것과 특히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인 북한주민·탈북민의 인권문제는 외면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런 문제가 인권위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저하로 이어져 ‘인권위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인권위의 편향성 논란은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두드러졌다. 제21대 국회가 시작된 직후인 2020년 6월 29일,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차별금지법안’을 대표로 발의하자 다음 날 인권위가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이란 이름으로 명칭을 변경해 법안을 제시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고 나서 약 1년 후 21년 6월 16일 더불어 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평등에 관한 법률안’을, 2개월 뒤인 8월 9일 같은 당 박주민 의원이 ‘평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하고 이어 8월 31일엔 권인숙 의원이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유사한 법안들이 1년 사이에 거듭 발의된 것을 볼 때 일련의 법안들의 입법과정이 얼마나 졸속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민주당과 정의당이 잇따라 내놓은 이런 법안들이 인권위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사실상 인권위 청부입법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인권위가 성소수자 인권 보호라는 미영 아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제시하면 정부와 여당이 여기에 맞춤식 법안을 서둘러 준비하는 식인데 그 과정에서 법안의 중복, 누락 문제 등이 발견되면서 우후죽순으로 비슷한 이름의 법안이 등장하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인권위의 편향성이 성소수자 문제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자유 시민인권단체들이 지적한 대로 북한 주민의 인권과 특히 탈북민 인권문제엔 거의 무관심 무대응으로 일관함으로써 모든 국민의 보편적 인권 보호라는 기본 틀에서 스스로 이탈했다는 비판을 받은 지 오래다.

중국이 자국 내에 억류한 탈북민을 북한으로 집단 강제 북송한 야만적 행위는 유엔 인권위도 규탄 성명을 발표하고 12월 중에 유엔 총회에서 결의안 채택을 앞두고 있어 국제사회 전체가 주목하는 사안이다. 국회에서도 모처럼 여야가 중국의 탈북민 강제북송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북한 주민 인권과 강제북송 위기에 처한 탈북민이 당하는 인권유린에 누구보다 크게 목소리를 내야 할 인권위가 이토록 존재감이 없는 건 이해할 수 없다. 인권위는 문 정부에서 어선을 타고 탈북한 어민들의 귀순 의사를 청와대와 국정원, 군 당국이 묵살한 채 판문점에서 강제로 북한군에 송환한 사건에서도 인권 보호 측면에서 최소한의 역할도 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샀다.

결국, 오늘에 인권위에 쏟아지는 비판과 우려의 시선은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기본권과 보편적 가치를 특정 이념에 매몰시킨 인권위의 그간의 행보에 책임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친 동성애, 친 LGBT 행보의 절반만이라도 사지에 몰린 탈북민의 인권에 기울였다면 오늘 일어나는 인권위의 편향성 논란은 상당 부분 해소됐을 것이다.

‘인권’은 인권위의 전매특허가 아닐뿐더러 국민을 상대로 휘두르는 무기가 될 수 없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성소수자 젠더 이념으로 결박해 무력화해 온 인권위의 행보야말로 ‘혐오와 차별’ 그 자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인권위가 이런 문제를 시정하지 않고 여전히 특성세력의 나팔수 역할에 머무른다면 국민은 차라리 인권위가 없는 편이 인권을 위해 더 낫다는 판단을 내리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