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핼러윈 참사 1주기, 우리 사회는 안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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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은 서울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일어난 지 1주기가 되는 날이다. 1년 전 그날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던 많은 사람이 좁은 골목에 뒤엉키면서 159명이 목숨을 잃었다. 유족과 야당 등이 정부에 실체적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고를 둘러싼 논란은 1년이 다 되도록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태원의 좁은 골목에서 벌어진 전대미문의 참사는 총체적 안전관리 부실이 만들어낸 예고된 인재(人災)'였다. 매년 핼러윈 축제 때마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 안전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음에도 정부와 지차체, 경찰의 예방 대책과 대응에서 어느 하나도 소홀하지 않은 게 없었다.

9년 전 세월호 사건은 온 나라를 비탄에 잠기게 했다. 여객선이 전복되면서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던 10대 고등학생 등 304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그 사고를 ‘반면교사’로 정부가 안전관리 대책을 다시 세운다고 했지만, 말이 아닌 실천으로 매사에 만전을 기했더라면 이런 참극은 다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한다.

핼러윈 참사 이후에도 불행한 인재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여름 집중 호우 때 경북 북부에서 산사태 등으로 20여 명이 숨졌다. 충북 청주에선 지하차도가 침수돼 25명의 사상자가 났다. 아무리 천재지변이라도 지자체 등 관계 당국이 미리 대비하지 못한 탓이 컸다.

문제는 이런 비극적 참사 앞에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국민의 목숨을 지키지 못한 것을 놓고 법리를 다투는 건 차후의 문제다. 최소한 도의적 책임이라도 지는 자세를 보였다면 정부와 지자체의 신뢰가 지금처럼 땅에 떨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도 국회에서 답보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이 진영논리에 갇혀 지루한 공방을 벌이는 동안 사회와 국민의 안전은 저만큼 멀리 뒷걸음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에서 언제 어디서 이와 비슷한 사고가 일어날지 알 수 없어 늘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면 이런 불행이 어디 있나.

핼러윈 참사 1주기가 다가오면서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주요 지자체가 인파가 몰리는 밀집 지역에 대한 특별 감시체제에 들어갔다. 경찰·구청·119소방안전본부를 중심으로 안전관리 특별 근무를 한다고 한다. 예년과는 다른 분위기지만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

사회적 분위기는 차분히 가라앉았다. 놀이공원·유통업계 등에서도 ‘핼러윈 지우기’에 나선 모습이다. 매년 이 시기에 떠들썩했던 시내 번화가에는 핼러윈 흔적조차 찾기 힘들 정도다. 핼러윈 지우기는 소비자 ‘역풍’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보다는 참사 1주기를 맞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안전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일 것이다.

핼러윈 축제를 ‘추수감사절’ 행사로 대체하는 움직임도 있다. 사실 핼러윈은 기괴한 분장이나 변장을 하고 악령을 쫓아낸다는 의미로 미국에서 시작된 문화다. 아이들이 변장하고 이웃집에 사탕을 받으러 돌아다니는 대중적인 풍습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선 성인들이 먹고 마시고 춤추며 즐기는 문화로 변질된 부분이 없지 않다. 지난해 핼러윈 기간에 일어난 참사로 온 국민이 큰 충격에 잠기면서도 한편에서 이런 변종 문화에 대한 각성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었던 건 그런 이유에서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지난 16일부터 서울광장에 설치된 분향소 앞에서 참사 1주기 추모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정부가 진상 규명과 재발 대책에 소홀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가 개입하면서 이를 정치공세화 하려 한다는 외부의 곱지 않은 시선이 부담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좁은 골목에 가면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그곳에 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전쟁도, 테러도, 천재지변도 아닌 국민 생명에 대한 안전관리 부실이 낳은 인재라는 말밖엔 달리 할 말이 없다. 술 마시고 노는 데 갔다가 죽은 사람을 국가가 어떻게 책임지냐는 말은 유가족의 가슴 속 상처를 후벼 팔 뿐이다. 사회 안전은 본인의 주의 의무도 있지만, 최종 책임이 국가에 있다는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핼러윈’이란 말만 들어도 1년 전 참사가 생각난다는 사람들이 많다. 직접 경험하지 않았어도 그날의 불행이 떠오른다는 건 ‘집단 트라우마’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그런 증세가 가장 심각한 게 당시 참사현장에 투입됐던 소방대원들과 참사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이다. 이들 중엔 이태원 좁은 골목길에 수많은 사람이 뒤엉켜 있던 모습, 곳곳에서 심폐소생술을 하던 광경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자다가도 불쑥 깨는 적이 많다고 한다.

끔찍한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더는 이런 사태가 벌어져선 안 된다며 정치권과 언론에서 온갖 안전대책을 쏟아낸다. 하지만, 시간이 가고 사람들의 기억이 희미해지면 그 많은 대책도, 교훈도 사라진다. 그렇다고 참사가 남긴 심각하고 광범위한 후유증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런 ‘집단 트라우마’ 후유증은 사회안전망과 시민의식이 완벽하게 갖춰져 비극적 참사가 일어나지 않을 때 비로소 치유될 것이다. 정부만의 노력으론 부족하다. 시민사회 종교계가 안전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야 한다.